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갤러리 대표라고 하면 ‘돈 좀 있는 집안’의 자식이라고 생각한다. 매스컴에서 ‘모 기업 회장 딸이 미술관을 열었네, 그림 가격이 얼마네, 그림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네’ 등이라고 떠든 탓이다. 또 그림 자체가 워낙 고가인 데다 그림을 공부하는데 큰돈이 든다는 선입견도 작용했다. 하지만 모든 갤러리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림이 좋아서’ 혹은 ‘사명감’으로 갤러리를 운영하는 사람도 있다. 이경희 갤러리409 대표다.
이경희 대표는 전직 중학교 교사다. 이 대표는 교사로 활동할 당시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 젊은 작가를 만나면서 미래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이 대표가 만난 젊은 작가는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개인전을 열 형편이 못돼 아파트 방 하나에 차곡차곡 그림을 쌓아뒀다. 때로는 캔버스를 살 돈이 없어서 이미 완성된 작품을 꺼내 그 위에 그림을 다시 그리곤 했다.
“제가 찾아가면 작가는 단 한 명의 관람객을 위해 쌓아 뒀던 그림을 거실 벽 사방에 쭉 펼쳐놓아 주었다. 그림에 둘러싸인 저는 천국에 있는 듯했고, 좋아하는 저를 보고 작가는 더 좋아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그림에 관심을 가져주고 보아 주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라고 하더라.”
이 대표는 방안에 쌓여 있는 그림을 보면서 언젠가 여건이 되면 갤러리를 열어 이런 작가들이 그림을 펼쳐 보일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맘먹었다. 형편 때문에 성장하지 못하고 주저앉는 작가들에게 전시 공간을 제공해서 작가와 고객이 만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제공하고,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신진작가를 발굴해 육성하고 지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결국 그는 28년간의 교직 생활을 접고 갤러리409를 열었다.
“미술에 관심이 있어 오랫동안 미술시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늦게 미술 관련 공부를 시작해 보니 미술시장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각했다. 현재 활동하는 작가들 중에서 일부 블루칩 작가들을 제외하고는 전시 공간을 대여해 전시할 작가들이 많지 않다.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하고는 있으나 보여 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신진 작가들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작품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입마저 보장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갤러리409는 경부고속도로 기흥IC 근처의 기흥주택단지의 단독주택에 위치해 있다. 갤러리 규모는 작지만 주변에 코리아CC와 골드CC가 있는 데다 맛집도 많고 녹지 공간도 있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한껏 고요와 여유를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곳은 안성맞춤이다.
“이 공간이 사랑방이었으면 한다. 옛날 우리 한옥에는 소통의 공간이 두 곳이 있었다. 가족끼리 소통하는 대청마루와 손님이 오셨을 때 모시는 사랑방이 있었다. 주거문화가 아파트로 바뀌면서 대청은 거실로 대치됐지만 사랑방은 사라졌다. 그래서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가 집이 아니라 카페로 변했다. 나는 이곳이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림을 통해 공감을 나누고 소통하는 공통의 주제가 있는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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