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의 한 자락을 호령했던 거대한 왕국으로 떠났다. 자질구레한 일상을 뒤로하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기쁨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는 법. 공항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얼굴은 따스한 비를 맞고 활짝 피어난 꽃처럼 하나같이 싱그럽고 환했다.
밤새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사나운 바람이 몰아치는 날이었다. 새벽 6시 잠이 덜 깬 얼굴로 인천공항에 도착. 출국 수속을 밟고 방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안은 조용했다. 대부분 담요를 덮고 깊은 잠에 빠졌다.
5시간 50여분을 날아 방콕 돈므앙국제공항(Don Muang Airport)에 도착해 간단히 식사를 하고...(방콕 여행은 나중에 얘기하겠다.)... 방콕에서 버스로 4시간 30여 분을 달려 캄보디아 국경에 도착했다. 캄보디아는 북쪽으로 태국과 라오스, 동쪽으로 베트남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밤하늘에 자줏빛 띠가 완전히 사라지고 사방에서 화려한 불빛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손엔 바나나, 다른 한 손은 머리에 인 짐을 지탱하고 국경을 넘어가는 캄보디아 사람들이 보였다. 삼륜차와 오토바이, 자전거가 즐비했으며, 때에 쩐 얼굴로 '원 달러'를 외치며 작은 손바닥을 벌리는 아이들이 달라붙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소매치기가 극심해 소지품 주의보가 발령됐다.)
나는 캄보디아 비자를 받지 않았다. 캄보디아 출입국 경찰의 안내로 간단히 입국 수속을 밟았다. 한국인은 비자 비용 20달러만 내면 쉽게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수산시장을 연상시키는 태국 국경지역을 넘어 면세구역에 들어서자 별천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국경 양옆에서 불어오는 사나운 바람이 한차례 지나가자마자 이국적인 카지노 간판 불빛이 눈송이처럼 쏟아져 나왔고, 노상 카페테리아에서는 한국 가요가 흘러나왔다. 나는 힘든 하루를 보낸 탓인지 우선 호텔 객실에 들어가 여독을 푼 뒤 밖으로 나왔다. 국경 마을은 매우 작았다. 나는 호텔 앞 포장마차에서 맥주를 마시고 다시 호텔로 발길을 돌렸다.
비포장 도로를 지나 씨엠리업으로
이른 아침. 국경을 넘어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가벼웠다. 뜨거운 열기 때문인지 아침부터 강물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그러나 캄보디아 사람들은 숨이 턱 막히는 열기에도 바들바들 떨며 점퍼를 챙겨 입었다. 1월과 2월은 가장 일교차가 큰 계절로, 한낮의 기온은 30도 정도였다. 캄보디아의 평균기온은 27도다.
행여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 싶어 머뭇머뭇거리며 국경지역을 살펴보았다. 거리거리마다 국경을 넘어 출근하는 사람들과 장사치들로 붐볐다. 길가에는 여행객들의 짐을 나르기 위해 리어카들이 줄지어 서있었고 갖가지 음식을 파는 장이 들어서기도 했다. 국경 출입국 관리소에서는 캄보디아 국기를 게양하고 국가를 연주했다. 이때 사람들은 길을 가다 제자리에 서서 노래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캄보디아의 국기 중앙에는 앙코르 와트 사원을 상징하는 흰색 문양이, 바탕에는 가운데 붉은 줄과 위아래로 청색 줄이 있다. 적색은 정의를 뜻하고 청색은 청명한 자연환경을 뜻한다. 캄보디아는 세계 7대 빈국 중의 하나이며 화폐 단위는 리엘(Riel)이다.
아침 풍경은 어딜 가든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느긋한 생활에서도 이 시간만큼은 바쁘고 피로한다. 캄보디아 사람들도 마찬가지. 이들도 거리에 웅크리고 앉아 아침을 대충 때운 뒤 빠르게 이동했다. 단지 세상사를 모르는 아이들만이 길가에 앉아 느긋한 식사를 즐길 뿐이었다. 한마디로 열대 특유의 느긋함과 열정이 뒤섞인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씨엠리업으로 향했다. 캄보디아 국경에서 앙코르 와트가 있는 씨엠리업으로 가는 길은 비포장 도로다. 건기에는 3시간에서 4시간,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 때에는 6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차는 한국에서 수출한 버스였다. 그러나 매우 낡아 한 시간 넘게 에어컨을 틀어도 흐르는 땀을 식혀주지 못했다. 또 좌석이 좁아 키가 큰 사람은 무릎과 허리 통증이 심할 듯했다.
