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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배운다 - 지혜로 삶을 성찰하는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잠언록

이동권 2022. 10. 4. 11:45

나무에게 배운다


우리가 처한 삶은 친절하기도, 다정하지도 않다. 언제나 냉정하고 혹독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현실에 당당하게 맞서거나 현실을 바꿔가지만 어떤 사람은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면서 대충 살거나 자포자기해버린다. 무엇이 달라서일까. 그 비밀이 바로 책, ‘나무에게 배운다’에 담겨 있다. ‘나무에게 배운다’를 보면 스스로 숲이 돼 편백나무를 기르고 자작나무를 가꾸는 기분이 느껴진다. 살아있는 성인과 만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누가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어떤 집은 나무로 지어도 콘크리트 빌딩보다 오래가고, 어떤 집은 일 년도 되지 않아 비바람에 쓰러지고 만다. 똑같은 나무로 지었는데 무엇이 달라서일까. 이 책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나무를 다루고, 집을 짓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지 알려준다. 이를 테면 '여염집을 짓는 목수들은 집을 지으면 얼마가 남을까 하는 것이 먼저지만 궁궐 목수는 부처님이 사시는 가람을 짓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다'는 식이다.

이 책은 니시오카 쓰네카즈 장인의 이야기다. 그는 1300년을 이어 온 절 호류지에서 오직 나무와 더불어 평생을 살아왔다. 평생을 말 없는 나무와 이야기를 나눠가며, 나무를 생명 있는 건물로 바꿔왔고, 여든여섯, 더는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까지 연장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이 책에는 평생 입에서 입으로, 손에서 손으로 전해 온 소중한 지혜를 통해 얻은 그의 깨달음이 담겨있다. 책장 곳곳에 오래 곁에 두고 되새길 만한 잠언들이다. 이 책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굿즈’ 이전에 ‘지혜’를 주는 스승의 역할을 해 줄 것이다.

이 책은 1993년 처음 발간된 뒤 지금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폭넓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목수이나 고대 건축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필독서를 넘어 교대 입학생에게 교사와 선배가 추천하는 책, 유아교육과 학생들의 필독서, 소아과 의사들이 엄마들에게 추천하는 책, 대학원 경영철학 수업 필독서, 대학생 교양 교육을 위한 참고서 등으로 자리 잡았다.

이 책이 오랜 시간동안 독자들의 마음을 이토록 사로잡은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장인의 투박하지만 온화한 지혜의 목소리 때문이다. 나무에 빗댄 깨우침은 자신의 일과 삶을 넘어, 우리 시대의 문명과 교육에 이르기까지 단숨에 가 닿는다.

이 책을 출판한 전광진 상추쌈 출판사 대표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이 책을 낸 것이 아니다”면서 “자연에 들어가 살면서 힘들고 어려움을 느꼈을 때 이 책을 읽으면 마음을 깨끗해지고 위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느 대목을 펼치든 거기서부터 읽어도 되고, 내용도 어렵지 않아 이해하기 쉽다”고 추천했다.

이 책의 저자 시오노 요네마쓰는 니시오카 쓰네카즈를 일러 “생활 그 자체는 물론 신념, 기술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을 겸비했던 호류지의 마지막 대목장”이라고 상찬했다. 니시오카 쓰네카즈는 태평양전쟁에 끌려가 떠돌던 때에도, 그는 자신이 보았던 대륙의 사찰이나 탑을 일본의 아버지에게 그려 보냈다. 전장에서도 머릿속에는 오직 호류지뿐이었다.

그가 전쟁이 끝나자 가장 먼저 달려간 곳 역시 호류지였다. 집도, 가족도, 자신의 안위도 그에게는 늘 뒷전이었다. 결핵에 걸려 살날을 기약할 수 없을 때조차 그는 호류지 목수로서의 삶을 놓지 않았다. 호류지 없는 니시오카도, 니시오카가 없는 호류지도 생각할 수 없는 삶. 그에게 호류지는 온 세계이자 가치, 삶 그 자체였다. 이러한 그의 삶은 제자들을 교육시키는 것으로 이어졌다.

목수는 그때그때 시험에 통과하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는 안 됩니다. 일을 익히면 그것을 가지고 일생 밥을 벌고, 식구를 돌보고, 이웃을 위해 집을 지어야 합니다. 그런데 집을 짓는 건 머릿속 지식이 아닙니다. 자신의 손으로 나무를 자르고 깎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럴 때 머릿속 지식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자기 생각으로 차 있으면 스승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순진한 마음이 아니면 배움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스승을 향해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전해집니다. 이런 자리로부터 길을 찾아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제자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쪽이 좋습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책을 통해 얻은 예비지식을 가지고 이런 게 아니겠나, 하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머리로는 기억을 하고 있을지 몰라도, 손에는 아무런 기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머리만이 아니라 몸으로 익히러 오는 것이 제자입니다. 기술은 기술만으로 몸에 붙는 게 아닙니다. 기술은 마음과 함께 진보해 가는 것입니다. 일체지요.
- 본문 중에서

니시오카 쓰네카즈가 지은 호류지는 틈새 틈새마다 그의 피땀이 고스란히 묻어 있어 입가에 감탄사가 맴돈다. 정갈하고, 지혜롭고, 알뜰하고, 호젓하고, 단단하게 지어진 사찰.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아름다운 생명력 앞에 마음이 숙연해지면서 고요한 감동이 마음속에 스민다. 의미나 가치보다는 빨리, 싸게, 그럴싸하게 포장만 하려고 하는 현대인들의 천박한 근성을 다스리는 장인의 마음이다.

