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는 방콕 시내를 달려 아마리아트리움호텔에 섰다. 호텔은 4성급 호텔이라서 깨끗하고 호젓한 편이었다. 내가 만약 배낭여행을 왔다면, 카오산로드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첫 여정을 시작했겠지만, 이번 여행은 달랐다. 이번 여행은 뭔가를 배우거나 깨닫기 위한 출발이 아니었다. 그냥 이 나라를 느끼고 쉬면 됐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고, 의미도 없었다.
방콕의 거리에는 불상을 모셔둔 자그마한 제단을 많이 볼 수 있다. 태국은 전체 인구의 90% 이상이 불교를 믿는, 세계에서 가장 독실한 불교국가다. 공양은 꽃, 과일, 음료가 대부분이다.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유독 금박의 불상이 많다. 신도들이 공양의 의미로 금지를 불상에 붙인 것이다.
맥없이 호텔방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거리로 나갔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택시 기사들이 유창한 영어로 벌거벗은 여자의 사진을 내 앞에 내밀었다.
"Would you like to enjoy tonight?"
사는 건, 어디를 가든 비슷하나 보다. 나는 손바닥을 펴서 좌우로 흔들며 거절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었을까?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하는 수 없이 태국 전통 음식들이 즐비한 카오산로드 노천카페에 들어가서 태국을 느껴보기로 했다. 상냥하게 인사하는 종업원에게 하이네켄 맥주와 태국 전통음식을 주문했다. 그녀는 머리를 꺄우뚱하더니 하이네켄 맥주와 새우튀김 그리고 상큼한 소스를 갖다 주었다. 새우튀김이 태국의 전통음식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짜오프라야 강에 홀로 서서
짜오프라야강에 서자 왓 아룬(새벽 사원)이 보였다. 이 강에는 매일 아침 여섯 시경에 배를 타고 농작물이나 과일 등 갖가지 물건들을 물물교환하거나 판매하는 수상시장이 섰다. 나는 수상시장에서 파인애플주스를 사서 마셨다. 태국은 물이 귀한 곳이라 물이나 과일주스를 파는 가게가 많다.
나는 뱃삯을 선주에게 지불하고 검은빛의 나무로 만든 배를 빌려 탔다. 이 배는 너무나도 낡았으나 정겹고 강인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시대를 초월한 태국인의 삶이 살아 숨 쉬는 듯했다.
배가 시원한 강바람을 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선명한 자연의 이미지들이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청신한 강의 향취는 매연에 찌든 후각을 마비시켰고, 황소처럼 누렇고 검은 물고기들은 넓은 등지느러미를 절반 가까지 수면 위로 드러냈다. 어느새 내 마음도 짜오프라야강을 따라 어우러져 흘렀다. 배는 그렇게 낭만적이었다. 나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시원한 바람에 잠시 멍을 때렸다.
나는 한없이 뻗은 짜오프라야강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내 생애의 모든 삶도 이 한줄기 강처럼 고독이 뻗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언젠가는 홀로 죽음의 고통을 견뎌내고 스스로 인생을 정리해야 하는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했다. 그랬다. 언제나 강을 보면 내 마음은 외로웠다.
내 주변에는 언제나 따뜻한 인연이 됐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나를 진정으로 품 안에 끌어들이지 못했다. 나의 어리석고 부족한 심성이 낳은 결과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닦아야 할 삶의 길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변함없이 그 길만 걸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사랑하던지, 이미 숙명처럼 정해져 있는 그 길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반면 사유의 방식이 자유로운 나는 한 곳에 정주하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 더 큰 아파트와 더 좋은 차를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삶도, 단지 부러운 운명일 뿐이었다. 까다롭게 인생을 논하는 것도 어찌 보면 하찮은 일처럼 느꼈고, 사회적으로 얻은 지위도 과감하게 놓아버릴 준비를 늘 하고 살았다. 진정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평화였다. 진정으로 행복을 말하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일상의 위로를 얻게 되는 것처럼,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연민이 잠재워질 때야 비로소 나의 영혼은 위안을 얻었다. 그러나 내가 꿈꾸며 떠나는 삶의 길은 불분명했다. 나는 내 인생이 고독과 향수에 젖은 삶에서 완전히 떠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또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작별할 수도 없으며, 삶의 터전을 버리고 순수한 방랑자가 될 수 없다는 것도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
짜오프라야강 주위에는 작은 사원들을 많았다. 시원한 강바람을 쐬거나 미역을 감으며 한낮의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도 꽤 됐다. 이 강에는 큰 메기류의 물고기가 많지만 사람들은 잡지 않았다. 정부에서 강을 보호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어획을 금했다.
