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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휴일 - 말의 가치와 소중함, 이용민 감독 1956년작

이동권 2022. 7. 30. 11:43

서울의 휴일, 오해를 푼 부부와 1950년대 서울의 야경 ⓒ한국영상자료원


말은 중요하다.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인간관계를 갈라놓는다. 잔인한 말 한마디는 상대방의 삶까지 파괴한다. ‘혀 아래 도끼가 있다’는 속담도 그래서 생겼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입을 조심하지 않는 사람이다.

영화 <서울의 휴일>은 말의 소중함을 알려준다. 세 가족의 휴일과 서울 풍경을 재밌게 그려내지만 가장 큰 중심축에는 말의 가치를 논한다. 농담처럼 꺼낸 몇 마디 말은 오해를 낳았고 불신을 쌓았다. 이 영화의 전반에 흐르는 기류는 한 미친 여성이 “사람 살려”라고 외치는 장면으로 대변된다.

영화는 운이 좋게 오해가 풀려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이 또한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결말이다. 여러 가지 사건과 곡해로 망쳐버린 하루지만 서로를 걱정하는 말은 휴일 하루를 빛나게 했다. 역시 말은 진심으로 써야 웃음과 즐거움을 피어나게 한다.

말은 사람을 대변한다. 인격과 사고, 감정 상태를 보여준다. 감추려고 해도 다 드러난다. 인간관계를 잘 하려면 모질고 부정적인 말은 피하고, 말을 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겠다. 또 화려하고 현학적인 말을 많이 한다고 영리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지식인들의 농담은 적잖게 부담스럽다. 무엇보다 편안하고 알맞은 말이 가장 좋겠다.

<서울의 휴일>은 조선일보 신문기자 송재관과 그의 아내인 뷔너스 산부인과 원장 남희원의 휴일 이야기다. 여기에 옆집 사는 60대 주사장과 그의 젊은 아내, 가난한 옥이네 가족의 일상이 양념처럼 펼쳐진다. 송 기자와 남 원장은 휴일을 맞아 모처럼 즐거운 하루를 계획한다. 하지만 송 기자는 갑자기 후암동 살인사건 제보 전화를 받고 아내에게 1시간만 있다 오겠다고 약속한 뒤 외출한다. 하지만 그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동료 기자들이었다. 그와 술을 마시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다. 

 

서울의 휴일, 휴일 보낼 계획을 세우는 부부 ⓒ한국영상자료원
서울의 휴일, 남편 동료 기자를 만난 남 원장 ⓒ한국영상자료원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송 기자는 다른 사건에 휘말려 미친 여자의 집에 감금된다. 송 기자가 나간 뒤 집에 남 원장의 친구들이 방문한다. 친구들은 남편이 집에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남편이 바람피우는 게 맞다고 부추긴다. “나도 똑같은 일을 당했어. 긴급회의를 1시간만 갔다 온다고 나가더니 글쎄 어떤 여자하고 같이 택시 타고 가는 걸 저 친구가 봤다지 않아. 그것이 요즘 난봉쟁이들의 수단인가 봐.” 하지만 남 원장은 친구들의 말에도 남편을 의심하지 않는다. 남편을 기다리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남 원장은 혼자 외출했다 남편의 동료 기자들을 만난다. 동료 기자들은 남 원장에게 송 기자가 어떤 여자와 극장에 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거짓말을 하고, 그녀는 남편이 바람을 핀 것으로 오해해 속상해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아내는 자신의 병원 앞에서 울고 있는 소녀를 만나고, 소녀 어머니의 출산을 돕는다. 송 기자는 우여곡절 끝에 후암동 살인범을 검거하고, 취재를 위해 범인의 집을 방문한다. 남 원장이 도왔던 소녀의 어머니는 후암동 살인사건 범인의 아내였다. 그때 두 사람은 만나 오해를 풀고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된다. 정리하자면 휴일은 망쳤지만 송 기자는 범인을 잡고, 남 원장은 어려움에 처한 가족을 도왔다. 한편 주사장은 젊은 아내와 아침부터 함께 외출할 꿈에 부풀었지만 아내는 젊은 남자들과 노느라 바쁘고, 옥이네는 처녀인 옥이가 임신을 해 난리가 난다. 옥이를 임신시킨 남자는 계속 옥이를 피하지만 교통사고를 당한 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옥이만을 사랑하겠고 약속한다.

<서울의 휴일>은 1950년대 일요일 하루,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세 가족의 일상을 그려낸다. 카메라가 하루 종일 인물들을 따라다니면서 서울 사람들의 생활상과 풍속, 서울 풍경을 볼거리로 제공한다. 한강 백사장과 한강대교, 덕수궁, 청계천 등 다양한 서울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영화다.

이 영화는 코믹 코드를 내장했다. 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다. 내레이터가 걸쭉한 목소리로 탑골공원에서 자고 있는 한 노인을 깨우면서 웃음과 호기심을 유발한다. 또 ‘러시아워’ 시간인데도 한가한 전차 안과 문이 닫힌 천일종면주식회사 건물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오늘이 바로 서울의 휴일이라고 말하고 영화 타이틀이 뜬다.

이 영화를 보면서 놀랐던 점은 1950년대 서울 지식인들의 삶이 꽤 낭만적이고 자유분방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미친 여자와 주사장의 젊은 아내, 옥이 등 젊은 여성들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애정을 갈구하고 외간 남자와 정을 나누며 술과 환락에 빠져 산다. 한국전쟁 뒤 자유가 방종으로 변질되는 과정은 어느 정도 우리 사회에서 용인도 됐지만 한편으로는 꽤 사회문제도 된 듯싶다.

이 영화에는 시사만화가 코주부 김용환이 신문사의 편집국장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