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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문학] <인터뷰> 홍기돈 문학평론가 - 친일문인들의 논리적 정당성 해부

이동권 2022. 8. 26. 19:02

홍기돈 문학평론가, 가톨릭대학교 교수


홍기돈 평론가를 만나 친일문인들이 내세웠던 논리적 정당성에 대해 얘기를 나눠 보았다. 홍 평론가는 친일문학 연구의 차세대 주자 역할을 다부지게 해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친일 문학가들은 일제의 지배논리와 전쟁의 이론적 기반이 됐던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에 동조해 민중들에게 많은 악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면서 대규모 징집과 징병, 종군위안부 등을 적극 선동한 것이다. 이들은 왜 식민지의 현실을 외면하고 친일 문학인으로 전향한 것일까.

"일제강점기에 친일로 전향한 문인들은 두 가지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는 '내선일체'에 동의했던 문학가들입니다. 근대주의를 주창하는 사람들이었죠. 그 대표적인 예가 이광수입니다. 1938년 10월 중국 무한삼진이 일본에 함락됐습니다. 이곳은 동방의 마드리드라고 불리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조선의용군도 싸웠던 곳이고요. 문인들은 일본과 중국의 전쟁이 한창일 때 중국이 이기면 독립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패하자 큰 충격에 휩싸인 지식인들은 중국을 비판하면서 친일로 들어섰습니다. 중국은 봉건이고 일본은 근대라고 논리적인 정당성을 부여하면서요. 또 하나는 '대동아공영'을 부르짖으며 근대의 종말을 고했던 문인들입니다. 이 시기의 문인들은 근대를 비판하면서 근대 이후의 신체제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에 소설가 채만식이 있습니다. 1940년 3월 중국 혁명의 선도자 '쑨원'의 양 날개로 불리던 '왕정위'와 '장개석'이 있었습니다. 장개석은 계속 싸우자고 주장했으나, 왕정위는 일본과 타협안을 내고 친일정부를 세웠지요. 이때는 프랑스 파리가 나치에 의해 함락된 시기입니다. 이 사건도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파리는 근대의 정서가 싹튼 곳이었거든요. 이에 지식인들은 또 한 번 큰 충격에 빠지고 친일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반면 홍기돈 평론가는 우회적 글쓰기와 절필로 일제에 저항하는 문인들도 많았다고 지적했다. 

"내선일체나 대동아공영을 내세웠던 친일문인과 다르게 김기림 같은 작가는 글 한 개 쓰고 고향에 내려가 학교 선생님을 했습니다. 김사량은 만주에 들어가서 조선의용군이 됐고요. 글을 포기하기도 했습니다만 직접 총을 들고 싸움터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는 창씨개명을 했거나 일본어로 글을 썼다고 해서 친일문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친일 세력들의 물타기 작전이라고 강조했다. 해방 이후 친일인사들이 자신들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 늘어놓는 소리라는 것이다.

"일본어로 글을 쓰고, 창씨개명을 하고, 일제의 강압에 의해 글을 썼다고 해서 친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런 논리는 자신들의 친일 전력을 희석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실제 김사량 같은 작가는 일본어로 글을 많이 썼습니다만 일본의 양심 있는 사람들을 지향하며 쓴 글이지 친일문학이 아닙니다. 이런 경우를 친일로 봐서는 안 되겠죠. 또한 시인 윤동주는 도항증을 발급받기 위해서 일본에 갈 때 창씨개명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참회록을 썼지요."

홍기돈 평론가는 서정주에 대해서도 평했다. 

"서정주의 삶과 작품은 첫 번째 시집 '화사'와 두 번째 시집 '귀촉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화사' 시집에서 서정주는 '랭보의 두개골'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랭보가 돌아다니다가 어머니와 여동생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너는 신의 존재를 믿느냐'라고 물었던 것을 비판하던 시입니다. 그는 다리가 하나 부러졌다 해도 랭보는 돌아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랭보의 모더니즘은 실패했지만 자신만은 꼭 이뤄낼 수 있다고 장담했습니다. 서정주는 만주, 금강산, 해인사 말사가 있는 산속까지 방랑을 했습니다. 더럽고 추한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않겠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는 전 세계와 맞선 모더니스트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 시절의 그의 시 '자화상'에서 나온 '나는 뉘우치지 않겠다'라는 말은 친일에 대해 뉘우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속물 같은 세계를 떠나 방랑의 세계로 뛰어들었던 것을 뉘우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서정주는 두 번째 시집 '귀촉도'를 내면서 모더니즘을 지향했던 자신을 실종하고 말았다. 현실세계의 갈등은 제거되고 현실에 맞서는 작가정신 또한 거추장스럽게 된 것이다. 귀촉도는 사람이 죽으면 우는 새로서, 영원한 세계인 저승과 일시적인 세계인 이승을 이어주는 매개체이다. 영원성을 갈증했던 그는 결국 '귀촉도'를 통해 천황에 집중하고 만다.

"서정주는 '화사' 시집이 나온 이후 모더니즘과 결별하고 친일로 들어섰습니다.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힘들었고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죠.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절대적인 존재를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천황'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상대방을 이상화합니다. 눈에 콩깍지가 쓰인 것처럼 한 사람을 '이상 자아'의 자리에 갖다 놓습니다. 이런 관계에서 자신은 점점 작아지고 대상은 점점 중요한 것이 됩니다. 결국 자신의 자아를 지워버리지요. 특별한 상황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한 사람을 '이상 자아'의 자리에 들어다 놓습니다. 이를 우리는 파시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서정주의 경우에도 그 시절 그가 흠모했던 대상이 바로 일본 천황이었으며 ‘친일 파시즘’을 찬양합니다. 그에 의해 통제받고 지시받기를 원합니다. '화사'에서 '귀촉도'로 넘어가면서 강렬했던 자아를 없애버린 것이지요. 어떤 문인들은 삶과 문학을 분리시키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정주의 경우를 보더라도 삶과 문학이 따로 하지 않음은 알 수 있습니다. 서정주는 해방이 되면서 이승만을 다시 그 자리에 놓습니다. 파시즘 체제의 심미적인 것, 문학, 사고체계의 유형이 반복됐지요. 친일을 얘기하면서 단순하게 친일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의 문제로 생각하지 말고 그때 만들어진 것들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함을 느낍니다. 친일청산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문학계에 불고 있는 탈식민주의 이론에 대해 물었다. 그는 탈식민주의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입장이다.

"요즘 문학계에는 민족적인 것을 버리자는 '탈식민주의 이론'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탈식민주의는 종군위안부들이 돈을 받았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와 같은 것입니다. 한국을 말살했던 일본의 군대와 일제에 대항했던 의병을 싸잡아서 '사람을 죽인 것은 나쁜 것이다'라고 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프랑스나 독일처럼 자기중심적이었던 이들이 민족적인 것을 탈피하겠다고 해서 우리가 덩달아 그런다는 게 말이 됩니까. 친일인명사전 만드는 일을 국회에서 막은 나라가 한국입니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뿌리부터 세워야 하는 법인데, 이런 것을 막는 세력이 있어서 문제입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민족의 근간까지 흔들고 있지 않습니까. 구체적인 사실 관계조차 규명하지 않고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됩니다. 우선 학자들이 구체적인 실증자료를 만드는 작업이 선행된 후 논의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식민지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탈식민주의라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