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개망나니의 사색

011. 모래밭을 거닐며 -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

이동권 2024. 3. 7. 21:22

 

사람이 가장 감추고 싶은 것은 못된 마음이다.



서포리 해수욕장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수욕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완만한 경사와 넓은 백사장을 자랑했다. 모래알은 스스로 살아있는 듯 서로 몸을 부대끼면서 눈부시게 빛났다. 서해의 모래는 동해의 것과 성질이 달랐다. 동해의 모래는 그것 자체로 해변을 아름답게 했지만 서해의 모래는 다른 바다살이와 어울려 아름다운 해변을 만들었다.

 

휴가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외국인들만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반바지를 꺼내 주섬주섬 갈아입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날씨가 약간 춥기도 했고, 바다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었지만 외로움은 잠시도 나를 그냥 두지 않았다. 바닷물이 피부에 닿는 촉감을 느끼고 싶었다.


조개껍질과 형체만 남은 불가사리가 둥둥 떠다니는 바다로 들어갔다. 물은 그렇게 차갑지 않았고, 바닥은 단단했다. 앞으로 계속 걸어갔다. 좀처럼 엉덩이가 물에 잠기지 않았다. 얼마나 더 걸어야 허리까지 물이 찰지 오리무중이었다.1)

 

어리석었다. 뒤를 돌아 망연히 해변을 바라봤다. 그 자리에 주저앉으면 목까지 물이 찰 것을 왜 그렇게 멀리까지 걸어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내 삶은 항상 그래왔던 것 같다. 경주차들이 맹렬히 질주하듯이 폭음을 내면서 결승점을 향해 달렸다. 진흙탕에 빠지는 줄  모르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줄 모르고, 얼음판에 미끄러져 나뒹굴 줄 모르고, 큰 파도에 휩쓸려 나자빠질 줄 모르고 돌진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앞만 보며 왔던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가치 있는 일’에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에 달려 있었다. 갈망의 대상이 그릇되거나, 자신만의 문제로 국한하거나,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거나, 잘잘못을 되돌아보지 않으면 제아무리 최선을 다한 삶이라도 행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성실하면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느 순간 ‘열심히’만이나 ‘버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때가 왔다. 그때마다 선택의 갈림길에 놓였고, 모든 것을 깨끗하게 받아들이거나 놓을 수 있는 겸손과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삶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렸다. 누군가에게 실컷 이용만 당하거나 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비극을 맞이한다는 것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마음을 고쳐 먹었다. 물질이 최고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생각하며 사는 것으로는 모자랐다.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야 했다. 갈망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갈망의 대상도 모두 달랐고, 갈망을 성취하는 과정도 같지 않았다. 행복의 의미도 제각각이었다. 틀을 고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 무렵부터 나는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음악을 틀어놓고 해변에 누웠다. 누군가 옆에 누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포개고 앉아 뜨거운 밀어를 나누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외로움이 준 욕구는 아니었다. 


사람은 어쩌면 욕망의 전리품이었다. 정신의 순수함만 추구하는 이들의 삶은 값지지만 그것이 삶의 훈장을 받을 일은 아니었다. 육체의 즐거움이 그들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부분이 아닐 뿐이었다. 나는 성적인 쾌락도 이런 관점에서 봤다. 서로 동의하고 사회의 미풍양속을 깨지 않는 범위라면 죄악이라고 볼 수 없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늘 구속당했다. 성에 대한 얘기를 밖으로 꺼내놓지 못했다. 아파트, 그녀의 남자, 성기, 꽃등심 같은 단어에 위축됐다. 마음을 감췄다.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사회의 억압도 느꼈다. 선배들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못을 박았고, 나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치부했다. 그래서 성은 더욱 음성적이고 자극적인 형태로 전이됐다. 젊었을 때 성적 쾌락이 내 가슴에 과오라는 생각이 번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좀 더 삶을 폭넓게 볼 수 있었을 것 같다.2) 


자유는 때론 방종과 나태,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 치우쳐 공동체와 사회를 망가뜨리곤 했다. 하지만 자유는 세상의 잣대나 보는 눈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거나 삶의 가치를 담아내는 소중한 그릇 역할을 했다. 


따뜻한 해변에 누워 마음껏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니 마음이 답답했다. 성에 대해 편안하게 얘기하고 싶었다. 색안경을 끼고 싶지도 않았다. 언젠가는 내게도 그런 날이 올 것이라 믿으며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눈을 감았다. 나는 모래밭에 마음심心자를 여러 개 썼다.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며 살도록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달라고 빌었다.

 


1) 불가사리를 만져본 적이 있는가. 불가사리는 편평한 별 모양의 바다살이다. 윗면에는 알갱이 모양의 돌기나 가시가 빽빽이 나 있어서 만지면 까칠까칠하다. 처음 불가사리를 만졌을 때 신선한 충격을 경험했다. 사진으로만 봤을 때는 무척 부드러울 줄 알았다. 세상엔 그런 일들이 많다.

2) 생식기는 특별하지 않다. 생명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신체 기관이다. 여러분이나, 나나 모두 가지고 있다. 아래 그림은 성인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다. 이상하게 보이는가? 한국 사회는 성에 대해 무조건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다. 예술가들의 의도적인 표현에도 외설 딱지를 붙여 금기시했다. 그렇게 감출수록 피임이나 성병, 성폭력, 성결정권, 임신 등에 대해 청소년들은 무지할 수밖에 없다. 청소년들은 성교육을 받는 게 좋다. 어른들 중에는 성행위를 가르치는 것을 성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성교육이 아니다. 

 



감정에 휩쓸리는 사랑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수만 번씩 바다가 만들어 내는 허연 포말처럼 공허한 것이었다. 소유하려는 사랑 또한 자연이 옷을 바꿔 입듯이 자신의 빛과 촉감, 생각과 느낌이 변하게 되면 결국 의심스러운 것으로 남게 됐다. 진정한 마음은 홀로 서있을 수 있을 때, 갈망하고 소유하고 부러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홀로 꿈꾸며 살아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랑은 현실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