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 감독. 내가 그를 정확하게 기억한 시기는 무려 3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 '네 멋대로 해라(Breathless, À bout de souffle)'의 주인공 '미셀'이 죽으면서 혼잣말처럼 내뱉은 한마디, '당신은 정말 방탕한 여자야'라는 대사 때문이다.
당시 나는 문학에 푹 빠져 살았던 때라 영화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이었다. 이 영화도 무작정 영화평론가들이 '영화 혁명을 몰고 온 작품'이라고 추천하길래 봤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는 가슴을 울리는 감동은 없었다. 단지 슬픔인지 분노인지 모를 눈빛으로 세상을 향해 포효하는 주인공의 '광기'에 마음이 짠했다. 이것도 감동이라면 감동이라 할 수 있겠지만 가슴을 적셔주는 뜨거움은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주인공 미셀은 1950년대 프랑스 영화계에 일어난 새로운 혁명 '누벨바그(nouvelle vague)'를 대변하는 인물이었다. 20~30대의 젊은 영화인들이 전통적인 영화에 대항해 종래의 영화 개념을 바꾸기 시작한 '상징'이었다. 젊은 영화인들은 서사적인 구조보다 표현에 중점을 두었으며, 관습을 거부하고 현실과 카메라의 직접적인 접촉을 중시하면서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영상을 선보였다.
분명 프랑스 영화사나 시대적 배경을 숙지하고 장 뤽 고다르의 영화를 보았다면 감동은 달랐을 것이다. 아무런 지식 없이 보는 그의 영화에서 누벨바그의 혁명이 느껴지기는 좀 곤란하지 않겠는가.
장 뤽 고다르 감독은 스토리의 비약적인 전환, 시간과 공간의 이음새를 파괴한 편집, 반골적인 주인공의 폭력성을 영상에 담아냈다. 전통적인 윤리관에 냉소를 보내면서 마치 하워드 혹스의 갱영화 '스카페이스'를 진일보시킨 것 같다. 반상업주의와 이데올로기 영화의 선봉장으로 꼽히는 장 뤽 고다르지만 이 영화는 가장 정치성이 적다.
'네 멋대로 해라' 이후 누벨바그 혁명을 이끌어갔던 몇몇 작품을 흥미롭게 보기 시작했다. 샤브롤의 '사촌들', 레네의 '24시간의 정사' 트뤼포의 '어른들은 알아주지 않는다' 등이다. 누벨바그의 물결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세계 영화계에 끼친 영향은 매우 컸다. 그 당시 시대의 비난을 받는 가운데에도 총대를 멘 젊은 영화가들의 혁명이 없었다면 영화의 발전은 매우 더디었을 것이다.
반항과 젊음밖에 남아있지 않는 미셀은 도둑질과 폭력을 일삼는 범죄자다. 그는 모든 행동을 의식 없이 벌인다. 범행 동기도 계획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이 순간을 살기 위해 즉흥적으로 결정하고 시행한다. 결국 그는 경찰을 죽이고 여자 친구 패트리샤와 달아나다 여자의 배신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는 죽으면서 배반한 여자 친구에게 욕을 하지만, 그녀의 배신도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고 욕하며 죽는다.
누벨바그의 혁명을 이끈 장 뤽 고다르 감독은 영화 예술계에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이상으로 중요하게 평가받고 있다. 그의 영화를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을 떠나 영화를 여가생활 이상의 문화적인 욕구로 접근하는 사람들, 혹은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예외적인 감독이다.
장 뤽 고다르는 누벨바그의 시대를 지나 1968년 5월 혁명을 겪은 뒤 '지가 베르토프'조직을 만들어 혁명 영화를 제작했으며, 자본에 대항하는 급진적인 영화를 배포했다. 그는 혁명 영화에 주력할 것을 선언한 뒤 전 세계의 상업적인 배급망과 관계를 끊고 정치적인 영화를 만들었으며 전 세계 노동자, 학생 등 운동 집단과 연대해 창작활동을 펼쳤다. 1980년대 들어 그는 예술과 종교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회의하고 성찰하면서 새로운 영화 세계를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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