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토포는 컬트 영화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1970년 작품이다. 이 영화는 기괴한 영상과 스토리 때문에 컬트 마니아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은 그의 영화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영화로 알려져 있으며, 영국 뮤지션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이 팬심을 보여주기 위해 세계 배급 판권을 모두 사버렸다는 이야기는 전 세계에서 화제가 됐다.
대부분의 컬트 영화가 그렇듯이 엘 토포를 보면서 역시 스토리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몇 번을 되돌려 보고 나서야 조금씩 감독의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 아니, 느낌이 아니라 짐작이 맞을 것 같다. 자막도 없는 구닥다리 테이프를 돌려보는 기분을 상상해 보면 잘 알 것이다.(이때만 해도 좋은 영화들이 하루빨리 검열에 풀려 개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2007년 개봉했다.)
신묘한 분위기에 이끌린 채 숨도 쉴 수 없이 거칠게 몰아치는 영상, 엘 토포가 떠나는 행로를 따라, 고통스럽게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보길 수십 번. 한 줄기 스치는 바람과 같이 부드러운 것이 내 가슴을 흔들고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나리오 작업과 주연배우를 겸한 조도로프스키 감독이 무엇을 얘기하는지 말이다.
조도로프스키는 왜 직접 주인공이 됐을까? 그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관객들에게 분명히 전달하고픈 열망 때문일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영화에서도 김기덕 감독도 늘어난 뱃살을 드러내 보이면서까지 주인공으로 직접 출연했다. 그도 또한 조도로프스키 감독처럼 자신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미지가 제대로 보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은 조도로프스키 작품과 매우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런 면에서 두 감독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도구로서 영화 작업에 매달리고 있는지 모른다.)
세상에는 정신적인 가치에 삶의 의미를 두고 희생과 고집으로 그것을 구함으로써 찬양받는 사람들이 있다. 명상 어린 눈빛으로 삶을 관조하고, 뭔가 남달라 보이는 언행으로 범부들의 정신적인 스승이 되고 민중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철학자, 자연주의자, 성인, 정치인, 종교인, 문학가 등이다.
그러나 감독은 이들을 조금 다른 각도로 지켜본다. 실제 자기 자신을 대단한 인간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사실 시대의 영웅이나 스승이 아니라 맛있는 식사를 좋아하고 유희를 즐기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그들에게는 권태로운 일상이나 유혹을 잔 견디는 인내심 혹은 정열적인 것에 푹 빠지지 않는 성품을 지닌 인간일 뿐이라고 정의하며 그들을 하나씩 발가벗긴다.
그러면서 감독은 말한다. 진정한 스승은 어디에 있느냐고, 성인이나 지도자인 척하는 썩어빠진 권력자들을 모두 몰아내 버리자고 말이다.
감독은 자신의 언행을 통해 위대한 자라 칭송받길 원하는 자는 바보이며, 그것을 추앙하는 사람 또한 바보라고 말한다. 스승은 자신이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니며 존경 또한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음을 꼬집는 것이다. 또한 어지러운 현세 영웅들의 속성을 돋보기를 들고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판단하자는 의미이며, 종교라는 허울을 둘러쓰고 지도자 행세를 하는 간악한 자들을 벌하자는 뜻도 포함한다.
엘 토포는 뜨거운 사막에서 홀연히 나타난다. 그는 사람들의 흠모를 받는 정신적인 지도자이자 절대권자들을 만나서 그들의 사랑과 정신적 가치들을 산산이 깨고 죽인다. 생명을 가진 존재, 그 본연의 정서에 충실한 엘 토포가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결한다. 그러한 자신 또한 불쌍한 인간임을 스스로 느끼면서 고독과 정신적인 번뇌를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 장면은 절대 권력의 유한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엘 토포는 다시 승려이자 동양철학자로 부활하여 동굴에 갇힌 사람들을 구원하는 전사가 된다. 동굴에 갇힌 사람도 상징적인 의미인데, 관념과 사상, 두려운 자의 힘과 정신, 절대 권력에 맞서지 못하는 민중, 그 틀에 갇혀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뜻한다. 그는 동굴에 갇힌 사람들을 구원하지만, 그들은 모두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이라는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려는 의도다. 상처받고 치유하고, 다시 괴로움에 빠져야 하는 모든 삶을 거부하고 생을 마감한다.
그들은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 부분에는 많은 평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한 평가는 오직 내 생각임을 덧붙인다.
동굴에 갇힌 엘 토포는 어쩌면 메시아와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왜 함께 죽어야만 했을까? 예수가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 제물이 되었으나 이 세상의 추악함은 날로 더해가고 있다. 엘 토포는 이런 세상에 고한다. 이 사람들과 함께 제물이 됨으로써 세상의 더러운 죄를 사하겠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엘 토포는 민중이 이 세상의 주인이며, 지도자들보다 훨씬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또한 엘 토포는 민중들의 머리 위에 군림하면서 부와 명예를 챙기는 지도자들을 꾸짖는다. 너희도 인간이며 한낱 자신을 위해서 사는 이기적인 동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기도하기 위해 수도원이나 기도원에 들어간다. 삶 중에서 어느 한순간 오직 수도하는 것에 빠져있다 보면, 목적에 치우친 나머지 어떤 진리나 진실을 발견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자기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거나 순교자 행세를 하면서도 세상의 불의와 아픔에는 외면하는 이중적인 처세술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엘 토포는 수도원이나 기도원 같은 곳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곳 또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며 작은 세상이다. 별 다른 의미가 있는 곳이 아니다. 오직 자신의 음성에 충실하고 정신에 맡겨야 하지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그는 마음의 문을 열고 자유롭게 세상을 바라보고 불의와 싸우는 것이 진정한 가치라고 외친다.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는 감독이자 배우이며 소설가이자 음악가이다. 엘 토포의 모든 곡은 그가 작곡했으며 유명한 색소폰 연주가 마틴 피에르가 음악의 격을 한 차원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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