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독창적이다. 이 영화만큼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심미적인 그의 예술관과 영화적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은 없다. 우주 기계문명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세트 디자인과 장대한 영화음악,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은 섬세한 촬영기법과 신묘한 우주 배경은 아름다운 영화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발하는 뚜렷한 색채는 인류와 기계문명에 대한 문제의식과 철학적 성찰이다. 난해한 이미지로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왔던 스탠리 큐브릭 영화의 계보를 이끄는 대표작이다.
1960년대 할리우드 SF 영화는 미국과 소련의 이데올로기 대립과 우주진출 경쟁에 젖어 공허한 주제의식과 레이저 무기로 일관된 스페이스 오페라(Space Opera)를 생산해내는데 급급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발표되면서 할리우드에 미친 반향과 충격은 대단했다. 우주영화의 모델을 새로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우주 활극을 예술과 철학의 가치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냉전의 대립이 아니라 기계와 인간, 문명과 자연의 대립으로 영화의 주제를 한 차원 끌어올려 우주극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1968년도에 제작된 영화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리얼리티가 살아있다. 인류가 달에 입성하지 못했던 시기였지만, 무중력 상태를 과학적인 측면에서 어긋나지 않게 충실히 재현했다. 특히 우주선의 기체를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혀를 내두를 만하다.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발을 내디딘 해는 1969년이었다.)
이 영화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많이 남겼다. 영화에 등장하는 목성 탐색선 디스커버리호는 10년 후 미항공우주국 NASA에서 쏘아 올린 우주왕복선의 이름이 됐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어 '스타워즈'라는 역작이 탄생되는데 기여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다수의 사람들과 이 영화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보면 그때 그 시절에 그 정도 만들었으면 대단한 일이지만 정적인 영상과 클래식 사운드, 갖가지 상징적인 암시와 이미지에 지루했다고들 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내러티브한 영화를 지독하게 싫어하는 개인적인 취향이나 흥미위주로 영화를 보지 않는 습관도 있다.) 이 영화에는 인류와 문명의 생성, 삶과 죽음의 가치, 인간과 기계의 대립 같은 주제가 신묘한 우주 속에 녹아 있다. 시종일관 인간과 우주의 서사를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형상화했고, 스트라우스의 교향곡을 통해 그 신비로움과 예술성을 높였다. (나는 이 영화의 차분하고 정적인 영상의 전개는 우주의 신비로움을 극대화하려는 고의적인 의도라고 생각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가장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종반부이다. 생명의 본질에 대해서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과히 종교적이고 철학적이다. 불교의 윤회사상과도 같은 복선은 삶에 대해 중대한 물음을 던지게 만든다. 인간과 기계의 혼탁한 투쟁의 과정, 거기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문명의 메커니즘은 도덕적인 딜레마에 종착한 인간에게 다각적인 질문과 해답을 제시한다.
석기 시대, 무지한 원숭이 형상의 인간들이 동료를 죽이고 하늘을 향해 던진 뼈다귀는 진화하고 진보하여 우주를 항해하는 디스커버리호가 된다. 이 우주 비행선은 인류 문명의 지혜가 담긴 검은 비석의 비밀을 캐기 위해 목성으로 날아가는 중이다.
최첨단의 기술력과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디스커버리호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푸른 노나우강'이 연주되는 가운데 평화로운 항해를 한다. 그러나 우주선 내부에 재난이 발생한다. 주범은 바로 인공 지능 컴퓨터 HAL(할)9000이다. 뛰어난 지적 능력과 감정을 지닌 할은 우주선을 점령하기 위해 승무원 폴을 우주선 밖으로 던져버리고 선장인 보우만까지 죽이려 한다. 이 장면은 인류가 만들어낸 테크놀로지의 집합체가 인간을 배반할 수 있음을, 미래 기계문명이 인간을 죽이는 추악한 함정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선장 보우만은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할을 제압한다.
보우만은 목성 궤도에 진입해 검은 비석을 발견한다. 그러나 블랙홀과도 같은 우주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오직 이 상황에서 벗어나 지구로 가는 길만이 살길이다. 그때 보우만은 신비한 체험을 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떠난 것 같은 몽환을 겪는다. 지구로 귀환한 보우만은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가 죽으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 검은 비석이 나타나고, 늙은 육체는 태아가 된다. 새로운 육체로 탄생한 태아는 바로 보우만 자신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관현악곡 '짜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흐르며 영화는 끝난다.
2001년을 묘사했던 이 영화가 이미 2001년을 넘긴 지금, 어쩌면 2001년이라는 것은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임종을 맞는 순간이나 인류가 완전히 소멸하는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인류도 언젠가는 그 순간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래, 우린 모두 죽는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아서 C. 클라크(Arthur C. Clarke)의 원작을 극화해서 제작한 작품으로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수상했다. 스탠리 큐브릭의 대표작이자 SF 영화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일궈냈다. 당시 1,200만 달러로 제작해 미국에서만 5,6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1968년 흥행 1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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