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람들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고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덕망은 쌓인다.
하지만 경박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은
우리 이웃과 함께 동화돼 살아가는 것뿐이다.
깡마른 나무에 불꽃이 탁탁 튀자마자 순식간에 벌건 불길이 치솟았다. 기름을 약간 부어놓았는지 불은 금방 나무에 옮겨 붙었다. 군고구마를 손질하던 한 젊은이는 손잡이가 달린 불쏘시개로 나무를 이리저리 뒤집으면서 바람을 넣어 불을 지폈다. 행인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활활 타오르는 장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따뜻한 숄을 걸친 한 아주머니도 훈훈한 기운이 싫지 않은지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며 몸을 녹였고, 시장 모퉁이에 서서 마른기침을 내뱉던 한 노인도 군고구마통 옆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거센 바람이 거꾸로 불어와 연기가 젊은이의 얼굴을 덮쳤다. 영화에서나 나오는 괴물처럼 시커멓고 커다란 연기였다. 그는 연기가 점점 심해지자 숨을 쉬기가 어려운지 몸을 피했고, 불은 점점 빛을 잃어갔다. 군고구마통 주위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 안타까운 빛이 역력했다. 그는 연기가 잠시 주춤해지는 틈을 타서 나무 부스러기와 종이 따위를 장작 사이에 채워 넣으며 불을 살렸다. 제대로 불이 붙었는지, 장작은 강한 빛을 연방 내뿜으며 타올랐다. 그 빛을 보면서 사람들의 얼굴에도 따뜻한 미소가 감돌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뾰로통한 뺨에도 불그스레한 혈색이 번졌고, 노인의 퉁퉁 부어오른 눈꺼풀 밑에도 조그마한 안도감이 깃들었다. 나무 타는 냄새마저 따뜻했다.
사람들은 추운 겨울이 되면 군고구마통에서 나오는 미미한 열기에도 행복을 느낀다. 꽁꽁 얼어붙은 몸 구석구석을 한꺼번에 덥혀주지는 못하지만 단지 따뜻하다는 이유 하나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묘한 기쁨을 경험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도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군고구마통의 열기 같은 ‘행복’을 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작은 도움마저도 절실한 이웃에게 따뜻한 온정을 나누는 ‘사회복지사’다. 보통 사회복지사라고 하면 ‘공무원’이나 규모가 큰 복지관에서 일하는 ‘선생님’을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 자 붙은 직업에 대한 습관적인 타성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복지사들은 어려운 이웃들과 소소한 일상을 함께한다. 어떤 이들은 또 사회복지사를 좋은 마음으로 사회에 봉사하며 고생하는 사람으로만 여긴다. 그러나 사회복지를 단지 봉사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회복지사도 엄연한 직업이며,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없이 힘든 겨우살이
차갑고 사나운 공기가 귓바퀴를 찔렀다. 감기 기운 때문인지 자꾸만 입술도 으슬으슬 떨려왔다. 검은 레이스가 달린 한 여인의 치맛자락은 빨랫줄에 널린 커튼처럼 펄럭였고, 붐빌 이유가 없어 보이는 배달전문 피자가게에도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몰려 들어가 발을 동동거렸다. 모든 게 추위에 덜덜 떨고 있다.
겨울은 왠지 사람들의 마음을 수척하게 만든다. 피부도 거칠어져 수염도 잘 깎이지 않는다. 문득 겨울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계절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어둡고 굶주린 세상을 할퀴고 지나가는 이 새하얀 계절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슬픈 ‘연회’다.
먹고 마시는 일은 매일매일 걱정이다. 더구나 겨울이 되면 수도가 꽁꽁 얼어 얼굴을 씻고 머리를 감는 것도 힘들고, 차가운 방바닥을 데우는 일조차 녹록지 않다. 두꺼운 외투도 필요하고, 한기를 막기 위해 이래저래 드는 돈도 많다. 무엇보다도 가장 힘든 점은 이러한 고통들이 한꺼번에 찾아온다는 점이다.
