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미술과 인물

김태진 작가, 국민대 교수 - 일상이 무대가 되는 소통

이동권 2022. 9. 14. 22:26

김태진 작가, 국민대 교수 ⓒ정택용


이른 아침 출근하기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선다. 깨끗한 거리를 거닐면서 들이키는 산뜻한 새벽 공기에 피곤에 젖은 마음마저 상쾌해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밤새 쓰레기로 뒤덮인 거리가 어떻게 깨끗해졌는지 느끼지 못한다. 청소부들이 새벽부터 거리에 나와 빗자루를 들고 다니는지 모른다.

집안에 앉아 있으면 창문으로 흘러들어오는 빛과 공기, 생활 소음이 전부다. 이 사각형 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집 밖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전부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난다. 푸른 혜성이 지나가기도 하고, 붉은 별똥별이 떨어져 불이나기도 한다. 그러나 집안의 사람은 전혀 알지 못한다.

미디어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TV, 신문, 각종 미디어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들을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건과 사실들은 각종 매체의 편집에 의해 걸러져 전달된다. 어떤 경우에는 진실이 왜곡되기도 하며, 확고한 증거가 있는 사건들도 보도하지 않으면 묻히고 만다. 김태진 교수는 미디어의 속성과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진실을 보려는 비판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카메라 사각 프레임안으로 오리를 몰아가면서 영상으로 담아냈다. 프레임으로 보이는 장면이 대중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TV나 많은 매체들이 보도하는 내용은 '객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사각 프레임에 담아낸 현실'입니다. 동물들은 매우 자연적이며, 이 사실을 잘 알지도 못하지만 보도 매체들이 억지로, 필요에 의해 프레임에 집어넣어 보도하는 것이죠. 이처럼 현실은 사각틀 안에 갇혀 전달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이면을 보고 비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김태진 교수는 작품 '전쟁기념관 앞에서의 박찬보님 인터뷰'를 통해 실재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력을 보여준다.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은 일상과는 다른 자세로 임한다. 때문에 그는 작품에 인터뷰의 내용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녹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망설이다 인터뷰에 응하게 되는 미세한 과정을 담아낸다. 또 인터뷰가 끝난 뒤 긴장한 마음을 풀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상태를 기록한다.

"전쟁기념관 앞에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 장소는 일상과 달리 매우 무게가 있는 장소이지요. 거기에서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면 잠시 신중해집니다. 그리고 답변이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이 과정에서 인터뷰 답변 장면을 가장 앞으로 옮겼습니다. 편집은 이렇게 단 한 번뿐입니다. 사람들은 같은 질문에도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저의 관심을 가장 끌었던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그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인터뷰를 하지 않으려고 했거든요."

영상은 질문에 답변이 나온 뒤 인터뷰 요청에 망설이는 모습과 인터뷰가 끝난 후에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차례로 보여준다. 인터뷰가 어떻게 성사됐는지 관객들에게 보여주면서, 일상이 무대와 같은 의식의 장이 된 뒤 사라지는 과정을 보게 한다. 이제까지 사람들은 인터뷰 질문과 답변만 보았을 테지만, 그 과정에는 무수히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서로 소통이 이뤄진다면 '무대'입니다.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에만 무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삼삼오오 공원에 모여 얘기를 나누는 것으로도 소통이 이뤄진다면 무대입니다. 일상이 바로 무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