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강경대 평전

강경대 평전 - 1991년 5월 투쟁의 꽃

이동권 2021. 4. 4. 21:15

故 강경대 열사는 1991년 4월 26일 학원 자주화와 노태우 군사정권 타도 시위 도중 백골단이라고 불리는 사복 경찰들의 쇠파이프에 두들겨 맞아 심장막 내출혈로 숨을 거뒀다. 열사의 주검은 노태우 독재정권의 실체를 만천하에 밝히는 계기가 됐으며, 그해 전국적으로 일어난 반독재 민주화운동, ‘5월 투쟁’의 기폭제가 됐다.

 

강경대 평전 표지

 

나는 이 책을 고리타분하게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책이란 쓰는 사람이 만족하는 것보다 읽는 사람이 배우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혹자는 이 책을 ‘부드러운 평전’이라고 얘기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나는 인터뷰와 자료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으며, 비록 이야기는 내 방식대로 풀었지만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다.


우리는 너무 빨리 잊는다. 성찰하고 용서를 받는 시간에 이르러 되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나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노력과 시간을 갉아먹으면서 살아왔지만 공은 언제나 내 것이었고, 타인의 가치는 멀리 있었다. 특히 먹고사는 일로 주위를 돌아보지 못할 때면 더욱 그랬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참다운 이성이나 뭔가 인간적인 감정, 민중의 애환이나 진정한 평화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해봤다면 사정은 달라졌겠지만 화려한 현실 뒤에는 참혹한 번민과 고통만 있을 뿐이었다. 


이럴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하기 위해 태어났는지’ 물었다. 하지만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모든 것들이 나를 아는 체 하기가 부끄럽다는 듯 그냥 스쳐 지나가버렸고, 내 사상이나 현실 따위를 부정하듯 시선을 피했으며, 애초부터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것처럼 침묵했다. 그래서 나는 너무도 고독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하나의 뚜렷한 상과 마주쳤다. 쌍꺼풀이 곱상하게 진 하얀 피부에 부드럽고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는 ‘강경대’였다. 그 순간 나는 마치 높은 절벽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처럼 현기증이 일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내가 진정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강경대 평전 표지는 이동환 작가가 참여했다


이동환 작가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얘기한다. 자본주의 논리가 만들어 낸 갖가지 문제들에 억눌리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다. 


어떻게 보면 매섭고 아픈 그림이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공간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빠져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처럼 안타깝고 격정적이다. 하지만 이 몸부림은 동시에 희원을 품는다. 꾸짖고, 반성하고, 다시 설득하면서 스스로 앞날을 환하게 비출 ‘희망의 등대’가 되길 원한다. 따라서 그가 그려낸 우리 사회의 모습은 예술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의 예술은 우리 사회를 통렬히 비판하고, 고발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개조와 우리 사회의 변혁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작품은 1991년 ‘5월 투쟁’과도 깊은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故 강경대 열사가 품은 순수한 열정과도 맞닿아 있다. 


단 한마디 거리낌 없이 표지 작업에 참여해준 이동환 작가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상처의 땅 장지, 수간채, 116 x 91cm, 2011

 

강경대, 목판화, 2011, 이동환
캘리그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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