사원에 세워진 불상의 뒷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마치 강을 지키는 늙은 파수병처럼 근엄해 보였다. 부드럽고 신비로운 음성으로 강의 축복을 은은하게 노래하면서 삶의 덧없음을 가르치는 것 같았다.
민중의 아픔 어루만지는 왓 아룬(새벽사원)
하늘을 향해 솟아 오른 왓 아룬(새벽사원). 야자수와 종려나무로 채워진 정원이 이국의 신비로움을 맛보게 했다. 그곳은 세상일을 잊어버린 듯 심연과 같은 고요와 평화를 선사했으며, 달콤하고 강렬한 연꽃 향내에 빠져들게 했다. 마치 싯다르타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포옹해주는 것처럼 따뜻한 위로가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불탑에 계단이 있어 올라갈 수 있는 것도 신기했다. 태국인들은 선량하고 깊은 눈빛과 태양에 그을린 구릿빛 몸으로 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불심을 태웠을 것이다.
타오르는 이국의 정취에 취해 잠시 정신을 놓고 눈부신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그야말로 정열적이었다. 구름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무더운 열대의 습기를 분출했고, 소나기를 뿌릴 만큼 어두워졌다가 다시 푸른색으로 단장하기를 반복했다. 정열적인 하늘, 그것은 대단히 멋졌고 아직은 젊음의 향기로 넘쳐나는 나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빛깔이었다. 그러나 삶의 덧없음을 모르는 정열은 욕망이었다. 그리하여 불의와 맞서고, 그리하여 세상을 조용히 관망할 줄 알고, 그리하여 아픔과 슬픔을 미소와 사랑으로 변용시킬 수 있어야만 정말로 아름다운 정열이었다. 내가 어떻게 살든 펜을 든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기를, 또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나누며 살아가는 주제가 되기를 하늘을 바라보며 간절히 빌었다.
나는 시원한 과일주스로 갈증을 달랜 후 새벽사원으로 들어갔다. 새벽사원은 강렬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지만 이방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규모와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사찰을 보고 느끼는 감명이랄까. 그저 타국의 모든 것이 새로운 체험일 뿐, 진정으로 감동을 주지 못했다. 혹시 모르겠다. 내가 불교 신자였다면 찬란한 불교문화에 매료됐을지도. 하지만 금동색 불상을 보눈 순간부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언제나 구김 없는 미소로 삶을 완성하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싯다르타와 그를 사랑하는 민중들의 마음이 느껴져서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또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태국인들의 진솔한 삶의 애환과 정신이 녹아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고쳐먹고 사원을 자세하게 관찰했다.
입이 딱 벌어졌다. 새벽사원은 낡고 바랜 외형은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했고, 섬세한 조각과 은은한 색조는 보석과도 견줄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소박하나 광채가 있는 불상, 연약하나 견고하고 섬세한 외관, 엷고 어두우나 늦여름의 색감이 스며든 색채 등 모든 것이 민중의 깊은 불심과 정교한 장인정신으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그리고 새벽사원에는 관광객들이 많지 않아서 참 좋았다. 몸가짐에 신경 쓰거나 신발을 벗을 필요도 없어 편안했다. 새벽사원은 태국여행 중 가장 편안하고 자유로운 느낌을 주는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분명.
