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칼로 새긴 장준하

031. 장준하 일대기 18 - 일탈을 끝내고 초심으로 돌아가다

이동권 2023. 9. 1. 00:00

일탈 - 흔들리는 기강

장준하 일행은 보급품을 기다리기 위해 난양에 머물렀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도 만만치 않았지만 충칭으로 가는 여정도 무난하지 않았다. 일행은 개개인에게 독립투사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율을 맡기고 휴식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용납할 수 없는 일탈이 벌어졌다. 식욕과 성욕 때문이었다. 


먹을 양식이 떨어지고 있었다. 하루 두 끼 먹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 취사를 담당했던 장준하는 아침이 되면 끼니 걱정 때문에 눈앞이 암담했다. 며칠만 더 버티면 보급품이 도착했다. 어떻게든 그때까지 식량을 조달해서 동지들의 배를 채워야 했다. 우선 식사량부터 줄였다. 수중에 돈이 많지 않아 밀가루와 채소만 구입해 죽을 끓였다. 모두들 배가 고팠지만 함께여서 참을 만했다. 목숨을 건 고난의 행군을 같이해 온 동지들이었다. 며칠 동안의 배고픔은 서로를 애틋함으로 모자람 없이 상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족이 있는 부부들은 달랐다. 배급량이 줄고, 끼니를 거르기 시작하자 따로 갖고 있던 돈으로 먹을 것을 샀다. 시장기를 이기지 못해 자신의 배만 채우는데 열중했다. 이들이 옆에 굶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도 자기 가족들만 챙기자 장준하는 부아가 났다. 그는 독하게 마음을 먹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혼자만 살겠다고 먹을 것을 나누지 않은 사람들과는 동행할 수 없으니 당장 떠나라고 큰소리를 쳤다. 이국땅에서 듣기에 심한 말이었지만 이들이 일행을 위한 충고 정도는 수용할 것이라고 의심치 않았다. 이들은 미안한 마음에 가지고 있는 돈을 장준하에게 내주며 사과했다.


가장 문제가 된 건 애정행각이었다. 장준하 일행을 인솔했던 중앙군관학교 책임자가 나중에 따로 합류한 여인 한 명과 정분이 났다. 남녀 간에 서로 좋아하게 된 것을 나무할 필요는 없었다. 문제는 책임자가 그녀와의 성행위에 집착해 본분을 잊은 것이었다. 그에게는 일행 안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어려움들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장준하는 책임자에게 충칭에 도착하면 두 사람을 결혼시켜 줄 테니 분위기 흐리지 말라고 따끔하게 조언했다. 책임자는 무겁게 잘못을 뉘우치며 여러 방면에서 힘닿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뜻밖의 일탈은 훈련반 동지들이 일으켰다. 5명의 동지들이 여러 여인들과 방탕하고 난잡한 섹스를 즐겼다. 아무 데나 배설하는 짐승처럼 염치없이 성을 탐닉했다. 이성을 지닌 인간이라면 차마 보여줄 수 없는 추잡하고 볼썽사나운 성교였다.

뺨 맞은 동지들 - 처벌

장준하 일행 중 다섯 동지가 여성들과 뒹굴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불끈불끈 솟아나는 성욕을 채우기 위해 날이면 날마다 여성들이 머무는 숙소를 드나들었다. 여성들도 이들의 유혹을 뿌리지지 못하고 상대했다. 이들의 행각은 단순히 성욕을 채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말초적인 쾌감에 젖어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고 파괴적인 섹스에 몰두했다. 남녀 10명이 뒤엉킨 소리는 같은 숙소에 묵던 동지들에게 벽을 타고 그대로 전달됐다. 격정적인 신음소리,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 어떤 때는 구령소리에 맞춰 삽입하는 소리까지 들렸다. 타성과 태만에 빠진 동지들도 그 소리를 듣고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장준하는 나태하고 비소한 언행이 일행 안에 방만하게 번진 것은 견딜 만했다. 썩어빠진 정신은 충칭으로 가는 고난의 행군 동안 십분 개조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섯 동지의 변태 행각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공동체 의식을 파괴하고, 독립투사의 긍지를 손상시킨 행동은 엄벌이 필요했다. 