처마로 나와 있는 나무는 오랫동안 비바람을 맞으면 아무래도 끝이 상해 들어갑니다. 그래서 안쪽을 길게 남겼습니다. 앞이 썩거나 하여 상하면 거기를 잘라내고 뒤쪽에 남아있는 부분을 앞으로 내밀어 맞출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렇게 고치면 또 한참 동안 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입니다. 나무를 소중하게, 되도록 오래 살려 쓴다고 하는 것은....나무를 살립니다. 낭비하지 않습니다. 나무의 성깔도 좋은 쪽으로 쓰기만 하면, 오래 버틸 수 있는 건물, 튼튼한 건물이 됩니다. 우리는 그래서, 그걸 위해 기술을 전하고, 구전을 가르쳐 온 것입니다. 조금 더 긴 눈으로 세상사를 보고 생각하는 생활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좌우간 한 번 쓰고 버리는 생활이 기본이 되어 버렸습니다.
- 본문 중에서

니시오카 쓰네카즈는 일과 가르침에 성심을 다했다. 자신에게도 거짓이 없고 곧은 삶의 자세를 구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하고 싶은 이야기다.

교훈이 너무 뚜렷해서 그런지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가 겹치기도 했다. 하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조의 강조를 하는 그의 진심이 느껴져 기자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또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예로 들며 잔잔하게 설파하는 어법은 감동을 배가시켰다. 우리에게 물질에 대한 애착과 갈망이 얼마나 많았는지 금방 반성하게 만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참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캄캄한 장막을 스스로 드리며 살고 있는 자신은 보지 못한 채 ‘다른 답이 맞다’고 우기며 살았던 자신이 너무도 한심했다.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살과 피를 닦았다. 거센 바람처럼 솟구쳐 오르는 욕망과 감정, 생기 잃은 일상과 번뇌를 만드는 근원을 찾았다.

현대인들은 일신의 이익과 잣대로 세상을 대하고 삶의 중요한 부분들을 결정한다. 자신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보면서 안녕과 안식을 추구한다. 우주의 이치와 인간관계, 생명체 하나하나가 가진 특성과 아름다움, 이것들이 만들어내는 개연성을 생각지 못하고 제멋대로 한다. 이 책은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부정, 타인에 대한 박대와 무지, 물질문명의 타락과 천박한 근성을 관망하면서 삶의 지혜를 얘기한다. 인간이 인간다운 것은 마음에 있는 것이지 외부에 있지 않다는 것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쓰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만으로 건물을 짓고자 하는 건 나무의 성깔을 파악하고, 그 성깔을 살려서 쓰라는 구전을 거역하는 일입니다. 성깔이 있는 것은 안 된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성깔이란 사용하기 어렵습니다만, 살릴 수만 있으면 오히려 뛰어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목을 자른다거나, 혹은 없애 버리면, 좋은 건축은 불가능해집니다. 나무를 보는 것도 어렵습니다만, 사람을 보는 것도 어렵습니다. 안 쓰는 쪽이 좋은 사람을 무리해서 쓰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기보다 그런 사람도 쓸데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질이 있는 사람에게도 신기하게도 그에게 꼭 맞는 일이 반드시 있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오랫동안 대목장 노릇을 해 왔습니다만, 마음껏 부릴 수 없다고 목을 잘랐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 본문중에서

호류지의 목수들은 아스카 장인들의 정신을 잊어버리고, 벌이가 되는 일로 내달리는 일이 없도록 애썼다. 건축 일이 없는 동안에는 하루하루 농사를 지으며 ‘땅의 생명’을 마주했고, “신이나 부처를 숭상하지 않은 자는 사원이나 사찰 건축을 입에 올리지 말라.”는 구전에 따라 불교 경전을 읽었다. 이것이 바로 오래도록 목수들의 교과서로 꼽혀 온 호류지를 짓고 지켜 온 호류지 대물림 목수들의 삶이었다. 그 장인들의 마지막 대물림 목수가 바로 니시오카 쓰네카즈다.

한바탕 술렁이며 지나가는 구름처럼 형체도 없이 살다 가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늘 영원하다고 생각하며 일상을 구할까. 그저 구름처럼 제 몫을 다하고 살다 가면 그만인데, 무엇을 위해 비열하고 치열하게, 때론 갖가지 이익과 재물을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