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주피터

주피터 - 미군은 1945년 9월 8일 이 땅에 들어왔다

이동권 2021. 11. 15. 00:39

주피터 표지

나는 두 계급의 갈등과 반목을 얘기하고 싶었다. 부자이고 아름다우며 지적인 도시여자와 가난하고 투박하며 무식한 시골여자 사이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대립을 한국전쟁 당시 벌어진 미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과 곁들이고 싶었다.


소설은 애석하게도 다른 이야기로 마무리됐다. 집필 방향을 바꾼 이유는 노트북 하드디스크를 날린 덕분이다. 며칠 동안 여러 방법을 동원해 망가진 하드디스크 복구를 시도했지만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하늘이 노랬다. 망연한 기분이 들었다. 기억을 짜내도 똑같은 문장을 쓸 수 없었다. 나는 한동안 소설에 손대지 못하고 멍하게 살았다. 먹고살려고 일 년 가까이 두 권 분량의 기록물을 썼을 뿐이다.


다시 기운을 낸 건 2021년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전 세계인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출현으로 움츠릴 때였다. 스스로 재밌는 일을 만들어야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화젯거리가 필요했다. 나는 마음속 역정을 가다듬고 다시 펜을 들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나에게 특별한 사색을 제공했다. 소설의 주제를 유지하면서 갈등의 양상을 바꾸는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총칼보다 더욱 위협적인 세균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세균무기 공격을 폭로한 니덤보고서와 2015년 오산 미군기지에 살아 있는 탄저균이 페덱스로 배달된 사실을 떠올렸다. 세균은 바이러스와 다르지만 인간에 침투해 생명을 빼앗는 점에서 매우 유사했다.


2022년은 미군이 이 땅에 들어온 지 77년 되는 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들의 77년 공과를 묻는 일은 참으로 적절하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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