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故 구본주 씨의 죽음을 둘러싸고 삼성자본의 추악함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구본주 씨는 구상 조각계의 차세대를 잇는 기대주였다. 김복진, 귄진규, 류인 선생의 계보를 이어 한국의 미술계를 이끌어나갈 주역이었고, 불의의 교통사고로 이 세상과 이별하기 전까지 그는 예술혼을 불태운 예술가였다. 그러나 그가 교통사고로 죽자 삼성화재가 그의 예술성을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보상금 때문이었다. 국내 보험업계 1위, 사회사업에 앞장서고 있다고 자랑하는 삼성화재가 교통사고 보상금을 조금이라도 덜 주기 위해, 또 유사한 보험금 지급 사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 한 조각가의 삶과 작품을 인정할 수 없다고 나섰다.
'故 조각가 구본주 소송 해결을 위한 예술인 대책위원회' 대변인이며, 민예총(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정책기획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안태호 씨를 만나 구본주 씨와 삼성화재의 소송에 대해 들어 보았다. 그는 현재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이사로 활동 중이다.
"예술계에서 그의 죽음은 커다란 뉴스입니다. 이제 막 그의 작품이 만개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한국 미술계의 큰 슬픔입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가해자는 1심에서 형사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도 자기 과실을 인정했는데, 삼성화재가 뒤집겠다고 나섰습니다. 보상금을 조금이라도 덜 주기 위해서죠. 다른 예술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그만한 예술가도 인정받지 못하는데, 우리들은 개 값도 안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적어도 삼성한테는."
그랬다. 삼성화재는 故 구본주 씨의 사고사를 자살로 만들었고, 촉망받던 예술가를 백수로 몰아세웠다. 또 예술가의 정년을 임의대로 산정했으며, 조각가로서의 경력조차도 인정할 수 없다고 소송을 벌였다.
"삼성화재는 피해자의 잘못이 70%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구본주 씨를 가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유가족들도 이 얘기 때문에 가장 분노하고 있습니다. 차의 스키드마크(타이어 자국)를 보면 구본주 씨를 차로 친 후 브레이크를 밟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했거나 한눈을 팔았다고 추정할 수 있죠. 또 삼성화재는 구본주 씨의 실질소득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통계소득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돈을 벌었다고 증명할 수 없다면 보상금을 주지 않겠다는 얘기죠. 유가족들은 돈 몇 푼 더 받겠다고 일일이 찾아다닌다는 게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 같아 그만두었습니다. 하지만, 삼성의 1심 항소에 너무 기가 막혀 소득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다 준비했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보험설계사였던 아주머니의 남편이 술에 취해 실족사를 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다른 보험회사에서는 모두 인정했는데, 유독 삼성만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수사 발표도 믿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서 밀어 부친 게 삼성입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씨는 세계적인 예술작품들을 삼성문화재단 산하의 호암아트홀 수장고 등에 끌어 모으고 있다. 예술 작품을 구입하면 세금우대혜택이 주어지고, 투자가치도 있기 때문이다. 미술계에 종사했던 사람이라면 국내 상업갤러리 전시회에서 그녀를 종종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예술작품을 대하는 삼성의 본질이다.
故 구본주 씨의 죽음에 대해 삼성이 주장하는 것은 교통사고사의 과실범위, 작가의 가동연한(정년), 수입 산정 문제다.
"삼성은 길을 걸어가던 사람의 교통사고 과실을 어떤 증거도 없이 70% 조작 주장했습니다. 또한 조각가 구본주 씨의 정년을 60세로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육체적 노동을 주된 업무로 하는 직종이기 때문에 정년을 60세로 봐야 한다는 논리지요. 또 구본주 씨가 대학 시간강사를 시작한 이후부터 조각가로서의 경력을 인정하겠다고 합니다. 예술활동에 대한 수입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죠. 시간강사 수입이 도시 일용노임에도 미치지 못하고 실질소득도 입증할 수 없어, 도시 일용노동자의 임금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사건은 돈 몇 푼 더 주어지고 덜 주어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삼성화재가 예술가의 창조성과 상상력을 기계부속처럼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의 작품은 실내에 전시될 수 있는 소형 조형물도 많고, 조각가들은 70대가 되어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거장들의 걸작은 칠팔십대에 나왔던 사례도 많고요. 그런데 이 소송을 삼성화재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삼성화재는 보상금 몇 푼 때문이 아니라 이와 같은 유사 사례를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환금성이 증명되지 않는 예술의 가치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자본의 추악한 논리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예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얘기하는 사례라고 봅니다. 삼성화재가 주장하는 것처럼 수입을 증명할 수 없는 예술활동이 도시 일용자로 여겨질 성질의 것인지, 예술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지 못하면 존재할 가치조차 없는 것인지,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삼성화재는 유가족들에게 사과하고 항소를 포기해야만 삼성화재도 자신의 명예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삼성과 싸울 것입니다. 삼성의 이중성, 그 추악한 가면을 벗겨버릴 만큼의 열정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X파일 사건을 통해 삼성으로 표방되는 자본의 추악함이 드러난 것처럼, 삼성 자본의 힘과 능력은 민중을 착취한 대가로 이뤄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안태호 대변인의 얘기를 들으면서 느낄 수 있었다.
사고 당시 故 구본주 씨는 37살이었다. 메이저급 미술관에서 3회의 초대 개인전을 열었으며,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20여 곳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그러나 삼성은 이를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구본주 씨는 전국대학미전 동상(1987), MBC 한국구상조각대전 대상(1993), 모란미술작가상(1995), 한국민족문화예술인 100인 선정(1997), KBS 문화사랑 ‘발굴 이 사람’ 선정(1999),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미술작가 500인 선정(2000), 제1회 SAC 2002 젊은작가 선정(2002) 등 다수의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또 한국청년조각전(1993), 동학100주년 기념전(1994), 광주비엔날레 특별전(1995), 한국조각가 100인 초대전(1996), 21세기 주역전(1997), 2000PICAF국제바다미술제 초대(2000), KERALA international Workshop of Sculpture(India)(2001), 21세기와 아시아 민중전(2002) 등에 작품을 출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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