장준하는 일행을 모두 마당에 불러 놓고 다섯 명이 저지른 잘못을 상세히 밝혔다. 또 이들이 동지들을 실망시킨 점에 대해 합당한 처벌을 내렸다. 뺨 서른 대였다. 장준하는 김준엽과 함께 동지들의 뺨을 때렸다. 형식적인 처벌이 아니었다. 찰싹찰싹 소리가 나도록 세게 후려갈겼다.


장준하와 김준엽의 마음은 무거웠다. 눈물은 흘러내렸고, 손바닥 힘은 빠졌다. 한평생 뜻을 같이할 동지들을 자기 손으로 때려야 한다는 사실이 용납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행의 해이해진 기강과 혼탁해진 윤리를 바로잡고 충칭으로 가는 목표를 재정비하기 위해서는 부정에 관대하게 대할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조국 독립이라는 높은 뜻을 강직하게 밀고 나가려는 고육지책이기도 했다. 뺨을 맞는 동지들은 두 사람의 진심을 알았다. 단 한 번도 눈을 흘기거나 반항하지 않고 이들에게 뺨을 대며 용서를 구했다.


장준하는 전쟁 중 적군에 대한 복수심이 폭발해 벌어진 강간마저도 용인하지 않았다. 전쟁이 인간성을 말살하고, 끝이 없는 타락으로 이끌고, 삶의 의의를 찾지 못하게 만들더라도 한국의 아들들은 고귀한 인성의 소유자가 되길 바랐다. 그것이 황폐화된 조국을 새롭게 번성시킬 밑바탕이 된다고 믿었다. 민족을 배신한 친일파들의 야비한 행동이 그토록 싫은 이유도 똑같았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은 짐승과 같았다.

고륭중에서 만난 제갈량 - 오래간만의 여유

장준하 일행은 중앙군관학교를 떠날 때 가졌던 초심으로 돌아왔다. 뺨을 맞았던 동지들의 얼굴도 활짝 핀 나팔꽃처럼 밝았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농담하는 여유도 보였다. 때마침 라오허커우에 있는 리쭝런 사령부에서 보급품이 들어왔다. 일행은 뛸 듯이 기뻐하며 밀가루와 동복, 외투를 지급받고 다음 목적지인 라오허커우로 향했다. 걸어서 사흘이면 닿을 거리였다.


장준하는 가뿐한 마음으로 나섰다. 무엇보다 동지들의 표정이 명랑해 선발대로 떠나는 기분은 한결 가벼웠다. 수레를 끌고 하얀 눈이 수북이 쌓인 벌판을 걸어 초가집 열두서너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마을에 숙소를 잡았다. 그는 보급품으로 받은 식재료로 저녁에 먹을 음식과 다음날 점심에 먹을 밀가루빵을 준비해 놓고 일행을 기다렸다. 
하늘에 별이 총총히 떠 반짝이기 시작했다. 초승달은 예스러운 자태를 뽐내며 산봉우리에 걸쳤다. 찬바람도 서서히 잦아들며 유난스레 고즈넉했다. 그러나 일행은 밤이 깊어도 도착하지 않았다. 장준하는 걱정 섞인 눈으로 걸어왔던 길을 쳐다봤다. 필연코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올빼미 우는 소리가 허공을 맴돌며 그의 걱정을 연신 부추겼다. 인기척은 자정이 다 돼서야 들렸다. 일행들이 기저귀를 찬 아이들처럼 다리를 벌리고 아장아장 걸어왔다. 원흉은 옴이었다. 일행들은 전신에 돋아난 옴이 곪아 터지면서 극심한 가려움증을 겪었다. 특히 걷는 동안 연약한 사타구니 살이 마찰이 되면서 벌겋게 부어올라 쓰라렸다. 이들은 도착하자마자 겨울만 아니라면 발가벗고 걷고 싶을 정도라고 하소를 터뜨렸다. 


