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예술가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아카데믹한 고급문화를 탐닉하거나 예술을 수동적인 태도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주로 그렇다. 그러나 예술은 자유롭고 평등하다. 저 높은 빌딩과 화려한 정원은 있는 자 몇몇의 것이지만 예술은 누구나 배우고 공유하고 누릴 수 있는 민중의 것이다. 특히 작업의 본질이나 범위의 논쟁에서 예술은 완전히 독립적이고 낮게 임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없다. 예술가는 민중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다. 시공간에 구에 받지 않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창작하고, 발품을 팔아서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 노래 한 곡 부르지 않고, 시 한 수 짓지 않고, 전시회 한 번 열지 않은 사람은 예술가라기보다는 활동가일 뿐이다. 예술의 가치는 창조에 있다. 결과의 위대함을 떠나서 생산의 하나로 충분히 박수받을 일이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황경민은 예술가다. 그가 왜 예술가인지 이제부터 설명하겠다. 황경민은 2012년부터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12년이다. 정확하게 곡 수를 세어보지 않았지만 300곡이 훌쩍 넘는다. 그는 기성의 노래에 만족하지 않고 곡을 만들었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통속적인 신파 말고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노랫말로 지어 부르길 원했다. 황경민은 집회 현장에서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면 당일 새벽까지 노래를 만들어 현장에 가서 불렀다. 스타케미컬, 밀양송전탑 투쟁, 만덕재개발 현장, 소성리 현장, 지하철노조집회, 세월호 집회, 박근혜 탄핵집회, 신라대 청소노동자 농성장 …… 수많은 현장에서 투쟁에 맞게 노랫말을 짓고 곡을 붙여 불렀다. 그렇다고 그는 팔뚝질만 하는 외곬은 아니다. 서정적인 시어도, 사투리로 쓴 시도 노래로 만들었고 노래극 작업에도 참여했다. 이 정도면 예술가로 충분하다. 특별하게 음악가, 싱어송라이터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황경민은 소싯적에 기업 홍보실에서도 일하고 방송국 작가로도 일했지만 그리 행복하진 않았던 듯싶다. 그가 ‘결국 아무것도 한 게 없어서, 우주 최초로 입간판 쓰고, 작사 작곡도 하고 결국 노래하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기대했던 삶과 직접 맞닥뜨린 삶의 형태는 언제나 거리감이 있었다.
그는 서울에서 생활하다 낙향해서 부산대 앞에 인문학 카페 ‘헤세이티’를 열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커피를 내리는 마담이 되는 길을 선택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물장사로 손님을 맞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흔쾌히 말을 걸었다. 매일 카페 입간판에 기존 관습과 관념의 허를 찌르는 유쾌 발랄한 내용의 글을 썼다.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어느 철학자처럼 수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정치 사회 경제 분야를 넘나들며 직접 손글씨를 썼다. 이 글들은 모여 책 『지금, 바로, 여기!』로 발간됐다. 이 책은 고루하고 현학적인 인문학에서 벗어나 이해하기 쉬우면서 생활사상적 깊이도 있는, 촌철살인의 유머와 해학이 넘치는 글로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국내 유명 서점의 서평을 보면 그는 이 책을 ‘절망을 살아내는 자, 실패한 자, 모자라고 못생긴 자, 불온한 자의 철 지난 달력이며, 코 풀고 똥 닦는 휴지며, 허드레 메모지며, 하다못해 라면 냄비받침을 자처하는 책’이라고 소개했다. 이 얼마나 멋지고 훌륭한 표현인가. 황경민은 여세를 몰아 오랫동안 쓴 시를 엮어 시집 『통화 중일 때가 좋았다』도 펴냈다. 이만하면 그는 시인이자 인문학자로 불려도 충분하다.
이제 황경민을 ‘노래하는 인문학자’로 부르겠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그를 꼴리는 대로 사는 ‘즉자적 인간’이자 ‘노래하는 인문학자’로 부르고 있지만 그를 처음 알게 된 독자들을 위해 사사롭게 정의를 내려봤다. 그러나 정작 그를 ‘노래하는 인문학자’로 정의 내린 가장 큰 이유는 이번에 새로 발매한 앨범 <니 어데고> 탓이 크다.
황경민은 소소한 개인사부터 신랄한 사회비판까지 마음속 얘기를 이 앨범을 통해 서슴없이 털어놓는다. 노래 <인생이 별 거 있나>는 차별과 착취를 구조화하고 제도화하는 학벌주의, 경쟁 이데올로기를 꼬집는다. <이슬람 소년>은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 사유하고, <힘내지 말아요>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따위의 개소리는 그만하라고 외치며, <알바블루스>는 ‘알바공화국’의 실체를 통렬하게 까발린다. <영도를 걸어봐라>는 자신의 영혼, 정서, 영감의 원천인 영도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니 오데고>는 여든여덟인 모친과의 통화내용을 그대로 노랫말로 써서 사투리의 가치를 재조명하며, <헤세송>은 세상의 모든 고양이를 찬사하고 집사들을 응원한다. 헤세는 그가 카페 헤세이티를 운영할 때 키우던 고양이 이름이다. 이 밖에도 이 앨범에는 <고슴도치>, <힘내지 말아요>, <옥상화>, <한라산>, <너의 창문 아래선> 등의 곡이 실려 있다.
그는 서울에서 집시음악을 하는 밴드 ‘신나는 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편곡자를 만나 의기투합하고 앨범을 냈다. 여태까지 작곡했던 300여 곡 중 19곡을 추려 작업했다. 최종적으로 앨범에는 열 한 곡이 수록됐으며, 앨범 제목은 <니 어데고>다. 디지털 음원은 지난 7월 31일 발매됐다. CD는 아직 디자인 작업이 끝나지 않아 8월 중으로 발매될 예정이다.
황경민은 예술의 가치를 부조리와 관습의 타파, 연대와 배려의 이타성, 대중예술에 대한 비판적 담론과 실천에서 찾아온 듯싶다. 물질세계와 정신세계가 대립하는 현실을 철저하게 인정하고 공존을 모색하면서 새로운 삶을 열어가려는 열망의 문턱에 늘 가까이 서 있으려고 노력한 듯하다. 그가 발매한 앨범의 노랫말을 쭉 읽어보고 느낀 점이다.
노래와 노랫말은 직접 감상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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