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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인터뷰>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 정신적 가치기준 바로 세우는 일제잔재청산

이동권 2022. 8. 10. 16:59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이사,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부위원장


사소한 것에서 균형을 잃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리 거센 폭풍우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프톨레미의 바위가 아스포델이라는 꽃이 닿자 몸을 떨면서 부서져버렸다는 유명한 이야기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침투한 사소한 것들로 인해 정체성을 잃고 지배당할 수 있음을 깨우쳐주는 것이리라.

일제 잔재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 문화생활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일제 잔재를 인식하고 청산하지 않으면 진정한 해방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을 만났을 때는 해방 60주년, 을사늑약 100주년, 강제병합 95주년이 되는 2005년이었다. 이후로도 민족문제연구소에 일이 있어 들를 때마다 가끔 뵌 듯하다.

"올해는 우리 모두가 민족의 근현대사를 진지하게 성찰해보는 의미 있는 한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가해자인 일본이 무자비한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잘못된 과거사를 정당화하면서 급속히 우경화하고 있는 현실은 그간의 경계심이 결코 기우가 아니었음을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조세열 사무총장은 미완의 과제로 끝나버린 일제잔재일제 잔재 청산이 자신의 숙명적인 소임이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또 제대로 발굴하지 못하고, 제대로 바로잡지 못한 일제 잔재들이 우리 사회에 고스란히 남아 고착화되면서 시나브로 민족의 의식세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개탄했다.

"비록 늦긴 하였지만, 식민지배의 부끄러운 유산을 바로 알고 잡아야 합니다. 주변국들의 반발을 일축하면서 야스쿠니 신사참배, 교과서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재무장을 위한 평화헌법 개정 등 퇴행적인 역사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일본을 보면서 이를 제대로 비판하려면 먼저 우리 내부의 자성과 역사 청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해야 하겠지요."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유무형의 식민문화 잔재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일제강점기 시대의 식민잔재는 언어, 문화, 교육, 산업 등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부문에 걸쳐 민족의 의식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일본제국주의가 우리 땅을 식민통치하면서 남겨놓은 부정적 유산이 많습니다. 이것을 '일제 잔재'라고 하지요. 일제 잔재는 신사나 황국신민서사탑 같은 건축조형물 형태로 남아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무형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부지불식간에 한민족의 의식세계를 지배하면서 사회에 해독을 끼치고 있습니다."

조세열 사무총장은 우리 근현대사를 반추하고 새롭게 조명해 보아야 할 의미 깊은 시점에 도달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먼저 일제잔재가 무엇이고, 어느 부문에서 어떤 영향이 있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방안을 짜내야 하는지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관광부가 광복 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일제문화잔재 지도 만들기'를 국민참여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식민통치 가해자인 일본의 위정자와 극우세력에 의해 역사왜곡과 우경화가 노골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는 우리 내부의 자성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이승만 정권 때 정치적 기반이 없어서 친일파를 주류 기반으로 등용했고 반공 이데올로기를 전면으로 내세웠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만주 인맥을 대거 등용하면서 친일파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친일파나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해방 60년 동안 일제 잔재를 극복하려는 진정한 노력이 없었습니다. 전문 연구가들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거든요. 역사문화에 대한 생활 속의 실천운동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국가기관과 민간단체가 긴밀히 협조하는 것은 물론 정부를 비롯한 범 국민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몸과 마음이 황폐해진 정신질환자가 있다. 한 의사는 그의 병을 고치기 위해 비싼 약물치료만 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의사는 병의 근원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일로 치료를 시작했다. 전자와 후자 중에 어떤 사람이 훌륭한 치유자인가.

언제부터인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과거는 하찮은 것, 또는 현실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굴절되는 일도 많았다. 물론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올바른 현실을 만드는 일은 최초의 원인부터 밝혀내고 고쳐나가는 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하다. 특히 과거의 것들이 고쳐지지 않고 현실에 남아있을 때에는 말이다.

조세열 사무총장도 과거 친일청산의 잣대를 들이대지 못한 점은 유감이며, 현재의 일제잔재를 극복하는 일도 과거의 역사를 올바르게 청산하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친일청산은 정신적인 가치기준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친일세력은 거의 다 죽었고 법적인 책임도 소멸된 상태입니다.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올바른 진상규명을 통해 학문적인, 역사적인 과거 청산이 이뤄져야 합니다. 왜색은 일제 잔재라고 규정할 수 없습니다. 왜색은 말 그대로 일본의 색입니다. 일본의 생활양식을 뜻하는 말로써, 시기를 불문하고 일본의 영향이 짙게 밴 문화 경향을 포괄하는 것이지요. 저급하고 천박한 일본의 문화도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이지만, 명백히 일제 잔재와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사안입니다. 일제 잔재라는 것은 일제강점기에서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벌인 일이며, 장기간에 걸쳐 구축된 식민지배구조의 유제란 점이 왜색문화와 차별성을 갖고 있습니다."

일제는 조선을 식민통치하면서 자신들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영속화하기 위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부문에 걸쳐 한민족의 삶 깊숙하게 지배논리를 주입시켰고 합리화했다. 지금도 일본의 극우세력들은 한일갈등의 비화를 조장하면서 군국주의의 재도약을 모색하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 그에게 일본에 가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일본의 분위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그는 일본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일본의 수많은 양심세력들과 만남을 가지면서 한일 시민사회단체들의 강한 응집과 협력 모색이 절실함을 느꼈다고 했다.

"저는 일본에 가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만난 일본인들에게 느낀 점은 양심세력이 다수이며, 이들과 함께 협력해서 역사 청산의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정치적 극우세력이 표면적으로 돌출해서 전체적으로 보일 뿐입니다."

