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여행과 사색

금강산 - 등산과 해수욕이 어우러진 여름 피서지

이동권 2022. 8. 8. 16:28

멀리서 바라본 금강산 끝자락


정말 '그리운 금강산'이다. 언제쯤 다시 갈 수 있을까? 한반도 정세와 정치 여건이 나아지길 기다릴 수밖에 없으니 안타깝다. 내가 금강산을 다녀온 지 20년이 넘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금강산 관광길이 열린 틈에 서둘러 다녀왔다. 언제 또 막힐지 모르니 말이다.

뜨거운 여름이 되면 금강산에는 젖빛 솜털 잎에서 향기가 나는 '쑥'이 담홍자색 꽃을 피우고, 납작한 달걀꼴 잎의 '명아주'가 이삭 모양의 황록색 꽃을 피운다. 여름 금강산은 봉래산(蓬萊山)이라고 불린다. 봉은 쑥 봉(蓬) 자요, 래는 명아주 래(萊) 자를 쓰며, 등산로마다 이어지는 절벽과 폭포와 담, 소를 뒤덮는 봉래의 모습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여름 금강을 찾는다.

여름 금강산은 짙은 안개와 바람, 비가 갑작스럽게 몰아치는 날이 많아 변화무쌍한 자태를 뽐낸다. 각각의 봉우리마다 풍화, 침식된 화강암이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싶다. 

한민족의 기백과 청초한 선비정신을 품은 듯 고고하고 정결하게 떨어지는 폭포수는 또 어떠한가. 나는 구룡폭포를 마주하자마자 대자연의 신비로운 기운에 빠져들었다. 풍진 세상을 굽어보는 듯이 절경의 맥을 잇는 삼일포도 여름 금강산의 장관 중 하나였고, 지친 일상의 짐을 덜어내는 관광명소로서도 충분했다.

여름 금강산 여행의 별미는 금강산해수욕장(고성해수욕장)이다. 여름 금강산의 절경과 함께 해수욕도 즐길 수 있어 여름 피서지로는 그만이다. 금강산 관광을 준비한 현대아산은 여름휴가철을 맞아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산과 바다의 아름다움 즐기면서 야영할 수 있는 해변 마을을 조성했다. 금강산해수욕장은 동해의 청정자연 해변으로 1Km의 깨끗한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양질의 고운 모래와 수심이 1.2m로 완만해 해수욕과 다양한 수상레포츠를 즐기기에 매우 적합하다.

 

금강산의 비경


구룡연으로 향했다. (2000년 당시에는 외금강과 삼일포 코스만 관광이 가능했다. 내금강의 대부분은 북측이 관광을 승인하지 않아 가볼 수는 없지만, 비로봉에 올라 먼발치로 보면 내금강의 면모는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차를 타고 오르는 관광로(해발고도 300~400m)를 따라 붉은 옷을 입고 이리저리 총상을 입은 적송들이 즐비하다. 고단한 한민족의 역사 앞에 숙연한 마음이 든다.

소나무, 참나무 혼성림 지역을 벗어나면 비로봉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이어졌다. 이곳에서는 세계적으로 분포 지역이 하나뿐인 금강국수나무, 금강초롱꽃, 크고 웅장한 활엽수림 지역을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각종 희귀한 자연의 생명들이 자라고 있어 여름 금강산의 스케일과 고귀함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등산로는 한국전쟁 때 불타오른 신계사 절터를 돌아 비단결처럼 수려하게 흐르고 떨어지는 옥류동, 비봉폭포, 구룡폭포로 이어진다. 이곳은 설화 속에 등장하는 선녀와 신선이 실제로 나타날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외금강 진수를 느끼게 한다.

 

구룡대에 올라서면 갖은 형형색색의 계곡과 소, 봉우리들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여름 금강산의 비경을 연출한다. 구룡폭포를 보고 있으니 지친 몸과 마음이 시원하게 치유되는 것 같았다. 나,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단하게 살아왔을까? 금강산은 필시 사랑을 품은 산 같다. 사랑이란 영원불변한 진리를 품고 있는 것, 그렇게 구룡폭포는 모방할 수 없는 풍광으로 삶의 되돌아보는 기회를 선사했다. 