다음날 제갈공명의 생가와 사당이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일행은 계속 뒤처져 언제 올지 몰랐다. 장준하와 김준엽은 일행을 기다리면서 잠시 기행을 떠났다. 두 사람은 평소 삼국지 광팬이었다. 제갈공명의 흔적을 보지 않고서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제갈량의 고향은 고륭중이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사방은 송백나무가 자라는 산으로 둘러싸였고, 사이사이마다 냇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위패를 모신 사당은 그의 명성에 맞지 않게 작고 아담했다. 오직 대륙 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루기 위해 청빈하게 살았던 그의 삶과 딱 맞는 듯싶었다. 두 사람은 잠시 조국 독립의 뜻을 잊고 한가로이 거닐면서 옛 명인의 업적을 구가했다.

동병상련의 마음 - 라오허커우 도착

멀지 않았다. 하루만 걸으면 중국군과 일본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라오허커우에 당도했다. 보급품으로 받은 밀가루가 벌써 바닥을 드러냈다. 선발대는 조용한 마을에 숙소를 잡고 시장에 나가 장을 봤다. 정육점 주인이 장준하 일행이 한국인인 것을 알아채고 기쁜 동정을 전했다. 라오허커우에 한국광복군 전방 파견대가 머문다는 소식이었다. 


장준하 일행은 난양을 떠난 지 나흘째 되는 날 라오허커우에 도착했다. 라오허커우는 꽤 큰 도시였다. 주민들도 많았고, 군사시설도 곳곳에 세워졌다. 광복군이 일행을 마중 나왔다. 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충칭으로 향하는 한국인 53명이 온다는 기별이 라오허커우에 벌써 닿아 있었다. 장준하는 모국어를 하는 동지들이 만나자 뛸 듯이 기뻤다. 피는 무서웠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인데도 곧바로 정이 갔고 자연스럽게 의지가 됐다. 일제의 횡포와 숱한 고난을 함께 겪은 동병상련이었고, 낙엽처럼 흩어져 지내는 한국인들이 조국에 함께 모여 살기를 바라는 바람이 똑같아서였다. 라오허커우에 주둔한 광복군은 전방 파견대가 아니라 중국군 제5전구사령부 제1지대 분견대로, 인원은 소대장을 포함해 3명밖에 되지 않았다. 


소대장은 장준하 일행에게 충칭까지 가는 비행기 편을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하며 라오허커우에서 푹 쉬다 떠나라고 했다. 누구라도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 충칭에 가려면 한 달을 꼬박 걸은 뒤 배를 타야 했다. 일행은 환호성을 지르며 라오허커우에 머물기로 했다.


숙소는 절간처럼 컸다. 최고급 목재를 사용해 고풍스러웠고, 번화가와도 동떨어져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풍경 소리만 바람에 댕그랑거리며 고요한 적막을 깼다. 기와지붕에는 풀이 듬성듬성 자랐다. 추녀 끝에는 겨울새들이 앉아 쉬었다. 숙소 뒤 가파른 절벽 밑에는 대륙을 장류하는 장강(양쯔강)이 흘렀다. 강 너머에는 웅장한 산들이 펼쳐져 감탄사를 절로 불렀다. 


장준하 일행은 아름다운 경치에 도취돼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속세에 나오지 않고 이곳에 꾹 박혀 지내면 전쟁의 화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숙소 가까운 곳에 거대한 군사 기지와 공장이 있는 게 흠이었다. 장준하는 검은 연기를 내뿜는 군사시설을 보면서 인간들이 일으킨 무분별한 전쟁과 산업화가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망치는 것 같아 밥맛이 싹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