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눈앞에 닥친 위기만 보는 바보들 천지다.
바다가 주는 완벽한 휴식에 몸과 마음을 맡겼다. 휴식은 영육을 동시에 살찌게 했다. 여행 다닐 때 몸살감기를 예방하는 방법도 충분한 휴식이었다. 나는 해변에 앉아 책을 꺼내 들었다. 잘 읽히지 않겠지만 잠들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아까웠다.
예상대로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시간과 공간이 꿈만 같았다. 나는 책을 내려놓고 가만히 누워 하늘을 봤다. 저절로 탄성이 새어 나왔다. 하얀 구름은 푸른빛의 하늘과 잘 어우러졌다. 신이 아니라면 절대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영험함이 느껴졌다. 그야말로 신묘불측, 신기하고 묘해 미리 추측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바다로 눈길을 돌렸다. 해변도 예사롭지 않았다. 파도가 부서지는 해변은 말 그대로 보석처럼 빛났다. 그러나 이곳에도 어김없이 사람이 남긴 부유물들이 흉물스럽게 파도를 탔다. 해변 끝에는 얼룩무늬로 위장된 초소가 있었다. 이 초소는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의 상흔을 보여주며 머릿속의 이념을 엉클어뜨렸다. 이념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 어떤 이념도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논할 수 없다. 그러나 해방 이후 조선은 이념이 분열되면서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달았고,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났다. 지금도 과잉된 이념갈등은 출구 없는 우리 사회를 투영한다. 이곳 앞바다에서도 해군의 함포 훈련이 매년 벌어지고 있다.
나는 철조망이나 초소, 군인을 볼 때마다 노상 불안했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였고,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영화나 책을 통해서만 배웠지만 내 육체와 정신은 이미 전쟁이라는 폭력에 갉아먹힌 상태였다.1)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져 있어서 그랬고, 민족의 상처가 아물 기미가 보이지 않아 더욱 그랬다. 적에 대한 분노와 승리로 사람을 도취시켜 인간성 괴멸 상태로 이끌었다.
나는 전쟁하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전쟁광으로 불렸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듯이 전쟁을 벌이는 깡패 나라였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침략전쟁을 일으켰고, 약소국에 제국주의의 식민 질서를 따르도록 강요했다. 미국은 1964년 통킨만 사건을 조작해 베트남전을 일으켰다. 엘살바도르전, 걸프전, 소말리아전, 아프가니스탄전, 이라크전 등 전 세계에서 전쟁을 벌여 수많은 젊은이들을 전쟁터에 보냈다.
미국 정부를 등에 업은 거대 군산복합기업도 전쟁광이었다. 이들은 미소 냉전시대에 부를 축적했고, 지금도 전쟁을 부추기고 무기를 판매하며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최근에는 용병주식회사까지 설립해 우방국들에게 군사훈련과 군수품을 지원하며 무기를 팔아먹고 있다.2)
세계 평화를 위한 실질적인 태도 변화가 없다면 미국은 ‘전쟁광’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끝을 보여주는 나라였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글로벌 경기침체는 엄청난 실업률을 불렀다. 실업률은 개인의 행복과 함께 경제를 총체적인 난국으로 이끄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실업률이 증가한 이유를 ‘일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일하려는 의지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약자들은 효율이 떨어지면 해고를 당했고, 개만도 못한 죽임을 당했다. 단물 다 빨아먹고 조강치저를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미국 경제의 심장부 월가에서 ‘점령하라’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의 구호는 미국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다. ‘자본주의의 탐욕을 버려라, 돈보다 사람이 먼저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부과하자, 생계비 일자리 걱정을 하지 않게 해 달라, 99퍼센트가 가난한 불평등을 종식시키자.’ 한국 사회가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지 알려주는 소중한 구호였다. 여태까지 우리 사회는 상위 1%에 대해 쉬쉬했지만 재벌개혁에 대한 얘기가 공개적으로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사회 변혁의 핵심이 바로 상위 1%라는 것을 대중이 조금씩 인지하기 시작했다.
세계경제가 불황과 갈등의 터널을 헤매고 있다. 머지않아 정의는 실종되고, 원칙은 파기되고, 성실하게 노력해도 희망은 없고, 정당한 대가를 보상받을 수 없는 자본주의의 몰락을 경험하게 될지 모른다.
인류는 참혹한 전쟁의 폐허에서도 지금과 같은 업적을 이뤄냈다. 이젠 공고한 평화로 인류의 생존을 지켜내는 것이 전 세계가 할 일이다. 아울러 풍요로운 지구로부터 대대로 삶을 상속받았지만 탐욕과 오용으로 오염과 파괴라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생존을 위협하는 다양한 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인류의 책무다.
1) 날마다 죽음의 고통을 이겨 내면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도록 강요당하는 상황은 상상만으로도 치가 떨렸다. 철저하게 파괴된 도시, 팔다리를 잃고 신음하는 병사, 구멍 뚫리고 불에 타 죽어 널브러진 시체들. 전쟁터는 딱 지옥이었다.
2) 전쟁터는 거대한 시장이다. 거기에서 무기와 사람은 상품이 됐다. 사람도 전쟁에 팔려 나간다. 용병들은 돈을 많이 주면 못 갈 데가 없다. 그러다 보니 군산복합기업은 이윤을 위해 과장된 위험도 퍼뜨렸다.
사람들은 더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해 산다. 그것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세상을 둘러보니 어느새 사람들은 자연의 온기마저 돈이 된다며 값을 붙였다. 공기 좋고 물 맑으면 땅값도 더 비싸졌다. 머지않아 소유하지도 않은 땅의 물과 공기, 하늘마저 값을 정해 팔 것 같다. 전쟁도 그래서 벌어진다. 더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해서 서로 잡아먹으려고 안달이다. 이제는 소유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래야 전쟁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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