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이경희 인천여성민우회 사무국장 - 모두가 웃는 행복한 명절

이동권 2022. 8. 12. 15:57

좌)이경희 인천 여성민우회 사무국장, 우)2005년 웃어라 명절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인천여성민우회


명절만 되면 주부들의 볼멘소리가 쏟아진다. 모두가 즐거워야 할 명절에 '왜 여성들만 뼛골 빠져야 하느냐'는 것이다. 더욱 심한 경우에는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불면, 위장장애, 호흡곤란 등을 호소하는 주부들도 생긴다. 이른바 '명절증후군'이다.

명절증후군은 명절이 가까워지면 나타나는 증상으로 과거 명절에 겪었던 경험이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증상이다. 이러한 증상은 핵가족화된 가정의 주부들이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남아있는 명절에 적응하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강도 높은 가사노동에 따른 피곤, 제사나 음식을 준비하면서 겪는 성차별적인 문화, 시댁에 비해 친정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되는 좌절감 등이 가장 큰 이유다.

가족들과 함께 가사를 분담하면서 남성 중심적인 명절문화를 조금씩 평등하게 고쳐 나간다면 쉽게 극복할 수 있겠지만, 유교적인 문화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인천여성민우회 이경희 사무국장은 "다행스럽게도 주부들의 명절증후군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가사노동에 대한 젊은 남편들의 인식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혼 남성들의 변화가 눈에 띕니다. 요즘 대부분의 남성들이 가사노동에 대해 '당연히 해야지'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좋은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평등명절을 만들기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캠페인을 벌였습니다만 요즘은 호응도가 높은 편이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천여성민우회는 2001년 추석부터 대안명절문화 만들기 '웃어라, 명절'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함께 일하고 함께 쉬는 명절문화를 정착하기 위함이다.

"캠페인 기간 동안 웃는 명절을 위한 7가지 지침을 내렸습니다. 온 가족이 웃는 명절 계획을 세우기, 남녀가 모두 함께 하기, 형편에 따라 형제와 자매, 시가와 친정 구분 없는 명절 만들기, 음식과 차례상의 간소화, 조상 모시기는 고인을 기리는 마음으로, 함께 즐길 수 있는 명절놀이 찾기, 이웃과 정을 나누는 명절 만들기입니다. 함께 일하고 쉬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명절이 될 텐데 아쉽잖아요.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남성 중심의 명절문화에 젖어 있습니다. 가사노동은 여성들의 차지이며, 명절이 돼도 친정에 갈 수 없는 며느리들이 많습니다. 이런 명절문화 때문에 남자들도 힘이 듭니다. 남자라는 이유로 주어지는 책임감 때문에 힘들다고 성토하는 아내의 눈치를 보게 되거나, 스스로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가정 내 평등 실천이 사회 전체의 평등문화를 만드는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만 챙긴다면 여자도 남자도 활짝 웃는 명절이 될 것입니다. 추석 때 힘든 일들을 같이 나누면서 그날을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합니다. "

실제, 이경희 사무국장의 명절 나기는 어떠할까? 속 사정을 들어보았다.

"시어머니께서 일을 하시기 때문에 간편하게 제사 음식을 준비합니다. 남편도 즐거운 마음으로 잘 도와주고요. 함께 공부방 자원교사를 하던 사이였기 때문에 뜻이 잘 맞습니다. 부부가 함께 일을 분담하는 것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제사를 간소화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친정에서는 제사 음식 준비가 과한 편입니다. 실상 음식을 준비하는 것보다는 설거지가 힘든 일이긴 합니다만 지나치게 많이 준비해서 음식이 남습니다. 너무 낭비인 것 같습니다. 먹을 만큼만 했으면 합니다. 한편으로는 음식을 많이 준비하시는 어머니의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거든요. 자식들이 돌아갈 때 뭐 하나라도 챙겨주시고 싶은 마음 때문에 힘드시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하시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경희 사무국장은 열린 남자들의 바람직한 명절 나기에 대해 설명했다. 명절에 여성들만 힘든 것이 아니라면서 말이다.

"민우회 회원의 신랑은 명절 하면 '아! 또 움직여야 하는구나"하며 장시간 운전에 대한 스트레스를 털어놓곤 합니다. '일하느라 지친 아내 옆에서 마음 편하게 쉴 수도 없겠구나'라고 한숨을 쉬기도 하고요. 그는 제사가 간편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더군요. 제사음식의 양과 수가 줄어들면 자신도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면서요. 이 회윈의 제부는 형제들과 부딪쳐야 한다는 생각에 명절이 즐겁지 않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서로 헐뜯거나 비교하면 서로에게 상처만 준다는 것이죠. 각자 나름의 위치에서 상대를 배려하면 불화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빠의 경우에는 결혼에 대한 의무감 때문에 가족들과 친지들을 만나기가 두렵다고 합니다. 친척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듣기 싫은 부모님의 마음이 급해져서 외국인 여성까지 며느리감으로 권한다고 하더군요. 자신은 자신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싶은데 말이죠. 명절에는 즐겁게 만나서 푹 쉬게 배려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무국장은 장남 위주의 가부장적인 명절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소신을 덧붙였다.

"장남, 차남이 돌아가면서 명절을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명절이나 제사가 돌아오면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장남만 준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요. 조상 모시기는 장남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양가의 부모님을 함께 찾아가는 명절문화를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