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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임 작가, 만남은 기억하려는 의지로부터 시작된다

이동권 2022. 9. 28. 00:05

김순임 작가

새하얀 깃털과 돌멩이들이 실에 묶여 천장에 매달려 있다. 거기에서 나는 인간의 ‘상처’를 읽는다. 속절없이 가버리는 세월을 원망하면서 외로움에 떠는 사람들. 그럼에도 그들은 ‘꿈틀’조차 하지 않고 위를 향해,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협곡과 같은 길을 내달린다.

누군가에게 저 가벼운 ‘깃털’로도, 이름 없이 굴러다니는 ‘돌멩이’로도 기억되지 못한 채 멍하니 어두운 빌딩 숲 가장자리에서 쓰디쓴 인생을 핥는 사람들을 보면서, 과연 김순임 작가는 무엇을 얘기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만남’이다. 김 작가는 “공간에 바람이 불고, 사람들이 숨 쉬고, 또 공기가 흐르니까 작은 깃털들이 움직인다”고 말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숙명처럼 얽혀있는 것도 모르는 채 고독하게 늙어가는 사람들의 애상을 긁어내는 얘기다. 그의 작품은 혹독한 시련과 고적한 비애를 끝끝내 이겨내기 위해서는 서로 만나고, 기억하고,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내 작품의 화두는 만남이다. 마치 실의 역할처럼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것, 어떤 세계와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만남이다. 모든 만남이 다 기억되고, 기록될 수는 없다. 그래서 기억되는 것은 소중하다.”

김순임 작가는 적극적으로 만남을 기억하고 추억하라고 말한다. 순한 성정으로 마음을 다듬고, 고된 노동과 시간을 투자하면서 서로의 만남을 이어주는 매파가 된다. 그리고 그 만남을 인간과 인간에 닿게 한다.

김 작가의 작업은 작업 자체만으로도 평화로움을 선사한다. 깊은 사색으로 삶의 익숙한 모티브를 떠올리게 하면서 일상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선 순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서로 돕고 나누면서 누군가의 기억과 추억 속에 남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그래서일까. 김 작가의 작품은 매우 따뜻하다. 돌멩이들의 작은 상처들을 어루만지며 작업한 작품들을 보면 김 작가의 따뜻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이 돌은 예쁜 돌들이 아니다. 페인트도 묻어있고, 콘크리트도 묻어있고, 깨지고 부서진 돌도 있다. 또 이 돌들은 땅에 박혀있는 돌이 아니라 길에서 정처 없이 굴러다니는 돌들로, 그 장소까지 보여준다. 주로 도시의 돌들이 많이 깨지고, 상처가 많다. 강이나 바다 등 자연 속에 있는 돌들은 예쁘다.”

김 작가가 만남의 매개체로 이용하는 것은 ‘실’이다. 실로 여러 가지 오브제와 돌멩이를 매달고 꿰매 연결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굴러다니는 돌이 무명실에 의해서 바느질되듯이 천장과 땅바닥의 돌이 연결돼 돌이 뜰 수 있게 작업했다. 또 아무렇게나 버려진 돌들을 수집하고, 그 돌에 의미를 부여한다. 언제 어디에선가 굴러먹었을 돌을 주워 숨을 쉬게 한다. 이것은 곧 그의 기억이 되고 추억으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추억은 그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수많은 인생사의 변화와 유혹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에너지를 선사한다.    

“작품에 사용된 이 돌들은 어떤 사람이 만났고, 언제 어디서 만났는지 기억되면서 달라진다. 그냥 돌이 아니라 전시장에서 작품이 돼 관람객들을 만나게 된다.”

사람들은 피가 질질 흘러내리는 도시에서 ‘쉴 곳은 아무데도 없다’고 생각하며 대자연으로 향하는 자신을 꿈꾼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따뜻한 태양이 내리쬐는 곳으로 떠나 맘껏 노닐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삶에 대한 애착과 연정은 용솟음친다. 욕망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연과 함께 숨 쉬고, 뭔가 인간적인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조차 판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하루를 지워가고 있다.

이에 김순임 작가는 작품을 통해 조심스럽게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마음을 할퀴는 상처가 있다면 인정하고, 서로 손가락질하는 세상이 있다면 울고, 아픈 거리를 누비면서 외로움을 느꼈다면 기억하면서 만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김 작가도 자신이 느낀 만큼 작업의 범주를 사회적으로 확장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여성작가로서 사회적 강자는 아니다. 나도 내 감정이 있는 한 인간이다. 내 감정에 유입되고 불쌍히 여겨지는 것들에 애착이 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