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김보연 영화진흥위원회 애니메이션지원팀 대리 - 태권브이가 마징가 도용? 경계해야 할 식민사관

이동권 2022. 8. 12. 17:00

김보연 영화진흥위원회 애니메이션지원팀 대리


로보트 태권브이 1탄 인터네가필름이 복원됐다. 영화 전편에 대한 디지털영상복원은 이번이 국내 최초다. 로보트태권브이 복원작업은 2003년 8월 테스트를 시작으로 2005년 9월 마무리됨으로써, 그동안 필름상영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로보트태권브이 1탄을 극장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로보트태권브이 복원작업에는 총 72명의 인원이 참여했으며 10억 원의 예산이 소요됐다. 영상복원은 인터네가필름을 디지털로 전환했다. 총 108,852 프레임에 생긴 스크레치와 그레인을 제거하고 색보정을 했다. 사운드 복원은 기존의 모노사운드에 생긴 노이즈를 제거한 버전과 5.1채널 돌비레코딩으로 재녹음한 버전 두 가지로 완성했다.

로보트태권브이 복원으로 피곤한 흔적이 역력한 영화진흥위원회 애니메이션지원팀 김보연 대리를 만났다. 김보연 대리는 로보트태권브이를 처음 발견한 사람으로서, 이번 복원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한 실무자다. (김보연 대리를 만날 때가 2005년이다. 지금은 꽤 높은 자리에서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 일하고 있을 것이다.)

"어릴 때는 단순해서 그런지, 로보트 태권브이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선악이 확실하게 구분됐습니다. 거대 로봇이 주는 파괴력과 액션에 압도되는 흥분도 느꼈지요. 그러나 나이가 드니 사회에서 소외된 비주류의 아픔을 보게 됐습니다. 메리와 카프박사가 악당일 수밖에 없는 이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죠. 못생긴 얼굴 때문에 다른 과학자들로부터 놀림감이 된 카프박사, 인간을 동경하는 인조인간 안드로이드 메리, 특히 메리가 죽어가는 신에서는 눈물까지 핑 돌았습니다."

카프박사는 로보트 태권브이의 설계도면을 훔치기 위해 메리를 김박사의 연구실에 잠입시킨다. 하지만 메리는 태권소년 훈이를 사랑하게 되고 로보트 태권브이 설계도면 대신 실험용 로봇 설계도면을 훔쳐 달아난다. 메리의 탈출을 돕기 위해 나타난 카프박사의 로봇에게 김박사가 살해되고 결국, 메리는 위험에 처한 훈이를 구하면서 죽음을 맞는다.

"어릴 때는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해서 훈이와 영희의 입장에서만 영화를 봅니다. 그러나 커가면서 열등감을 조금씩 느끼게 되고 사회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지요. 카프박사처럼 자신의 열등감을 긍정적인 동력으로 승화시키지 않으면 악당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악당의 잠재적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나요. 로보트 태권브이는 삶의 체험에 따라 깊이가 다른 영화입니다."

2003년 4월 한국애니메이션역사기획전 준비 중 필름보관소에서 '로보트태권브이' 인터네가필름이 발견됐다. 인터네가필름은 오리지널 필림이 없는 상태에서 프린트 필름을 다시 네가필름으로 만든 것이다.

"로보트태권브이 필름은 1976년 로보트태권브이 개봉 이후 지방업자가 재상영을 준비하면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국내에 있는 프린트필름으로는 재상영이나 복원조차 불가능했지만, 인터네가필름 발견으로 복원할 수 있었던 것이죠. 처음 발견할 당시 이 필름은 총 10권 중 오프닝과 엔딩 없이 8권이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필름상태는 엉망진창이었지요. 각종 이물질과 스크래치 등으로 심하게 훼손되었고 심지어는 편집된 필름 이음새에 절연 테이프가 붙어있기도 했습니다. 사운드는 사운드 트랙과 몇몇 군데가 잘려 나갔고 고음과 저음이 유실되어 있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발견된 로보트태권브이 인터네가필름을 5분 정도 현상하여 복원가능성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필름을 세척하고 이물질을 제거한다고 해도 완전하게 복구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결국, 영상을 스캔하거나 HD텔레시네를 거쳐 프레임별로 수작업 디지털 수정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로보트태권브이를 원본에 가깝게 복원하기 위해서는 프레임별로 수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이 영화는 1초에 12프레임이 돌아가는데, 프레임을 손으로 지워내고 정리하는 일만 꼬박 1년이 걸렸지요. 처음에는 하루에 한 프레임 작업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차차 숙달되자 6명이 하루에 40~50장을 수정할 수 있었지요. 고통과 끈기의 세월이었습니다. 이 작업을 담당한 6명은 어릴 때 태권브이를 보고 자랐던 마니아들이었습니다.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번 작업에 대한 내부 평가는 어떠냐고 물었다. 그녀는 "이번 복원사업에 대한 완성도는 90%정도로 매우 만족하고 있다"면서 "실제 이 영화를 보면 무엇을 복원됐는지 잘 모르시겠지만, 월등하게 향상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에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혹 하나를 뗀 것 같습니다. 그동안 작업 진척이 느려 심리적 압박이 많았습니다. 기간 안에 과연 끝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고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였죠. 이렇게 고생해서 만들었는데, 아무도 보지 않거나 알아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부담도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애니메이션 복원은 부분적으로만 이뤄졌습니다. 전편이 복원된 사례가 전무했기 때문에 테스트를 거쳐 타진해야 할 것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시중에 나온 로보트태권브이 DVD판의 경우는 스토리 중심으로 여기저기에서 가져와 끼워 맞춘 것이었기 때문에 복원의 기준이 되기에는 매우 미흡했지요."