지역센터 중에는 사회복지사들이나 직원들만 있는 오전에는 난방을 하지 않고 장애인, 어린이, 노인 등이 방문하는 오후에만 난방을 하는 곳이 많다. 정부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경기가 얼어붙으면 후원마저 뚝 끊어지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정식 복지시설로 인가를 받은 곳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사단법인 ‘나눔과섬김’ 채수희 사무국장은 “CMS, 후원, 자원봉사 등 우리 사업에 공감을 하고 도움을 주는 분들은 지속되는 편이지만 기업 후원은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이럴 때일수록 사회복지사의 손길은 더욱 바빠진다. 혼자 사는 노인들을 찾아가 간식거리도 전해주고, 생계가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 무료급식도 준비해야 한다. 양육이나 재활시설에서 함께 거주하거나 복지관에서 근무하는 복지사들도 혹독한 겨울을 대비해 살림을 추슬러야 할 때다.
내가 찾은 지역아동센터는 재래시장 인근에 있다. 하루 종일 시장에서 일하는 주민들도 많고 일반 주택가보다 살림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곳에서도 겨울을 대비해 챙겨야 할 일들이 많다.
‘나눔과섬김’은 현재 이 지역에서 확고한 기반을 잡고 전문 복지기관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정말 열악했다. 바닥에 물이 차고,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은 지하였다. 전문 인력도 턱없이 부족해 양질의 교육도 제공하지 못했고, 재정적으로도 매우 어려워 아이들 간식조차 사비를 털어 마련할 정도였다. 하지만 2004년에 부스러기사랑나눔회 지부로 선정되고, 2005년에 정식 아동복지시설로 인정을 받으면서 국가로부터 약간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지역주민들에게도 만 원을 받아요. 운영에 도움이 되려고 받는 것이 아니라 소속감, 최소한의 책임감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죠. 그래도 고마워하세요. 위험한 곳에 사는 아이들의 부모님도 안심하시고요. 공부 가르치고, 생활지도 해주고, 점심 저녁 급식까지 모두 무료로 해주거든요.”
희생이나 봉사가 아닌 직업
‘돈 벌자’는 생각으로는 사회복지사를 하지 못한다. 자기보다는 타인의 어려움을 보살피려는 사명감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정말 남다른 소신이 있거나 적성에 맞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채수희 사무국장도 다른 일보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더욱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회복지사요? 별다른 뜻은 없었어요. 하지만 이 직업이 기업이나 영리기관에서 일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기업에서 일하면 다른 데와 서로 경쟁해서 이겨야만 하잖아요. 보수도 적고 힘들지만 마음은 평안합니다. 그렇다고 복지사라는 직업을 ‘희생’이나 ‘봉사’라고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이 일을 하면서 배우고 얻는 게 많거든요.”
중동우리배움터 교사로 일하는 사회복지사 문선정 씨는 좋아서 이 일을 시작했다. 그가 사회복지로 대학 전공을 바꾼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 직업이 좋아요. 성격에도 맞고요. 어머니의 영향이 커요. 함께 자원봉사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거든요. 처음에 실습하러 왔다가, 실습이 끝난 뒤 자원봉사를 하게 됐어요. 그러다 실무자가 됐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만연했다. 하지만 기쁨 뒤에는 슬픔이 있고, 보람 뒤에는 역경이 도사리고 있는 법. 그에게도 분명 힘든 점이 있을만하다. 그러나 그는 ‘부족하고 노련한 게 없어서 걱정’이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공격적인 아이들을 대할 때 힘이 부쳐요. 아이들의 행동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저도 사람인지라 잘 안돼요. 그럴 때는 다른 선생님들과 얘기하면서 풀어요. 어머니께서도 격려해주시고요. 그런 얘기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그는 ‘일하면서 큰 욕심을 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충실하다 보면 모든 게 잘 풀린다는 것. 조급한 상황에서도 한 박자 쉬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그에게서 풍긴다.