1998년 9월부터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을 때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실향민과 학자, 격동의 한국전쟁의 상흔을 겪은 어르신들이 관광객의 주류를 이루었지만, 페리호와 해금강호텔을 이용하는 상품이 등장하면서 점점 비용이 내려 기업연수, 가족여행지로 각광받았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육로관광의 길이 열리고 해수욕도 즐길 수 있어, 금강산은 여름휴가철에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여행지가 됐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금은 아니다. 북한은 금강산에 있는 한국 측 시설인 해금강호텔과 아난티골프장 등을 일방적으로 철거했다. 당분간 남북 관계도 재개되기 힘들고, 금강산 관광의 미래도 극히 불투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금강 등산로는 수려한 계곡과 소, 담으로 이어졌다. 하늘의 장대함을 그대로 옮겨둔 듯한 거울 형상의 명경대 앞에서 바라보는 벽담의 그림자와 첩첩 암벽 위에 솟은 망군대 뒤에서 검푸르게 타오르는 하늘은 저절로 탄성이 새어 나오게 만드는 여름 금강의 절경이다. 층층이 흘러내리는 약 2km의 만폭동 계곡, 신불암, 정양사 등의 명승 구역도 한민족의 혼을 달래는 듯 아릿한 자태로 자리 잡고 있다.

금강의 동쪽에 위치한 외금강과 외금강의 남쪽 계곡 지역인 신금강은 내금강의 여성스러운 아름다움과 달리, 남성적인 미가 넘치는 곳이다. 비로봉(1,638m), 옥녀봉(1,423m), 오봉산(1,264m), 월출봉(1,580m), 일출봉(1,552m), 차일봉(1,529m) 등 높푸른 자연경관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평양 모란봉 교예단


만물상 등산로는 온정리에서 적송이 우거진 거대한 숲지대를 지나, 계곡을 감싸고 올라가는 코스다. 만물상은 깎아지는 절벽과 신비스러운 형상들, 안개와 비에 젖은 채로 솟아올랐다. (깊은 계곡 때문에 바람의 운신을 막아 생기는 온도 차이로 안개가 끊이질 않는다.) 관음연봉과 관음폭포, 곰바위, 육화암 등을 지나 수려하고 웅장한 장군바위, 촛대바위들이 즐비한 만상계를 오르면 기상천외한 협곡의 향연이 펼쳐진다. 등산로는 길 자체가 경사가 깊고 위험해서 조심해야 한다. 이곳에서는 삼선암, 절부암, 천선대, 망양대 등의 절경도 만날 수 있다.

해금강은 동쪽 해안에 자리 잡은 화강암 지대로 그 모습이 금강산과 견줄 만큼 장대하면서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이곳은 북쪽 금란굴, 총석정에서 삼일포를 끼고 남쪽 영랑호에 달하는 30km의 구간으로, 층층이 해안가를 돌면서 석호, 주상절리, 반석, 암초 등을 볼 수 있다. 기괴하게 솟아오른 만물상의 절벽이 그대로 옮겨진 듯한 해만물상과 삼일포, 입석리 해안, 영랑호 등도 장관이다. 

금강산 끝자락이 전체 해구를 둘러싸고 있는 장전항은 통일의 염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곳이다. 이곳은 북측의 군사 요충지로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상념을 품은 듯 길게 늘어선 내륙의 끝이 항아리 형상이어서 자연재해를 막아주기 충분하고, 비단 휘장을 두른 듯 푸르디푸른 수면 위로는 바닷고기들이 박차 오를 정도로 환경생태가 잘 보전되어 있다.

금강산은 소동파가 극찬한 낡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거대한 사랑을 품은, 시정이 저절로 불타오르는 고귀한 예술작품이었다. 그토록 무념무욕의 진리를 품고 포효하는 산이 있을까. 휴양시설과 유락시설로, 돈을 벌기 위해 개발된 인공적인 산과는 견줄 수 없는 순수 자연, 그 자체였다.

360도를 빙 둘러 금강의 한가운데 은밀하게 자리 잡고 있는 온정리는 금강산의 치맛자락이다. 끝이 없어 보이는 일만 이천봉의 푸른빛 감도는 세계, 마치 전설처럼 침묵과 안식의 빛을 품은 금강의 내면에 들어선 듯하다.

온정리에는 관광객들의 편안한 휴식과 여가를 위해 만든 휴게소, 온정각이 있다. 식사를 하거나 북한의 특산물과 토산품, 기념품을 살 때 이곳을 이용하면 된다. 온정리에서 산 위에 솟은 매바위나 닭알바위를 관찰하는 것도 색다른 감흥을 준다. 특히, 평양 모란봉 교예단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극장과 금강산 온천은 금강산 여행의 맛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