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휘둘리며 사는 사람은 마음을 올바르게 쓸 수 없다. 제아무리 어질고 똑똑한 사람도 돈의 굴레에 갇히면 후덕과 총명을 잃고 만다. 또 사사로운 것까지 탐욕을 부리다 보면 오히려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
영화 <미몽>은 돈과 사랑에 집착하는 여성의 참혹한 말로를 통해 현시대 사람들에게 삶의 방향성을 묻는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재물과 요행에 대한 유혹은 어느 시대든 똑같았다. 일제의 식민지였던 조선 말기도 마찬가지였다. <미몽>은 1936년 작품이다. 80년 전의 작품이라고 해서 지고지순한 여성상을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 주인공 애순은 욕망 덩어리였고, 욕망은 애순을 소중한 사람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장님으로 만들어버렸다.
애순 역할은 당대 북한 최고인민배우였던 문예봉이 맡았다. 문예봉은 난봉기가 흐르는 신여성 역할을 태연하게 연기해, 왜 그녀가 최고 인민배우로 칭송됐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 설명한다. 문예봉의 외모 또한 지금의 미인상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그야말로 문예봉은 영원한 신여성이다.
애순은 품행이 방정맞고 허영심이 많았다. 남편은 애순이 가정을 돌보지 않고 허구한 날 마실만 다니자 그녀를 혼낸다. 하지만 애순은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가 정부와 함께 호텔에서 지낸다.
얼마 뒤 애순은 정부가 지역 유지가 아니라 가난한 하숙생이자 범죄자라는 것을 알게 되고, 강도 행각을 벌이는 그와 그의 일당을 경찰에 신고한다. 혼자가 된 애순은 공연에서 봤던 무용가와의 사랑을 꿈꾸고, 그가 탄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급하게 택시를 잡아 타고 역으로 향한다. 애순은 택시 기사에게 빨리 가달라고 재촉한다. 하지만 택시는 때마침 길을 건너던 애순의 딸을 치고 만다.
딸은 병원에 실려가 목숨을 건진다. 그러나 애순은 이 일로 충격을 받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또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독약을 먹는다. 지나친 탐욕이 이끈 결과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30년대 서울이다. 이 영화는 그 시절 서울의 모습과 서울 사람들의 생활상, 체통보다는 실속을 취하는 신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어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건축양식, 의상, 음식, 가구 등 모든 게 호기심을 자극한다. 자세히 보면 1909년에 설립된 한국은행 등 서울에 남아 있는 옛 건물들까지 눈에 들어와 신기할 따름이다.
특히 이 영화에는 당대 남한 최고의 무용수로 평가받는 조택원의 춤을 직접 볼 수 있어 이채롭다. 이 영화에서 조원택은 작은 반바지만 입고 유려한 무용을 선보인다. 지금의 현대무용과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거침없는 춤사위다.
<미몽>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한국영화이자 6번째 발성영화로, 1930년대 영화 제작 기술과 문법의 진보가 어느 정도였는지 확인시킨다. 이 영화는 당시 돈과 권력을 좇아 도덕이 마비돼 가는 사회를 투영하면서 탐욕은 걱정을 만들고, 두려움을 잉태하며, 만 가지 악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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