비포장도로 양옆에는 평야지대가 펼쳐졌고 군데군데 야자나무가 드리워져 있었다. 황톳빛을 내는 작은 수렁에서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물고기를 잡았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사람들은 버스가 일으키는 흙먼지를 피해 가던 길을 멈추고 재빠르게 수건을 둘러쓰기도 했다.
씨엠리업을 향해 두 시간 정도 달리자 과일과 음료 등을 파는 휴게소가 나타났다. 이곳에서 버스기사들은 엔진에 눌어붙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비포장 도로를 달렸다. 내가 탄 버스는 중간에 고장이 나서 새로운 버스로 옮겨 탄 뒤 다시 씨엠리업을 향해 달렸다.
동양 최대의 호수 톤레삽으로
비포장도로를 달려 씨엠리엄 도착했다. 나는 반데이스 레이 호텔에 짐을 풀고 톤레삽 호수로 향했다. 동양 최대의 면적과 거대한 습지대를 자랑하는 이 호수에는 어시장과 수상가옥들이 군데군데 들어서 있었다.
톤레삽 호수 선착장은 강물의 흐름이 멈춘 것처럼 역한 냄새가 풍겼다. 금방이라도 구토가 일어날 정도로 고약하고 습한 기분을 선사했다. 죽음의 강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자 매스꺼웠던 냄새는 가시고 청신한 바람과 비린 민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수상가옥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목욕을 하거나 고기를 낚았으며, 한낮의 더위를 피해 잠을 청했다. 대야나 작은 배를 타고 나타난 몇몇 아이들은 관광객들의 배에 접근해 '원 달러'를 달라고 애걸을 하기도 했다.
보통 구걸하는 표정은 버림받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강렬하고 순수한 연민에 빠지게 하지만, 이곳에서는 먹고 살기 어려워서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일상 중 하나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돈을 주지 않아도 아이들의 얼굴은 밝고 명랑했다.
수상가옥의 사람들도 으레 있었던 풍경처럼 집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관광객들을 보기도 했으나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처럼 평온한 인상을 준다.
배는 강 가운데에 있는 작은 휴게실에 도착했다. 나무를 엮어 만든 큰 뗏목에는 3층으로 된 목조건물이 있었고, 그 안에는 기념품 가게와 식당, 물고기와 악어를 키우는 사육장이 있었다. 사육장 사장으로 보이는 현지인이 관광객들이 오면 강에 먹이를 던졌다. 민물고기들이 허기를 채우기 위해 파닥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누런 등지느러미를 드러내면서 떼를 지어 물 위로 튀어 오르는 모습은 거칠고 사나운 열대의 야생을 잘 보여줬다. 생존을 위해서 스스로 난폭해져야 하는 동물의 세계 말이다.
날씨는 매우 화창했다. 채 10cm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탁한 강물이었지만 햇살이 넘실거리는 모습은 여느 강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톤레삽 호수에서 잡은 새우를 맛보았다. 새우는 조금 짭조름하고 구수한 맛이 났다.
배에서 내려 캄보디아의 전통춤 압살라 디너쇼를 공연하는 식당에 들렀다. 킬링필드로 불리는 대학살 당시 압살라 무희들은 모두 죽음을 당하고 단 한 명만 살아남았다. 이들이 처형을 당한 이유는 무희들이 왕족을 위해서만 공연했기 때문이다.
나는 식사를 마치고 호텔 바에 가서 맥주를 마셨다. 맥주는 호텔 매니저가 샀다. 반데이스 레이 호텔은 영국인이 캄보디아인에게 빌려 운영하는 호텔이다. 이 호텔의 매니저는 주인의 조카로서, 폴란드 어머니와 이탈리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영국인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반티아이 슬레이에서 느끼는 아름다움
'앙코르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반티아이 슬레이(여인들의 성곽). 이곳은 5세기경 승려 '바즈나바라하'가 남자의 성기를 숭배하는 파괴의 신 ‘쉬바’에게 바친 사원이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스스로 영명한 자태를 품어내고 있는 조각들이 즐비한 유적지다.
반티아이 슬레이에는 건축물 외벽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꽃잎 모양의 조각들이 빈틈없이 새겨져 있었다. 건축물 외벽에 쓰인 '사암'은 분홍색을 띤 돌로서 내구성이 강해 나무에 조각하는 것처럼 섬세한 묘사가 가능하다.