알카자쇼, 트랜스젠더와 성인클럽 변태라고?
파타야에 가고 싶었다. 세계 3대 쇼(미국의 라스베이거스 쇼, 태국의 알카자 쇼, 프랑스의 리도쇼) 중에 하나라고 불려지는 알카자쇼 때문이었다. 또 방콕의 칼립소쇼나 푸켓의 사이먼쇼에서 볼 수 없는 미묘한 감동도 느끼고 싶었다. 매혹적이고도 아름다우며, 새롭고도 신선한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싶었다.
여행사를 통해 미리 예약한 파타야의 Royal Cliff Beach Resort에 들어갔다. 고풍스러운 외관과 현대적인 디자인이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출혈이 심한 선택이었지만,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었던 호텔이었다.
나는 호텔의 웅장함, 혹은 화려함보다는 경외심을 일으키는 한 그루의 야자수 나무에 더욱 매료됐다. 이 야자수는 불에 탄 상처가 있는 것처럼 일그러진 모양을 하고 있었다. 마치 원시림을 마주한 듯했다. 또 하얀 구름으로 번져가는 하늘과 해변가에 늘어선 낡은 벤치, 낯익은 전주와 은빛으로 빛나는 바다도 감동적이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야외 수영장에서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고 1층 로비에서 알카자쇼를 예약했다. 유창한 영어는 필요 없다. 알카자쇼 OK라고 말하면 알아서 해준다.
태국은 젠더에 대한 편견이 없는 데다 인간의 삶을 불교의 윤회사상 안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반면 국내는 사정이 좀 다르다. 알카자쇼만 해도 언제나 눈을 치켜뜬 채 바라보거나, 냉소적이고 상업적인 어투로 소개한다. 인생은 가혹하기 마련이지만 트랜스젠더의 삶은 여행의 들뜸과 거기에서 얻어지는 여유 속에서도 냉대를 받고 있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그들을 비웃는 것일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온순하고 건전한 인생의 향락과 정도(正道)가 과연 성기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알카자쇼 관람을 끝낸 뒤 삼륜차 '툭툭'을 타고 태국 번화가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트랜스젠더들을 변태라고 비웃는 수많은 남녀가 저질 쇼와 포르노 영화를 관람하며 서비스 요금을 지불하고 있었다. 그랬다. 냉대란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됐다. 속 좁고 알량한 자존심이자 자신만이 올바르고 잘났다는 이기적인 자아애일 뿐이었다. 과연 누가 누구를 욕할 수 있을까. 아름답고 진중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삶에 돌을 던지지 않는다.
태국은 제3의 성을 국가적으로 인정하는 나라다. 전통적으로 불심이 강한 나라로서, 삶의 방법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 이상의 진리를 얻기 위해 수행과 명상을 가르치며 자비와 복덕(福德)을 구한다. 그것은 원초적으로 고통을 타고난 인간의 애환을 달래려는, 석가모니의 중생구제 정신에 있다. 태국인들은 트랜스젠더를 피해자라고 인식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의 수가 많아지고 향락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늘자 그들을 모아 세계적인 쇼를 만들었고, 무용수를 양성해서 관광 수입도 창출했다. 참 대단한 국가다.
별이 총총히 들어선 저녁, 극장에 도착했다. 극장은 넓은 정원에 둘러싸여 있어 마치 거대한 저택을 보는 듯했다.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의 음성이 극장 앞을 가득 채웠다. 귀에 익은 목소리들, 한국어였다. 카메라를 손에 들고 웃고 떠들며, 트랜스젠더에 대해 상스럽게 얘기했다.
한 외국인 무리가 내게 다가와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많은 사람 중에서 하필, 왜 나일까? 내가 서 있던 곳에는 멋진 동상이 있었고, 사람들의 번잡함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난 곳이었다. 잠시 후 다른 외국인들도 사진을 찍어달라고 카메라를 내밀었다. 나는 이 동상을 보면서 알카자쇼가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줄 수 있는 이벤트임을, 평범한 일상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색다른 체험으로 인도할 것임을 확신하고 또 확신했다.
