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와 돌이켜보니 추억이다. 인생의 참뜻을 알려준다고 해도 다시는 겪고 싶은 않은 일이 가난이다. 1950년대 민중은 배를 쫄쫄 곯았다. 입치레를 제대로 못해 죽어가는 아이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마음만은 가난하지 않았다. 영화 <청춘쌍곡선>은 판자촌에 사는 가난한 민중의 삶을 유쾌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이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동바동 몸부림을 쳤지만 이웃 간에 서로 돕고 정을 나눴다. 이 영화는 그 마음을 달달하게 포착한다.
이 영화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기에 유행했던 코믹극 ‘스크루볼 코미디’를 변형한 작품이다. 스크루볼 코미디는 빈부나 신분의 격차가 큰 남녀가 애증 관계로 얽히다 행복한 결말에 이르는 스토리로 구성된 영화다. <청춘쌍곡선>은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만들어진 코미디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청춘쌍곡선>은 계급의 차이를 일상생활로 보여준다. 예를 들면 고기반찬 없이는 밥을 먹지 못해 투정 부리는 부잣집 청년과 목욕보다는 마음의 때를 벗기라고 충고하는 가난한 집 청년의 대사를 교차해가며 현실을 풍자해낸다. 하지만 적의는 없다. 빈부의 차이로 고통받는 두 젊은이는 서로의 삶을 대신 살며, 서로를 이해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그 당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적잖게 눈꼴시었겠다. 영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민중은 가난했지만 세상을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애정으로 삶을 대했다. 부잣집도 마찬가지긴 했다. 하지만 부자는 인색하고 다욕하게 생활했으며, 변칙과 부정으로 부를 축적했다. 역시 돈이 없는 것보다 사랑이 없고, 마음이 없는 것이 더 큰 가난이다.
이 영화는 부자의 허영과 선민의식에 대한 비판 보다는 빈부의 격차가 만들어낸 에피소드를 코믹하게 풀어내는데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비약이 심해 진심으로 동화되지는 않는다. 결말도 부잣집 아들과 가난한 집 딸, 가난한 집 아들과 부잣집 딸이 서로 결혼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지만 현실적이지 않은 설정이다.
두 사람이 배가 아파 병원을 찾는다. 한 명은 위장이 터질 지경이다. 너무 잘 먹어서 위장이 부대낀다. 또 한 명은 위장이 졸았다. 너무 못 먹어서 위장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의사는 두 사람에게 2주 동안 집을 바꿔 생활해보도록 처방을 내린다. 서로의 가풍에 복종하고 외식을 금하게 한다. 두 사람은 서로 내키지 않지만 점차 서로의 생활에 익숙해진다. 또 각자 서로의 여동생을 사랑하게 되고 합동결혼식을 올리면서 불편했던 감정은 해소된다.
<청춘쌍곡선>은 뮤지컬적인 요소가 가미된 코미디 영화다. 첫 장면부터 간호사 3명이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 김희갑은 이 영화에서 당시 대중에게 사랑을 받았던 가요 ‘타향살이’, ‘이별의 부산정거장’, ‘신라의 달밤’ 등을 부르면서 “12가지 재주를 가진 사람이 밥 먹을 재주 없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며 웃는다.
이 영화는 코미디언 양훈의 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다. 양훈은 이 영화가 개봉된 이후 양석천과 함께 ‘홀쭉이와 뚱뚱이’로 팀을 만들어 활약했다.
이 영화의 까메오도 즐겁다. ‘신라의 달밤’을 작곡한 박시춘은 의사로, ‘애자, 숙자, 민자’로 인기를 모았던 여성 트리오 김시스터즈는 간호사로 출연한다. 김시스터즈는 작곡가 김해송과 한국 첫 여성그룹 ‘저고리시스터’의 멤버였던 이난영의 딸 숙자와 애자 그리고 사촌인 민자로 구성돼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은 부산이다.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이 몰렸던 부산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영화의 재미 중 하나다. 산동네로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바다는 매우 인상 깊다.
이 영화 타이틀은 경향신문에 시사 만화 ‘두꺼비’를 연재한 안의섭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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