반티아이 슬레이의 동쪽 문으로 난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다. 캄보디아 전통악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옥구슬이 구르는 듯 청아한 소리를 냈다. 나는 끝내 탄성을 지르고야 말았다. '무언가를 추구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조각과 음악이 한 없이 서로 어울려 신비로움을 자아내서다.
한편으로는 복잡한 무늬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보면서 두려움도 느껴졌다. 미몽에서 막 깨어난 사람들이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창백하게 질려가는 것처럼....
사원 오른쪽 뒤편에는 한 조각의 구름이 떠다니는 작은 연못이 있었고, 사원 곳곳에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돌무더기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나는 비바람에 씻겨 한없이 작은 먼지로 변해가는 반티아이 슬레이를 바라보면서 유적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됐다. 잘 복원해서 보존하는 것도 좋지만 인위적이지 않게 그대로 놔두는 것도 보존의 방법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씨엠리업 재래시장
반티아이 슬레이 인근, 캄보디아 사람들의 소박한 삶이 넘쳐나는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초입부터 동남아 실크의 원산지답게 화사한 색과 문양의 스카프와 기품 있는 캄보디아 전통 의복이 눈길을 끌었다. 또 코끼리와 앙코르 와트, 압살라 문양이 새겨진 기념품들과 생활잡화는 내 가벼운 주머니를 털기 충분할 만큼 앙증맞고 저렴했다.
하지만 '루비' 액세서리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가격이 상당해 부담스러웠다. 캄보디아는 세계적인 루비 생산지다. 그래서 기념품 가게나 시장마다 때깔 좋고 균형이 잡힌 루비 액세서리를 비교적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수입 포목점을 지나 어시장이 나타났다. 톤레삽 호수에서 잡아 올린 것으로 보이는 물고기들이 비린내를 풍겨 코가 찡했다. 제법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큰 물고기는 대야에, 무지개 빛으로 반짝이는 비늘이 아름다운 중간 물고기는 사각 플라스틱 용기에, 손가락만 한 크기의 물고기들은 서로 뒤엉킨 채 쟁반에 담겨 있었다. 또 지푸라기 같은 것으로 집게를 묶어 놓은 민물 게들이 하얀 대야에서 꼼지락거리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장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물소로 보이는 살코기와 돼지 머리, 부위별로 분류한 고기들이 진열된 식육점들이 나타났다. 또 중앙에는 신선한 야채를 1,000리엘, 혹은 4,000리엘 단위로 묶어 놓고 파는 야채상이 줄지어 있었다.
재래시장에서 가장 흔한 상점은 과일전이었다. 형형색색의 열대과일을 팔고 있는 노점상들은 가격에 상관없이 한 개, 두 개, 혹은 손님들이 원하는 만큼 저울에 달아서 팔았다.
재래시장에서 물건 값을 흥정하는 모습은 한국과 비슷했다. 나는 한국에서 맛볼 수 없는 열대과일을 맛보았다. 하지만 양이 적다 싶어 1달러를 내면서 쓸라이(비싸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인심 좋아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보랏빛 무화과 열매 1개를 공짜로 줬다. 이 열매는 호텔 카운터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여인과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크메르 왕조의 심장, 앙코르 톰
앙코르 톰(거대한 도시)은 장엄한 스케일과 예술성 때문에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유적지다. 초기 앙코르 유적의 뿌리인 힌두교 양식에 불교문화를 결합한 독특한 구조로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에 세워졌다. 크메르 왕국은 베트남, 태국과의 잦은 전쟁, 무리한 토목공사와 세금 때문에 쇠락의 길을 걸으면서 새로운 통치이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불교를 수용했다.
나는 앙코르 톰의 초입이라고 할 수 있는 남문 앞에서 거대한 형체의 석가모니상을 보자마자 넋을 잃었다. 높이와 규모가 뿜어내는 위용에 놀란 나머지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연방 터뜨렸다. 사진으로 볼 때는 석가모니 두상이 올려져 있는 건축물이 어색했는데 실제로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치 크메르 왕조의 심장과 마주친 것처럼 발가락 끝에서부터 올라오는 야릇한 전율이 온몸에 퍼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남문을 통과하기 전에는 큰 다리를 건너야 한다. 이 다리는 중생들의 사바세계와 신의 세계를 연결해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다리 서쪽 난간에는 관음상을 닮은 선(善)신이, 동쪽 난간에는 도깨비를 닮은 악(惡)신들이 배수키(뱀인)을 껴안고 있다. (앙코르 톰의 각 문은 모두 이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다리 밑에는 해자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악어를 길렀다.