“과잉 행동하고 산만한 아이가 있었어요. 사고도 많이 치고요. 이런 아이들은 사랑으로 지도해야 통하는데 지속적일 수가 없었어요. 아이들이 많아서 개별적으로 신경 쓰기가 벅찼거든요. 한 번은 마음먹고 그 아이를 집중적으로 관리했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선생님이 자기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는 팔찌를 만들어 주더라고요. 감동이었죠.”
급식 선생님으로 일하는 한영순 씨는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음식 솜씨도 없고, 네 식구 음식만 하다 삼 인 분 음식을 하려니까 엄두가 나질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할만하다.”고 웃는다. 아이들이 먹고 감사해하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다는 것. 한 씨는 “이 일을 하면서 저도 뭔가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면서 “가정에서 먹는 것처럼 식사를 할 수 있으니까 아이들에게도 좋다.”고 말했다.
편 가르지 마세요
문선정 씨는 사회복지사가 되면서 많이 밝아지고 웃음도 많아졌다. 원래는 차분한 성격이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쾌활한 심성을 갖게 됐다. 하지만 그는 사회복지사는 불쌍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사회의 편견이 영 못마땅하다.
“사회복지사를 어려운 아이들이나 도와주러 다니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사회복지사는 전문 직업인이거든요. 주위 분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자세하게 설명해줘요.”
이런 편견에는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아이들에 대한 선입견이 크게 작용했다. 센터 아이들은 일반 아이들과 다르다고 구분 짓기 때문이다.
“똑같은 아이들이에요. 가정이 어렵고, 생활도 다르지만 생각은 똑같아요. 하지만 어른들이 편견을 가지고 있어요. 공격적인 아이들이 피해를 주니까 꺼리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럴수록 관심을 가져야죠. 어울리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요.”
채수희 사무국장도 우리 사회가 지역센터의 아이들을 모두 가난하고, 소외되고, 학대받는 아이로 생각하는 것에 불만이다.
“센터 아이들이 일반 아이들과 똑같은 일을 저질러도 시선이 다릅니다. 센터 아이니까 그런다는 거죠. 학교에서 놀림을 받거나 ‘왕따’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자기 아이가 센터 아이를 괴롭혀도 부모들이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습니다. 정신지체아인 아이를 괴롭히는 친구를 다그치니까 그 학생의 부모가 찾아와서 내 아이의 말이 맞겠냐, 이 아이의 말이 맞겠냐고 따지기도 했죠.”
가끔은 ‘나눔과섬김’이 교회에서 출발했다고 해서 선교의 목적으로 센터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냐고 재단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곳은 종교와는 별개로 ‘지역복지운동’이라는 초심을 그대로 지켜나가고 있다.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불신의 사회’가 부르는 편견일 것이다.
그러나 진심은 통한다고 했다.
사회복지센터에 대한 편견
사회복지센터는 마냥 도와줘야 하고, 마냥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체계적으로, 전문적으로 지역의 일을 도맡아 하는 곳이 사회복지센터거든요. 사회복지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적은 월급에, 늦은 귀가에, 가족들의 반대에, 후원의 손길이 뚝 끊어져도 힘들다는 내색조차 못하는 사람들이라고만 알고 있거든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 졸업과 함께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이 자동으로 나와요. 1급은 4년제를 졸업하면 바로 시험을 볼 수 있고, 2년제는 졸업 후 실무경력 1년을 쌓아야 시험 볼 자격이 주어지고요. 나이 제한은 없어요.
일반 회사와 근무 시간이 다른가요?
하는 일에 따라 근무 시간이 달라요. 아동시설에서 근무하면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이틀 근무하고 이틀 쉬거나 일주일에 한 번 쉬기도 합니다. 하지만 복지관 같은 곳에서 근무하면 일반 회사와 똑같습니다.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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