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펀트 맨은 외면적인 아름다움을 숭상하는 이 시대의 흉측한 자화상을 들춰낸다. 기형의 공포로 천박한 일상의 언어를 질식시키고, 인간의 고귀한 본성을 일깨우며 차마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게 한다.
절대 감상적이거나 어렵지 않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은 영혼을 내팽개치며 사는 현대인에게 사랑, 겸손, 헌신 같은 재래적 휴머니즘의 가치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얘기한다.
아쉬운 점도 있다. 약간 도식적이다. 이 영화가 전달하는 주제에 흠집을 내는 약점이 군데군데 나타난다. 예를 들면 가진 자의 여유과 못 가진 자의 천함이 인격을 대변한다. 배운 자와 가진 자의 마음은 따뜻하고 못 배운 자와 못 가진 자의 마음은 냉혹한 것일까.
아니다. 오페라와 문학을 즐기는 지식인들은 천대받는 엘리펀트 맨을 동정하지만, 오히려 내 눈에는 가식적으로 보였다. 마치 또 하나의 쇼를 보는 것처럼 엘리펀트 맨을 흥미롭게만 느끼는 듯했다.
오직 엘리펀트 맨을 사랑하는 사람은 같은 환경에서 같은 상처를 안고 사는 같은 계급의 서커스 단원들이었다. 감독은 이들의 관계를 통해 눈높이를 맞추고 진심으로 마음을 나눠야만 진정한 사랑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데이비드 린치가 쓰지 않았다. 그것이 더욱 그를 위대한 감독으로 느끼게 만든다. 어쩌면 매우 진부할 수 있는 줄거리를 이렇게까지 포장했으니 말이다. 그가 만약 시나리오를 썼다면 더욱 기괴한 스토리와 영상으로 마음을 울려줬을 텐데, 정말 아쉽다. (엘리펀트 맨은 데이비드 린치가 감독한 영화 이레이저 헤드를 본 할리우드의 유명한 제작자 멜 브룩스가 감탄한 뒤 그에게 감독을 맡긴 작품이다.)
"다시 시작한다. 내 보물아!" 선천적 다발성 신경섬유종증이라는 희귀병으로 무서운 외형을 갖게 된 존 메릭은 기괴한 외모 때문에 엘리펀트 맨으로 불리며 서커스 단장의 밥벌이 역할을 한다. 존 메릭은 돈의 노예인 서커스 단장과 그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학대받으며 하루하루를 끔찍하게 연명한다.
의사인 프레데릭은 엘리펀트 맨의 소문을 듣고 의학적 연구의 흥미를 느껴 서커스단을 찾아온다. 하지만 그를 처음 본 순간 지독한 연민에 빠지게 되고, 그를 자신이 근무하는 런던의 한 병원으로 데려간다.
존 메릭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간적인 대접을 받는다. 사람들과 얘기도 하고, 따뜻한 음식도 먹고, 아늑한 침대에 잠도 잔다. 사람들은 그의 내면에 예술가적인 감성과 학식이 넘침을 알게 되고 그를 더욱 좋아하게 된다. 하지만 병원에 살면서도 흉측한 외모 때문에 여러 사람들에게 늘 조롱받고 천시받는 건 마찬가지다.
서커스 단장은 존 메릭을 대륙으로 데려가서 큰돈을 벌 궁리를 하고 그를 병원에서 납치한다. 다시 존 메릭은 엘리펀트 맨으로 무대에 서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자신의 기형을 한탄하며 깊은 슬픔에 빠진 그는 쇼 도중에 쓰러지게 되고 단장은 화를 못 이겨 원숭이 철창에 그를 가둔다. 서커스 단원들은 그를 탈출시킨다.
엘리펀트 맨은 외모를 감추기 위해 자루를 쓰고 대륙으로 가는 배를 타지만, 사람들에게 발각돼 범죄자처럼 처절하게 쫓긴다.
막다른 길에서 멈춘 그는 돌아서서 사람들을 향해 외친다.
"Stop."
"I am not a Elephant."
"I am not a Animal."
"I am a Human being."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에 불만이다. 성형을 하느니, 살을 빼느니 난리다. 내면의 아름다움 같은 것은 필요 없다. 겉모습만 예쁘면 그만이다.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자신의 내면이 발가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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