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초창기 한국영화30선

시집가는 날 - 욕심이 부른 봉변, 이병일 감독 1956년작

이동권 2022. 7. 30. 11:48

첫날밤을 맞이한 이쁜이 ⓒ한국영상자료원


욕심이 생기면 조그마한 이익에 어두워져 지조를 내팽개친다. 목이 날아가는 상황에서도 꿈쩍하지 않았던 대단한 위인들의 절개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살다 보면 원칙과 신념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인격을 지켜야 할 때가 온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 졸렬한 선택을 하고 땅을 치며 후회하는 경우가 생긴다.

영화 <시집가는 날>은 양심과 염치를 허영과 맞바꾼 양반의 이야기다.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현대인에게 쓴웃음을 짓게 할 만한 영화다. 배금주의에 물들어 ‘똥폼’을 잡고, 내실보다 권위만을 내세우는 우리 사회의 속물근성을 1950년대 제작된 이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결혼 상대를 사랑과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타인에게 뽐내는 대상으로 여긴 결과를 코믹하게 풀어낸다. 양반가는 헛된 욕심을 채우려다 자가당착에 빠지고, 반면 허욕이 없는 몸종은 따뜻한 마음만큼 그대로를 수확한다. 즉 올바른 마음으로 욕심을 다스리면 행복이 깃들지만 마음을 잘못 쓰면 광기에 버금가는 봉변을 당한다는 얘기다.

사랑이 바로 인생이다. 그것 때문에 힘겨움도 이겨내고, 희망도 발견한다. 결혼 또한 사랑이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작은 파도에도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지고 만다. 인생에 우연은 있지만 사랑에 우연은 없다. 사랑은 계속해서 마음을 쏟고, 몸으로 실천하고, 잇따른 변화에도 위축되지 않아야 지켜나갈 수 있는 노력의 산물이다.

 

예물을 받고 기뻐하는 갑분이 ⓒ한국영상자료원
미언이 절음발이가 아닌 것을 알고 당황해 하는 맹진사 ⓒ한국영상자료원


맹진사는 세도가인 도라지골 김판서댁과 사돈이 된다고 우쭐거리며 뽐낸다. 딸 갑분이도 판서댁에 시집가는 것을 으스댄다. 어느 날 한 선비가 맹진사 집에 머물면서 김판서댁 아들 미언이 절름발이라는 말을 흘린다. 이 소문이 온 동네에 퍼지자 맹진사는 당혹스러워하고, 갑분이는 속상해한다. 맹진사는 딸을 절름발이에게 시집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잔꾀를 내 딸의 몸종 이쁜이를 대신 시집보낸다. 하지만 절름발이인 줄 알았던 사위는 잘생기고 늠름한 사내였고, 소문은 맹진사의 됨됨이를 알아보기 위해 미언이 거짓으로 꾸민 것이었다. 첫날밤을 보내는 이쁜이는 미언에게 자신은 갑분 아씨의 몸종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지만 미언은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이쁜이를 안는다. 다음날 미언과 이쁜이는 도라지골로 떠나고, 맹진사와 갑분은 눈물을 흘린다.

이 영화의 교훈은 입분이와 미언의 대화만으로도 충분하다. 입분이는 남편이 절음발이라고 화를 내는 갑분이에게 “아가씨만 사랑하시면 도련님도 아가씨를 사랑하실 거예요. 진정만 있으면 절름발이든 언청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도련님은 꼭 인정이 많은 사람일 거예요”라고 말하자 갑분이는 “너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아니. 니가 그 병신과 살아 봤어”라고 짜증을 낸다. 미언은 자신이 갑분이의 몸종이라고 밝히는 입분이에게 “내가 구하는 것은 사람의 참된 마음이요. 병신이나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바칠 수 있는 깨끗한 마음. 부귀에 취하고 권세에 아부하는 사람들하고도 사귀어 봤소. 그들의 천박한 마음에는 진절머리가 나오. 내가 구하는 것은 당신이었소. 진실한 애정과 순정의 아름다움을 가진 아내를 찾고 있었소”라고 말한다.

<시집가는 날>은 한국영화 최초로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이다. 해외 영화제 수상은 그 당시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에서 힘겹게 영화를 제작하고 있던 한국 영화인들에게 커다란 의지와 용기를 주었다. 이 영화는 1957년 아시아영화제에서 특별희극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한국 영화계가 좀처럼 다루지 않았던 코미디 장르로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좋은 평가를 얻으면서 향후 코미디 영화 제작의 토대를 제공했다. 게다가 이 영화가 과장되고 소란스러운 슬랩스틱 코미디가 아니라 향토색이 물씬 풍기는 민속극의 정통을 따른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더했다.

이 영화는 제1회 부일영화상에서 각본상(오영진), 남우주연상(김승호), 미술상(임명선)을, 제1회 영화평론가협회상 각본상(오영진), 남우주연상(김승호)을 수상했으며, 원작은 오영진의 희곡 ‘맹진사댁 경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