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평양'이 개봉했다. 처음 이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의구심이 들었다. 김일성주의자인 주인공의 신념과 철학이 이 영화 속에는 반의 반도 녹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 영화는 빨갱이 영화로 낙인 찍혀 개봉되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연일 간첩단 사건을 만들면서 공안정국을 연출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조총련 간부인 아버지의 인생을 바라보는 딸의 시선이 무지에 가깝거나 혹은 북한에 대해 거부감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염려는 현실로 이어졌다. '디어 평양'은 섭섭하고 불편했다. 영화는 그녀의 카메라에 노출된 북한의 현실로 아버지의 신념이 얼마나 이해할 수 없고 부질없는 것이며, 그럼에도 조국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아버지를 어쩔 수 없이 이해할 수밖에 없는 가족사의 애증과 연민을 크게 부각했다. 또 아버지의 신념과 인생에 대한 딸의 시선이 너무나도 보편적이고 가족중심적이었다. 사상과 정치적 성향이 다른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딸이 가족이라는 혈연주의를 통해 서로의 인생을 이해하고 타협점을 찾으며 화해에 이르는 과정은 분명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만한 이야기였다. 이러한 점은 베를린국제영화제 최우수아시아영화상, 선댄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싱가포르아시안페스티벌 최우수다큐멘터리감독상 등 수많은 영화제가 찬사를 보내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똑같은 이유로 보는 이들의 맘 한쪽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디어 평양은 양영희 감독이 10년여에 걸쳐 만든 다큐멘터리다. 감독 자신의 가족사, 재일교포사회, 북한의 일상 등으로 분단이 만들어낸 민족의 비극과 이념의 갈등을 잔잔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그녀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뉴욕에 가서 다큐멘터리를 공부했다.
감독의 아버지는 조국의 미래와 통일사업을 위해 충성을 다했으며, 일생을 바쳤다. 조총련 간부로 활동하면서 세 아들을 북한에 보냈으며, 제주도가 고향이면서도 평양을 더욱 사랑했다. (딸은 영화를 촬영하면서 제주 4.3항쟁의 진실을 알고 난 뒤 아버지를 이해했다. 아버지가 왜 세 아들을 북한에 보냈는지.) 아버지는 조국이 통일되면 그제야 제주도에 내려가 살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딸의 결혼을 채근하면서도 조선 남자가 아니면 안 된다는 기준을 꺾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매우 당돌하고 짓궂은 문답으로 아버지의 신념을 깎아내렸다. "(가족보다) 조국이 그리 중요한가요?"
그녀는 북한에서 살고 있는 형제들의 어려운 경제상황들을 영화 중간중간에 끼워 넣으면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장군님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아버지에 대해 원망하는 시선을 보냈다. 신념이 무엇이길래 가족이 이렇게 떨어져 살아야 하며, 기본적인 물자조차 구하기 힘든 북한에 왜 형제들을 보냈느냐는 것. 말미에는 잔잔한 화해와 사랑, 조국의 아픔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분단이 빚은 일련의 비극을. '죽음'이라는 원시성 앞에 반목과 원망을 누그러뜨리는 딸은 이렇게 말한다. 가치관과 사상은 달라도 아버지, 어머니의 딸로 태어나 행복하다고, 두 분이 너무나 사랑하는 것을 보면 부럽다고. 그리고 가족이 있는 평양에 가자고. 그러나 이 말은 곧 체제나 사상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평양 너희는 아느냐'로 반문한다. 북한이라는 나라가 진정 가족이 없고 인류애가 없을까. 하지만 핏줄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용서하고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 부분은 분단된 조국의 현실과 교차되며 그대로의 아픔으로 투영된다.
이 영화는 우리가 북한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되묻는다. 한 민족이며, 또 우리의 형제인 북한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무조건 빨갱이, 테러집단이라고 말하는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이야기 > 그래 그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 멋대로 해라 - 전통적 윤리관과의 작별, 장 뤽 고다르 감독 1959년작 (0) | 2022.09.21 |
---|---|
반딧불의 묘 - 1945년 9월 21일 밤 나는 죽었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1988년작 (0) | 2022.09.21 |
월령공주 - 불멸하는 정령들이 고언, 미야자키 하야오 1997년작 (0) | 2022.09.08 |
고양이의 보은 - 인간다움 잃지 않기,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 2002년작 (0) | 2022.09.07 |
명작 B급 호러영화 - 진정한 B급 호러영화 추천 (0) | 2022.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