그는 일본과 한국은 과거청산이라는 의미에서 동전의 양면과 같은 비극을 함께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일본은 종전 이후 군국주의 세력을 청산하지 못했으며, 한국은 친일세력을 청산하지 못했다는 것. 덧붙여 그는 일본은 제도적으로 민주주의지만, 의식과 생활적인 면에서는 멀었으며, 한국은 민주화의 역동성에서는 일본보다 앞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는 일제잔재 청산에 실패했다. 이로 인해 일제강점기에 구축된 인적 물적 토대를 허물지 못하고 반민족적 반민주적 지배구조를 온전히 유지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친일 인맥은 각계에서 주류로 행세하면서 과거 청산을 저지 방해하고 일제 잔재를 존속시키는 주요인이었습니다. 일제는 우민화 정책을 추진, 노예 의식과 패배주의를 만연 시킴으로써 민족자존의 의지를 원천 봉쇄했으며 폭압적인 관료제와 권위주의적인 법령체계를 채택하고 헌병, 경찰 통치를 통해 조선 민중을 순응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는 일제잔재 중 가장 구조적이면서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큰 분야가 법과 제도 의식 등 관념 체계 속에 남아 있는 식민 유제들이라고 지적했다.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사상과 양심,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면서 획일적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도구로 기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식민지 권력과 결탁한 매판자본을 제한적으로 육성하고 수탈구조를 체계화시켰습니다. 사회면에서는 사회관계를 학연, 지연, 혈연 단위로 분산해 분리 지배했고요. 문화면에서는 감상적 허무주의 정서를 조장해 사회 비판의식을 마비시키고 현실도피에 빠지게 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조선 민중을 침략전쟁에 동원하는 것은 물론, 만주 지배 등에 첨병으로 악용해 2등 신민으로서 아류 제국주의의 망상에 빠지게 하였으며, 침략 피해국들의 민족적 적대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종국에는 내선일체 황국신민화 정책을 추진해 아예 민족의 언어와 문화 나아가 민족 자체의 말살을 기도하기도 했죠.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 시행된 각종의 국가주의적 시책은 사실상 식민지 지배정책을 답습한 결과였습니다. ‘황국신민의 서사’와 ‘교육칙어’를 모방한 ‘국기에 대한 맹세’와 ‘국민교육헌장’, 주민통제를 목적으로 한 반상회나 치안유지에 관한 여러 법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10월 유신은 식민지 지배구조의 재현이었으며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총화였습니다. 일제의 문화적 잔재는 우리의 생활 주변에 널려 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교육계의 각종 의례나 제도 교과내용 등은 황국신민을 양성하던 획일적인 식민지 교육체계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계에 남아있는 일제잔재도 결코 소홀히 보아 넘길 수 없습니다. 국가 주도, 관 주도의 각종 문화행사나 서열주의 도제 관계 등은 창의적인 발상을 가로막아 궁극적으로 문화발전을 저해하고 있습니다. 또 일제강점기에 스며든 다양한 형태의 문화예술 양식이 아무런 문제제기도 없는 가운데 마치 우리 고유의 것인 양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조 사무총장은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훼손되고 변형된 우리의 유무형 문화유산에서 일제잔재를 씻어내고 원형을 복원하는 일도 시급한 과제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일상 속의 언어와 전문분야의 용어, 서식에도 일제잔재가 남아 있으며 놀이문화, 풍속, 지명 등에서도 쉽게 식민지 시대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군대나 체육계에 일상화되어 있는 기합과 구타도 그 뿌리가 군국주의 일본의 황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생활 전반에 걸쳐있는 일제 잔재는 어떻게 청산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일제의 영향, 특히 파시즘적 독소를 지닌 법이나 제도, 의례, 용어, 관행 등은 그 부정적 측면을 고려해서 빠른 시일 내에 철폐하거나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기세가 죽지 않은 획일주의, 전체주의 이런 따위들은 민주사회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친일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자세로 풀어나갔으면 합니다.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은 반대합니다. 여야 가리지 않습니다.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반역사적 행위입니다.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의 역사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역사 바로 세우기가 철거와 같은 흔적 지우기로 갈 때, 우리는 또 다른 역사 말살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됩니다. 건축 문화사적으로 가치 있는 건축물은 마땅히 보존되어야 하며, 신사나 보국탑, 내선일체탑, 황국신민서사탑 등 조형물들은 치욕의 시대를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세한 내력을 담은 표석을 설치하고 기억과 책임의 근거로 삼아야 합니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박물관이나 자료관으로 옮겨 교육자료로 활용해야 합니다. 규모 있는 일제강점기 군 관련 건축물이나 관공서, 은행, 농장관리소 등은 침략사나 수탈사자료관으로 활용하면 보존과 반성 양 측면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35년간에 걸친 세계 사상 유례를 보기 힘든 가혹한 식민통치의 결과, 우리 민족은 막대한 경제적 수탈과 강제동원으로 인한 물적 인적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가시적 피해도 컸지만 보다 깊은 상처가 남은 곳은 민족의 정신세계였습니다. 일제강점기 민족문화는 일제의 치밀한 계획 아래 말살되고 오염되었습니다. 물질적 피해는 쉽게 복구할 수 있지만 한번 훼손된 정신문화를 온전히 치유하고 복원하는 데는 지속적인 노력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일제 잔재, 특히 문화 속의 일제 잔재 청산을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우리 모두가 나서서 왜곡되고 오염된 민족문화를 온전히 복원하고 한 단계 발전시키는 역사문화운동을 벌여나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