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김충조 국회의원 - 정치인이 그린 한국화는?

이동권 2022. 8. 12. 16:42

김충조 의원 ⓒ김충조


김충조 국회의원이 한국화 전시회를 열었다. 4선 국회의원인 그의 화력은 30년이 넘었다. 그는 편안한 묵취와 단아한 필정이 넘치는 실경산수화를 주로 그린다. 

"정치라는 것은 동태적이기 때문에 선과 악을 망라한 잡다한 요소들이 혼재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에는 한 점의 속됨과 티끌만큼의 거짓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준엄한 명제가 있기에 한없이 저를 주눅 들게 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김충조 한국화전' 보다는 '정치인 김충조 한국화전'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예술인이 아닌 정치인 김충조의 그림에 속되고 티끌 섞인 의도가 있더라도 폭넓게 헤아려주라는 뜻입니다. 전통 예술인들에게도 참으로 송구스럽고 염치없습니다."

김충조 의원의 그림은 여느 화가의 작품 못지않게 드넓고 깊다. 특히, 통통하게 살이 오른 잉어도는 선과 획, 여백과 먹의 농담을 표현함에 있어 한치의 어색함을 발견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생동감이 넘친다. 붓에 대한 숙련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는 그림이다.

그의 그림에는 자신의 의지를 담은 시가 있어 감흥을 더한다. 그가 그림을 그리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착하고 숭고한 白衣(백의)여.
옷자락을 찢어발겨서 심장을 짓누르고
선혈 낭자하게 할퀴어 왔음도 부족하던가?
千年(천년) 역사를 훔치려는 섬나라 좀도둑 근성에
바다조차 분노하여 眞理(진리)를 일깨우는가?

한길 김충조 전의원의 그림 '독도'에 적힌 자작시다.

 

독도, 61X51cm, 한화지, 수묵 채색 ⓒ김충조


한국화는 관찰과 상상의 결집체다. 먹의 검은빛과 종이의 흰빛, 그리고 천연 재료에서 얻은 색조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만들어내는 예술이다. 그래서 서양미술사보다 동양미술사는 더욱 관조적이지만, 날카로움의 미학을 숭상하며 이어져왔다. 이런 특징은 여백의 미 즉,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으나 상상으로 만들어내는 영역에서 찾을 수 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그 여백에는 하늘이 있기도 하고, 화조(花鳥)가 노닐기도 하며, 푸른빛의 수평선이 있기도 하다. 

한국화는 그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보는 이의 내면을 담아낸다. 어떤 세계관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림의 맛이 달라지기에 예로부터 한국화는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 명상하는 것이라고 전해진다.

김충조 의원의 그림도 세속의 어지러움과 사사로움을 인내하면서 얻게 되는 평화로움이 숨 쉰다. 딱히 뭐라고 말은 할 수 없지만 아득하기도 하고 나른하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 그림 속에 들어가 은은한 향을 풍기는 차(茶)를 마시고 싶은 충동이 인다.

김충조 의원의 한국화 개인전은 1973년 6월, 1981년 1월, 1985년 2월에 이어 4번째이다.

"11, 12대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13대 총선부터 민주당에 입당해서 4선을 했지요."

"어릴 적부터 그림을 잘 그렸습니다. 다른 화가들처럼 교육을 통해 습득한 것이 아니라 천부적으로 타고난 것이었죠. 재학 시절, 그림에 소질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선생님들이 저를 미술대회에 반강제적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처음 총선에 출마했을 때가 1981년도였는데, 이름 없는 정치인에게 후원하는 단체나 기업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컸었지요. 그때마다 제 그림을 사주시는 후견인들이 있어 그나마 정치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4선 의원이라고 하면 경제적으로 넉넉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만큼 요구하는 사람들도 많고 도와줄 것도 많은 법입니다. 일부에서는 너무 오래 해 먹은 거 아니냐, 4선 의원의 재산이 왜 꼴찌를 맴도느냐고 의아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들은 일부 정치인들은 잘도 챙겨 먹는데, 못 챙겨 먹으니 무능력한 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김충조 의원은 "17대 총선에서 탄핵 후폭풍으로 참담한 슬픔을 맛보아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참 정치인상을 일깨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선거에 떨어지면서 휴면기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탄핵은 우리나라 50년 정치사에서 있어서는 안 될 수치스러운 사건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탄핵이라는 쟁점 없이 국민들이 저를 거부했다면 모르지만,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고배를 마시게 된 것이니, 아직 저에게 정치인으로서의 역할이 남아 있는 것이죠. 17대 총선 낙선 후, 그림을 그리면서 가슴속의 온갖 상념들을 다독거렸습니다. 좌절과 실망, 배반과 분노, 진실 왜곡과 중상모략, 재임 때와 낙선 이후의 차별이 적용되는 무원칙한 사회규범 등이 주는 남다른 비애도 삼켜야 했습니다. 그로부터 저를 달래고 이 상황을 뛰어넘고자 인내를 익히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개인전을 열어야겠다는 용기도 얻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