쇼가 시작됐다. 정말 쇼 자체는 멋졌다. 사람들은 트랜스젠더가 나온다고 하니 온갖 변태적인 쇼를 예상했나 보다. 다들 싱겁다, 별 게 아니라고 말했다. 트랜스젠더는 변태가 아니라, 평범한 우리 이웃일 뿐이다. 더도 덜도 아니다.
알카자쇼에서는 관광객들을 위해 여러 나라의 민속쇼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아리랑, 부채춤, 장구춤도 나온다. 북한의 예술을 전수받아서인지 한국 전통 무용과는 사뭇 다르다. 내가 아는 대중가요도 몇 곡 흘러나왔다. 무척 신기했다. 알카자쇼에서는 아름다운 여성들이 등장해 다양한 춤과 노래, 코미디도 공연한다.
쇼가 끝나고 넓은 객석을 지나 밖으로 나왔다. 앞마당에는 몇 명의 무용수들이 함께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손을 내민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악수를 하고 그녀 옆에 섰다. 나는 준비도 없이 한 장의 사진 속에 추억을 남겼다. 공짜는 없다. 사진 한 컷 당 1달러.
극장에서 벗어나 번화가로 향했다. 태국의 나이트 라이프를 느껴보기 위해서였다. 삼륜차 툭툭 운전사의 소개로 들어선 또 다른 극장.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벌거벗은 여자들과 남자들이 각종 쇼를 하고 있었다. 거칠고 폭력적인 환경과 노골적인 쇼, 현란한 수음...... 예상치 못했던 경험에 현기증이 일었다. 인간 세계라는 것이 참으로 다양한 것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남성 서양인이다. 이곳은 태국인의 안내가 없으면 외국인은 들어갈 수 없다. 철창으로 된 출입구는 커다란 자물쇠로 잠겨져 있어, 흡사 교도소를 방불케 했다. 또 안에는 이중문이 있었으며 첫 번째 문을 지날 때 나중에 돌려주겠다며 소지품까지 빼앗았다. 나는 서로를 위해 좋은 일이니, 조심스럽게 가방을 건넸다.
나는 그들에게 매몰찬 눈빛을 보내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삶이요, 인생이니까. 세상은 다양한 모습으로 공존하면서 굴러가며, 그렇게 입에 풀칠을 한다.
늦은 밤, 톡톡을 타고 호텔로 돌아와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풍경을 회상하며 잠을 청했다. 글로 남기기엔 별다른 게 의미 없는 이야기지만 내일은 무에타이도 보고, 안마도 받고, 해수욕도 해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때 머릿속에서 한 여자가 떠올랐다. 속죄의식으로 사는 여자였다. 그녀는 항상 자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채찍질했고 수양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녀는 타인에게 관대하지 못했다. 속죄를 강요했다. 또 자신이 피해자라는 망상, 인복이 없다는 자기 학대에 빠져 있어 주위 사람들을 피로하게 했다.
알카자쇼를 회상하니 그 사람이 생각난다. 우리가 죄인을 대하듯이 냉대하는 그들, 죄인, 죄인, 죄인. 서로를 헐뜯고 살지 말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 따뜻하게 서로를 맞아주자. 우리는 모두 외로우니까......
'이야기 > 여행과 사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천 - 빙어낚시를 떠나다 (0) | 2022.09.21 |
---|---|
율포해수욕장 - 수채화 같은 바다에서 (0) | 2022.09.10 |
추암 - 고요함, 자연으로부터 얻은 안식 (0) | 2022.09.07 |
밥줍기 - 소확행 여행의 즐거움 (0) | 2022.09.07 |
통영 - 사색 넘치는 고장, 떠나는 자의 즐거움 (0) | 2022.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