남문을 지나면 시원하게 가지를 늘어뜨린 열대 나무들의 숲으로 들어가고, 이 숲 한가운데로 난 도로를 따라 약 1,500미터를 걸으면 바이욘 사원에 도착한다. 바이욘 사원은 우주의 중앙에 있다는 메루산을 상징하며, 앙코르 건축물의 백미로 꼽힌다.
내외부 회랑으로는 크메르인들의 예술성을 느낄 수 있는 조각들이 연이어 펼쳐졌다. 창과 방패를 들고 행진하는 군인, 코끼리, 무화과나무, 야자수 왕비 행렬 등을 묘사한 조각들이다.
200미터 정도 걸어 올라가면 바푸온과 피미아나까스가 보인다. 조금 더 걸어가면 왕궁 정문에서 직선대로로 이어진 코끼리 테라스가 나타난다. 이곳은 큰 행사를 치르거나 군대를 사열했던 곳으로, 코끼리와 래퍼왕의 단상 등을 볼 수 있다.
거대한 코끼리 단상과 마주하자 복잡하고 괴이한 생각이 들어 주위를 천천히 둘러봤다. 수많은 건축물, 예술품, 자연이 다양한 형태와 빛을 내며 어지럽게 섞여 있었지만 모두 하나로 보였다. '통일성' 때문이었다. 앙코르 톰을 건설한 크메르인들의 미적 내공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기묘한 수수께끼가 되어 부메랑처럼 되돌아왔다.
나는 앙코르 유적지를 뛰고 걸으면서 사진도 찍고, 노래도 불렀다. 엊그제 서울 한복판을 걸었다는 생각조차 모두 잊은 사람처럼 가슴 맨 밑바닥까지 파고드는 앙코르의 매력에 흠뻑 젖었다.
식민지 앙코르 와트
나는 앙코트 와트(사원) 일출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에 일어났다. 거울을 보니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마음은 호기심으로 넘쳐 들떴다. 앙코르 와트 중앙탑 위로 격렬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떠오를 붉은 태양을 감상한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버스가 울창한 숲을 뚫고 앙코르 와트에 도착했다. 하늘은 일출이 시작될 조짐을 보이며 흔들렸다. 앙코르 와트 일출은 현지인에게 '흔하게 볼 수 없는 일출', '자연과 인공의 가장 위대한 조화'라고 불렸다.
나는 인간이 만든 거대한 유적지와 자연 현상의 경이로움에 도취돼 손을 모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구름이 점점 커지면서 해를 삼켜버렸다. 이날 저녁에도 프롬 바켕에서 일몰을 보고 싶었지만 애꿎은 비구름 때문에 보지 못했다. 자연의 일은 인간의 일과 다른 법. 나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호텔로 향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앙코르 와트에 돌아왔다. 갑자기 몸속의 피가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탑문에서 본당까지 걸어가는 길이 선홍빛 속내를 막 드러낸 무화과 열매처럼 싱그럽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휘어진 활처럼 유려한 자태로 곡선을 그리며 서 있는 앙코르 와트를 바라보면서 걷는 기분을 말해 무엇할까. 경험하지 않고는 느낄 수 없다. 알록달록한 깃털을 휘날리며 날아가는 작은 새들만이 내 마음을 알아챈 듯 재잘재잘 잘도 운다.
앙코르 와트 초입에서 압살라(신을 즐겁게 하는 역할을 하는 지위가 가장 낮은 힌두교 신) 중 유일하게 웃는 압살라를 관람한 뒤 초원이 펼쳐진 옆길을 빠지자 아담하지만 기품 넘치는 도서관과 연못이 나타났다. 이 연못은 앙코르 와트 5개 탑의 그림자가 비치는 곳으로 현지인이 가장 사진 찍기 좋아하는 곳이다.
앙코르 와트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넜다. 다리 양쪽에 있는 거대한 해자에서 왕코르 와트가 반사돼 흔들리며 그림 같은 풍광을 연출했다.
용맹한 모습의 사자상이 지키고 있는 십자 모양의 단상을 지나 사원에 들어갔다. 중앙의 탑문 상층부는 잘려 있었다. 탑문 옆에는 총탄 자국이 가득했다. 중앙 탑문은 앙코르 와트에 있는 보물을 가져가기 위해 태국인들이 훼손한 것이고, 벽에 난 총탄은 베트남전에서 베트콩들이 앙코르 와트를 요새로 사용하면서 난 흔적이다.
