도종환 시인은 지병으로 오랜 시간 마늘밭에 지은 황토집, '구구산방'에 들어가 요양했다. 구구산방에서 구구는 거북이구(龜)자로, 거북이처럼 오래 살고 싶다는 마음에 지은 이름이다. 문득 '구구산방'이라는 단어가 생각나 건강은 어떠시냐고 물으니 빙그레 웃는다. 건강이 나쁘면 이렇게 만날 수 있겠느냐는 의미였다.
그는 조용하게 살고 싶은데 세상이 어지러워서 여러 군데 불려 다닐 것 같다고 말한다.
"연초부터 구제역으로 살아있는 짐승을 생매장하고, 쓰나미로 원전이 터져 한 나라의 재앙이 전 지구적 재앙이 되는 위기를 느끼고,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미국 의존도가 심화되고, 그런 상황에서 한미FTA가 발표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권력을 가진 상층부,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좋을지 모르겠지만 세상 살기가 점점 어려워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리고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시나 글로 형상화하고 국민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이 스스로 부족해 보여 개인적으로도 안타깝다."
도종환 시인은 2012년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16번으로 공천받아 국회의원을 지냈고,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2017년 들어선 문재인 정부 초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을 지냈다.
세상이 시끄러워서일까. 최근 문화계도 인간의 정신이나 실존의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정치사회적인 문제를 많이 다룬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예술가들이 대부분 우리 사회의 현실을 화두로 꺼내 들고 있다.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가 그러했고,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가 그러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과도해지고 있다.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야 살기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대화 속에 새로 나온 책을 이야기하고, 연극과 오페라가 대화의 소재가 되고, 영화가 바꿔놓고 싶어하는 세상이 화제가 돼야 하는데 정치적인 문제에 문화가 너무 쏠리고 있다. 우리 사회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라면 그렇지 않을 것인데, 그런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고 본다. 문화는 삶의 모습, 현실 그대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도가니를 보고 분노했다. 도가니가 단순히 학교, 사립재단, 교사 개인의 노력 때문에 관심을 모은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사학이 부패하고, 부패한 권력이 사학을 감싸고, 그것을 덮어주는 보수언론과 그것을 유리하게 판결해주는 사법부, 이 부패와 비리의 커넥션, 카르텔이 워낙 견고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절망해서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도 그렇다. 문자는 권력의 진입수단이었고, 그들 기득권 층의 특권이었다. 그런데 민중이 문자를 갖게 되면 기득권의 뿌리가 흔들리게 된다. 백성들이 문자로 지식을 얻고, 지식의 민주화가 일어나면 엄청나게 큰 충격과 저항을 받게 되지 않겠는가. 기존 드라마들은 왕권과 신권의 대립으로만 당대를 분석했지만 이 드라마는 문자를 통한 민중권력과 기득권력의 대립을 그렸다. 이러한 시도 자체가 갖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는 예술 그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기대했다. 아니 30년, 50년 뒤에라도 그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했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러한가. 눈 감고, 귀 막은 채 살 수 없는 노릇. 내 것, 네 것을 다툼 없이 나누는 게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이치인데, 사람이라는 존재가 너무도 욕심이 많아 조용한 날이 찾아올 수 있을지 진정 의문이다.
아마 그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과연 인간을 믿을 수 있는가. 유토피아 같은 세상은 올 것인가. 그럴 때는 뭔가 강력한 힘에 의해 세상이 균형이 맞춰지면 조금은 가능해지지 않을까. 아무튼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의 얘기처럼 우리가 문화에 대해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얘기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진보적인 사람들은 다 똑똑한 사람들이다. 똑똑한 사람들은 양보하고 배려하고 소통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생각이 같은 사람하고만 만나고 생각이 틀리면 상대도 안 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상대를 안 하는 것이 '선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타인과 조화롭게 지내면서도 남이 나와 똑같아지길 바라지 않는 진보, 동이불화(同而不和)보다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극단적 논리보다는 포용하면서, 함께 변화를 꿈꾸는 분들이 되어 달라. 폭넓고, 깊이 있는 진보가 됐으면 좋겠다."
삶은 동질적인 생존법칙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위만 보거나 아래를 무시하고 살면 막연한 불안과 동요 같은 것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남들보다 뒤쳐진다는 생각에 괴로움이 생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들이 사는 방법을 쫓아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며, 사람 사는 모양이 별 게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종착지를 돌아보면 삶의 의미는 매우 달라진다. 어차피 모두 죽어 이 세상과 이별해야 하는 것이 동질적인 생존법칙의 끝인 것이다. 이미 결과가 같다면 남들이 그렇게 산다고 해서 따라 할 일도 아니고 사회라는 테두리에 갇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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