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다. 운명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고 믿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 운명의 흐름은 주체적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럼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던 단종의 운명은 어떻게 봐야 할까? 영화 <단종애사>에서 그려진 단종은 아무런 의지 없이 타인에 끌려간 삶을 살았다.
왕위를 노리는 수양대군 때문에 어린 나이의 단종이 얼마나 적막하고 고달팠을까 생각하니 가슴부터 찡하다. 그러나 숨 막히는 권력 암투가 벌어지는 궁궐에서 단종이 조금만 더 나약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해 본다.
영화 <단종애사>에서 단종은 시종일관 수척한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왕으로 태어난 자신을 원망한다. 왕으로서의 체통이나 강건한 모습은 도통 찾아볼 수 없다. 귀하고 위대한 사람일수록 자기 운명을 탓하지 않는다.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에 헌신하는 마음으로 운명을 다스린다. 한결같이 패배적인 단종의 모습이 다소 아쉬운 영화다.
조선 시대 초 권좌는 비정했다. 권력을 잡기 위한 개인과 집단의 욕망은 숨김없이 표출됐고, 이를 쟁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부모, 형제, 자식의 목숨도 중요치 않았다. 단종도 왕위 계승을 둘러싼 첨예한 싸움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맞은 비련의 주인공이다.
단종이 비록 권좌를 노리는 거대한 힘에 짓눌렸더라도 좀 더 호쾌하고 당당하게 운명과 맞섰다면 어떠했을까싶다. 설사 단종이 유배지에서 맞은 죽음보다 더욱 참혹한 죽음을 맞았더라도 역사는 그를 강성하고 기운 센 왕으로 칭송했을 것이다.
단종의 삶은 실천하지 않으면서 시대만 한탄하는 사람에게 잔잔한 울림을 준다. 썩어빠진 시류가 우리를 야금야금 갈아먹고, 타고난 재능과 술수에 능한 이들이 늘 앞서더라도 마음의 덕을 두터이 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 난데없이 불쑥 찾아오는 괴로움보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인간은 불행으로 치닫는다. 인간의 운명은 오로지 자신에게 달렸다.
문종은 재위 2년 만에 어린 단종을 신하들에게 부탁하고 죽는다. 단종은 조선이 개국된 지 60년 만에 조선의 제6대 국왕이 된다. 그의 나이 11살 때다. 그러나 문종의 아우이자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은 정인지, 신숙주, 최항 등과 계유정난을 일으켜 중신들을 죽이고 어린 단종을 겁박해 왕위에 오른다. 이에 분개한 집현전 학자들과 신하들은 수양을 죽이고 단종을 복위하려 하지만 사전에 발각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수양은 어린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하고 영월 산골에 유배시킨다. 영화에 나오지 않지만 이후 금성대군이 또다시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죽음을 맞고, 단종은 노산군에서 다시 서민 신분으로 강등된다. 어린 단종은 처소에서 호송대장에게 목이 졸려 죽는다.
실제 단종의 죽음은 영화와 다르다. 실록에 따르면 단종은 세조의 명을 받은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가지고 유배지로 갔지만 단종은 목을 매 자진한 상태로 발견된다. 단종의 사후 처리는 그야말로 비참했다. 야사에서는 단종의 시신은 강원도 영월 청령포에 버려졌고, 엄흥도라는 호장이 이를 몰래 수습해 현재 장릉 자리에 안장했다고 전해진다. 호장은 조선시대 향리의 우두머리였다.
<단종애사>는 영화배우 엄앵란의 데뷔작이다. 예쁘장하고 앳된 엄앵란이 단종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는 감정 연기는 일품이다. 또 배역의 심리 묘사를 위해 화면이 서서히 사라졌다 다음 화면이 천천히 나타나는 디졸브 효과도 인상적인 영화다.
'이야기 + > 초창기 한국영화30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촌색씨 - 자만 오만 거만이라는 쾌락, 박영환 감독 1958년작 (0) | 2022.07.30 |
---|---|
순애보 - 사랑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한형모 감독 1957년작 (0) | 2022.07.30 |
시집가는 날 - 욕심이 부른 봉변, 이병일 감독 1956년작 (0) | 2022.07.30 |
자유부인 - 절제하지 못한 성욕이 부른 파멸, 한형모 감독 1956년작 (0) | 2022.07.30 |
서울의 휴일 - 말의 가치와 소중함, 이용민 감독 1956년작 (0) | 2022.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