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박인희 민족춤패 '출' 창작단장 - 통일속으로, 민중속으로

이동권 2022. 8. 6. 22:21

박인희 창작단장

 

박근혜 정부는 2013년 민족춤패 '출' 사무실과 단원 두 명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민족춤패 '출'의 전식렬 대표를 연행했다. 문화예술인들은 "공연사업과 국제교류사업을 이유로 일본 등을 방문한 것을 빙자하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두는 것이며 이러한 사업이 통일부 또는 정부 당국의 허가 없이 진행됐을 리 없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전형적인 조작사건이며 국면 전환용 공안사건"이라고 반발했지만 전 대표는 끝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출'은 더 이상 활동하지 못했다.

 

몸으로 시를 쓰는 춤꾼들.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일은 화산이 분출하는 것과 같이 감정의 돌파구를 향해 자신의 혼을 내던지는 일이다.

아름다운 몸짓이나 전위적인 형식에만 치우친 춤에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춤은, 춤을 추는 사람이 전달하려는 내용을 담아내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는지가 중요했다. 세련된 동작으로 멋들어지게 춤을 추고, 뛰어난 테크닉으로 넘쳐나는 끼를 발산하더라도 마음을 울려오지 않는 무감동. 이로부터 나는 춤의 내용과 감정이라는 것이 예술적 형식을 능가하는 것이라고 믿고, 거기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려고 했다.

세월에 깎인 모서리가 반질반질하게 빛나는 층계를 따라 '출' 연습실로 올라갔다. 민족춤패 '출'의 연습실은 4층. 쾌적하고 소박한 실내 분위기는 포근한 느낌을 주었고 바닥은 광택이 많은 리스로 칠한 탓인지 섬세한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단원들이 마음대로 연습하기에 충분한 공간은 아니었지만 숨이 막힐 정도로 작지는 않았다.

박인희 창작단장과 무용수들은 연습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그들의 동작은 경쾌하고 생기가 넘쳤다. 한편에서는 땀을 뻘뻘 흘리며 서로 동작을 가르쳐주고 있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연습에 열중하는 단원도 눈에 띄었다. 휴식을 취하는 단원도 보였다. 모두 떨어져 있으면서도 아주 사소한 것부터 공통분모가 있는 가족 같았다. 취미나 기호까지도 비슷한 것이 많은 사람들 말이다.

박인희 단장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쉽게 감동하는 사람이었다. 공연을 할 때에도 그런 점이 그대로 드러나 관객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빼앗아 버리곤 했다. 

"무대에서가 아니라 공연을 하기 전부터 감정몰입을 합니다. 대기실에서부터 그 인물이 돼서 공연에 들어갑니다. 제가 맡은 역할에 집중하고 열중하는 모습이 관객들에게 전달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가극 청동단검에서도 중요한 장면에 춤이 삽입됐는데, 어떻게 하면 이 죽음의 한을 잘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었죠. 노예 딸로 태어나 억울하게 부모님과 애인을 잃었으니까요. 비정규직 기획 작업으로 공연한 '아버지의 작업복'에서는 아직 현실에 깨어나지 못한 '서리'라는 여자가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애인의 분신으로 눈물 나는 현실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그려내는 데 최선을 다했지요. 보통 배우들은 일상에서 웃다가도 공연에 들어가면 금방 울기도 한다던데, 저는 감정이입은 잘 안 되더라고요."

겸손한 얘기였다. 박 단장은 극이 끝날 때까지 자기가 맡은 역할이 되어 사는 것 같았다. 수완보다는 땀을 통해 정직하게 결실을 따는 사람 같았다. 춤을 창작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신뢰하는 것, 또 단원들과 서로 어울려 마음을 나누는 것, 기발하다기보다는 정열적인 모습으로 배역에 충실해지려는 문화일꾼이었다.

박인희 단장에게 어떻게 하면 '출' 단원이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와 함께 10년만 함께할 수 있다면 춤을 못 춰도, 정치의식이 없어도 됩니다. 작품을 같이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것은 우리가 가르치면 됩니다. 그리고 1, 2년 하고 그만두면 춤을 알 수 없으며 민중의 춤꾼도 불가능합니다. 몸치는 없습니다. 춤은 배우면 되고, 그래도 힘들면 음악을 외워서 추면 됩니다."

그녀의 말은 왠지 정신적인 세계가 물질적인 세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현대적인 질서보다는 고전적인 질서를 믿고 의식적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게 했다.

"저는 학생운동을 하고 1년 6개월 정도 회사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이 많아 개인적으로 공부를 했었지요. 그런데 마음이 통한 것인지 상명여대 탈패에 다녔던 친구가 '출'을 소개해 줬습니다. 그런데 와보니 다 아는 사람들이었죠. 참 세상 좁지요?"

예술은 많은 시간의 투자가 있어야 한다. 그로 인해 얻은 평판은 완전한 실망을 주기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하는 힘이 있다. 일회적인 공연으로 세상의 빛을 봤다고 해도, 얼마 되지 않아 영영 묻혀버리거나 아예 빛을 보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춤은 문예운동사에서 그 세기를 풍미하는 장르는 아니지만, 시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마음의 방향을 잡아 주는 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민족춤패 '출'의 앞날이 더욱 기대된다.

"'출'은 공연을 위해 창작토론을 많이 합니다. 서로 합의가 안되면 넘어가지 않습니다. 충분히 고민하기 때문에 창작 전부터 역할 소화가 다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서부터 내면의 감정이 밖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박 창작단장에게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공연을 주최하는 측에서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입니다. 하나의 공연을 올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연습하고 창작하고 피땀을 흘리는지 아십니까. 사전 예고도 없이 공연을 취소한다거나 공간을 제대로 마련해 주지 못해 준비한 것을 보여줄 수 없을 때가 그렇습니다. 함께 운동하는 입장인데도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대중이라면 얘기하고 이해시키면 되는데, 이런 경우는 정말 힘들지요. 어떤 경우에는 섭외가 하루 전에 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철저히 준비하고 100% 다 보여주면 좋을 텐데 하며 하는 수 없이 만족하지 못한 공연을 하고 말죠. 하루를 쉬면 내가 알고, 이틀을 쉬면 대중이 알고, 삼일을 쉬면 외면한다?"라는 말이 춤꾼들 사이에는 있습니다. 저희 정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또한, 문예일꾼이라는 사명의식 없이 춤을 추거나 조직하는 사람들을 봤을 때도 힘듭니다. 춤이라는 장르가 운동권에서는 거의 없습니다. 율동은 모두 하지만, 전문화되고 분화된 춤의 영역에는 전무합니다. 진보적인 사람들의 시각도 제도권하고 다르지 않습니다. 예술은 배고프고 힘들기 때문에 돈 있는 사람이나 하는 것이라 말하지 않습니까. 문화운동은 그렇지 않습니다. 편견이 많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변화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