앙코르 왕국은 15세기까지 인구 100만을 넘는 세계 최대 도시였다. 그러나 왕국은 태국에 의해 멸망했고 이후 태국과 베트남의 침략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랑스의 힘을 빌렸으나, 도리어 프랑스로부터 기나긴 식민지 통치를 받았다. 이후 캄보디아는 일본, 다시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는 뼈아픈 운명을 거쳤다. 1954년 완전히 독립하기 전까지 캄보디아는 약 400년 동안 식민통치를 받았다.
앙코르 와트의 심장과 마주치다
나는 투사처럼 의기양양하게 앙코르 와트에 들어갔다. 빈틈없이, 모조리 훑어보겠다는 욕심 때문이었지만,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초조함이 한 몫했다.
앙코르 와트는 총 3개 층으로 구성됐다. 1층은 미물계, 2층은 인간계, 3층은 천상계다.
1층 본당 회랑에는 인류 최고의 예술품 중 하나로 손꼽히는 부조가 펼쳐졌다. 석판 부조는 힌두교 신화와 앙코르 왕국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새겨져 있었다. 한 장의 종이로 펼쳐놓으면 약 800미터에 이른다. 부조는 크메르인들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예술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 부분 부분마다 반질반질 광택이 나고 색이 나는 곳이 있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많이 만져서 그렇다.
1층 '미물계'는 서쪽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가면서 구경해야 한다. 이야기는 마하바라타, 라마야나, 승리의 행진, 야마의 심판, 유해교반, 비슈누의 승리, 크리슈나의 승리, 선신과 악신의 전투, 라마야나, 라마아야의 대전투 등으로 이어진다.
나는 가슴을 때리면 한이 쌓인 만큼 소리가 크게 난다는 메아리 방에 들려 한바탕 크게 웃었다. 이 메아리방은 방 왼쪽 벽면에 등을 대고 가슴을 치면 메아리가 울린다.
1층 회랑을 다 돌아본 후 2층 '인간계'로 올라갔다. 2층 중앙에는 정원이 펼쳐져 있고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곳에 십자형 회랑이 있다. 2층 외벽에는 갖가지 포즈의 압살라 부조가 벽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고, 회랑 가운데에는 산스크리트어로 된 비문이 있다.
1층과 2층 통로 구석에는 부처상이 있었다. 원래 앙코르 와트는 힌두교 사원으로, 이 불상들은 이후에 갖다 놓은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향을 올렸다. 그러나 불상 관리인에게 돌아오는 한마디는 '원 달러'였다.
3층 '천상계'는 그야말로 '신성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초록빛과 황금빛의 천사들이 내려와 긴 머리를 휘날리며 지켜보고 있는 듯했다. 동서남북으로 난 40개의 계단은 세월의 힘에 마모된 흔적들이 가득했다. 게다가 경사가 70도에 이르러 노약자나 심장이 좋지 않은 사람은 오르지 않는 게 좋다. 몇몇 관광객들은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난간을 붙잡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고, 나도 후달리는 허벅지를 진정시키면서 천천히 내려와야 했다.
크메르인들이 천상계 계단을 가파르게 만든 이유는 신을 만나러 가는 사람들에게 엎드린 채 조심스럽게 가라고 일러주기 위해서다.
나는 천상계 꼭대기에 올라서자 언젠가 꿨던 꿈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앙코르 왕국의 황제가 개운한 아침을 맞이하면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는 환상 말이다. 이런 환상은 다른 나라의 왕국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손님을 맞이하는 고대인들이 나타나 긴 여행에 지친 나를 끌어안고 입맞춤을 해주는 느낌. 결국 나는 가장 절정의 쾌락과 강렬한 감흥을 선사받고 몽롱하게 취해 버렸다. 제정신이 든 것은 뜨거운 태양이 희끄무레한 석상을 비추고, 넓은 해자의 수면이 오전 햇살을 받아 반짝이면서 눈이 부시게 할 때였다.
따 쁘롬, 자연의 서늘한 카리스마에 짓눌리다
나는 따 쁘롬에 도착하자마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폐허가 된 건물 외벽을 따라 긴 세월의 향기를 품고 자란 나무들을 보면서 '자연의 서늘한 카리스마'에 빨려 들어갔다. 따 쁘롬은 자야바르 7세가 어머니에게 봉헌하기 위해 지은 사찰이다.