또한, 복원팀은 오프닝과 엔딩의 영상과 사운드를 얻기 위해 한국영상자료원과 춘천애니메이션박물관 소유의 프린트 필름 상태를 살폈다.

"모두 3편의 프린트 필름이 있었지만 양 기관에서 기증할 때부터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필름의 퍼포레이션이 망가져 영사기에 거는 순간 찢어질 정도였지요. 기름이 잔뜩 묻어 있기도 했으며 인터네가필름보다 군데군데 잘려나간 부분이 더욱 많았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오프닝과 엔딩의 영상과 사운드를 확보할 수 있는 큰 수확이 됐습니다."

이후 영화진흥위원회는 복원방향을 수립한다. 김보연 대리의 설명에 따르면 이렇다.

처음에는 프린팅 필름을 인터네가필름으로 전환하고 영화진흥위원회 소장 인터네가필름과 비교해서 좋은 이미지를 선별하여 제3의 인터네가필름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인터네가필름을 HD텔레네시해 1차 복원필름을 완성하고 사운드도 선별하여 채널분리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 다음 디지털복원기술자들의 수작업으로 영상소스를 수정하고, 사운드는 돌비디지털로 재믹싱했다.

"테스트복원으로 복원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11월에 테스크포스팀을 구성해서 본격적인 복원을 시작했습니다. 테스크포스팀은 복원에 따른 기술개발에 따른 업무를 진행했고, 각계각층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뛰었습니다. 또한 복원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받기 위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고 수준 높은 복원을 위해서 신규인력도 채용했지요."

포탈사이트 토론방에는 네티즌들의 우울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로보트태권브이가 마징가제트를 도용했다는 이유다. 이에 대해 김보연 대리는 '자기비하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토론방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글을 저도 봤습니다. 이는 자기비하에서 비롯된 것입나다. 피해의식의 산물이지요. 경계해야 할 식민사관입니다. 우리나라가 뭔가를 하면 모두들 쉽게 믿지 않는 모양입니다. 상대방이 못했거나 우리가 운이 좋았다고 폄하하기 바쁘지요. 이는 우리가 우리를 비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보트태권브이는 거대로봇이라는 소재에서 볼때 마징가제트와 같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릅니다. 로보트태권브이의 상징성과 스토리는 매우 독창적인 것입니다. 특히 로보트태권브이의 태권도 동작은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워 감동 깊습니다. 만약 이런 것을 모방이라고 얘기한다면 모방에 의한 창조 또한 모두 모방과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만화영화는 1976년 로보트태권브이 이후부터 지금까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OEM방식처럼 해외 작품을 그림만 그려서 되파는 산업으로 애니메이션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기획 창작에 힘을 쏟기보다는 그림만 그리는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사양길을 걸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01년 '마리 이야기'부터 국내 애니메이션은 부활하고 있습니다. 오세암, 망치, 원더풀데이즈 같은 훌륭한 작품도 만들어졌고요. 디즈니나 일본보다는 미흡하지만, 지금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니 많이 격려하고 지켜봐 주면 됩니다. 재미없어서 보기 싫다고 하지 말고 애정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한국 애니메이션을 평가할 때는 현장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무조건 재미없다고 단정 짓지 말았으면 합니다. 보지도 않았으면서 한국 애니메이션은 안된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한국 사람들은 참 이상합니다.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만 인정하니까요."

김보연 대리는 남양주종합촬영소 녹음실까지 먼 거리를 직접 찾아와 성우들의 대사녹음 과정을 지켜봐 준 김청기 감독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래서 나는 김청기 감독을 만나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