따 쁘롬은 무화과, 보리수나무들이 거대한 뿌리를 내리고 건물을 삼켰다. 자연이 만들어낸 신의 정원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건물의 장식이나 예술품은 많지 않았고 규모도 작았지만, 본당 구석구석에 무너져 내린 돌과 거대한 나무로 뒤엉킨 통로를 따라 걷는 기분은 앙코르 왕국의 진정한 보물과 마주하는 듯했다.
따 쁘롬은 영화 '툼 레이더'의 촬영지로 이용됐다. 영화 촬영 당시 안젤리나 졸리가 자주 들렸던 '레드 피아노'라는 카페는 관광명소가 됐다.
나는 따 쁘롬을 둘러보면서 캄보디아에 며칠 더 머무르고 싶은 충동에 빠졌다. 급기야 이날 밤 나는 아주 호되게 잠을 설치고 말았다.
바콩, 마음속에 깃든 안정과 평온
로루오스 유적 중 하나인 바콩으로 향했다. 로루오스 지역은 70여 년간 앙코르 왕국의 수도였다. 호수가 가까워 물고기가 많고 외적을 방어하기에 용이했다.
바콩은 오랜 세월을 버텨온 건물들이 수풀과 강을 따라 이어졌다. 건물들은 서로 어루만지고 어울리면서 하나의 아름다움을 창조했다. 이곳은 평화롭고 풍성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앙코르 왕국에서 가장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으며, 사사로운 쾌락마저도 끼어들 수 없는 고요를 선사했다.
나는 정적인 색채로 물든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처럼 바콩의 한적한 길을 걸으면서 황홀한 시간을 보냈다. 바쁜 일상을 내달리는 삶 속에서도 한 템포 여유를 갖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바콩 초입에 위치한 캄보디아 초등학교에 들렸다. 학교는 출입구 같은 것도 없이 완전히 개방돼 있었고, 교실은 2개였다. 내가 들렸을 때 하급반 아이들은 수업을 받았고 상급반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었다.
앙코르 와트 이모저모
평양랭면 = 캄보디아에서 저녁을 먹기 위해 '평양랭면' 집에 들렀다. 카운터를 보고 있는 한 여성은 "국제 태권도 연맹 동남아 지부에서 운영하는 회사"라고 소개했다. 평양랭면은 씨엠리업 서울 게스트하우스 건너편에 있다. 식당 직원들은 3년마다 교대로 근무하며 춤과 노래, 음식 솜씨가 훌륭한 여성들로 구성돼 있다. 음식값은 좀 비싸다.
안마체험기 = 안마시술소 '트웬잔'에 가서 마사지를 받았다. 안마를 받으면 만사가 귀찮아진다. 고독하거나 사색에 빠져서 그런 게 아니다. 철철 넘치는 온천에 몸을 담그고 명상에 잠겨봤던 사람은 그 기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이다. 타인의 손이 자신의 몸에 닿는 느낌은 무척 예민한 것이지만, 육신도 의식도 모두 안마사에 맡기고 철저한 휴식에 들어가는 기분은 몸소 체험해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다. 트웬잔은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다. 씨엠리업에서 툭툭을 타고 '트웬잔'을 얘기하면 알아서 데려다준다.
캄보디아 맥주 앙코르 = 캄보디아 맥주 이름은 앙코르다.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맛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소주파다. 그러나 앙코르 맥주는 달랐다. 정말 맛이 있다. 나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술집 '그린망고'에 갔다. 캄보디아인이 경영하는 술집과 달리 술값이 매우 비싸다. 보통 다른 가게에서 파는 앙코르 맥주보다 2배 이상 받는다.
앙코르 입장료 = 앙코르를 관광하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내야 한다. 입장료는 매우 비싼 편이지만, 모두 관리 비용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아까워할 필요는 없다. 신분증처럼 사진을 부착해야 하며, 사진이 없으면 현지에서 찍으면 된다. 나도 사진이 없어서 현지 조달했다.
음식 = 캄보디아 음식은 매우 맛있는 편이다. 매운맛도 한국인의 입맛에 제격이어서 거북스럽지 않다. 그러나 캄보디아 음식에는 민물생선을 발효해서 만든 쁘라혹의 향이 독특해 이맛살을 찌푸리는 사람들이 몇몇 봤지만 맛은 괜찮다. (참고로 나는 매우 비위가 좋은 편이다.) 고기는 좀 질긴 편이었고, 쌀국수 꾸이띠유와 볶음밥 바이차, 시큼하고 달달한 전통 스프는 언제 어디서든지 빠지지 않는 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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