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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룩크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 진실한 사랑의 서사시, 울리 에델 감독 1989년작

이동권 2022. 8. 6. 17:45

브룩크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Last Exit to Brooklyn) 울리 에델(Ulrich Edel) ;1989년작


비상구, 우리 인생의 비상구는 무엇일까? 욕망과 상처로 얼룩진 인간에게 마지막 비상구는 어떤 의미일까? 영화 '브룩크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를 보면 그 해답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우리가 살기 위해 빠져나가야 할 문이 어디인지, 아니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이며 우리의 삶을 치유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모든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찾아오는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관계는 우리가 가진 대부분의 고민을 만들고 괴로움을 양산해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경우에는 자괴심까지 들게 한다. 되레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아픔을 겪는다. 

삶이 이렇게 모순 덩어리라면 우리는 어떻게 오늘을 헤쳐나가는 힘을 얻어야 할까? 브룩크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는 이 모순의 정체를 쉽고 간결하게 말해준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제시하는 방법 즉,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을 극복해내는 방법은 상당히 동양적인 사유의 흐름이어서 더욱 쉽게 가슴을 울린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소유와 욕망의 거미줄이 가득하다. 사회적 압박감도, 재물도, 외로움도, 자유와 사랑까지도 소유와 자본 중심으로 점철되어 있다. 또한, 이기적인 자아성이 만든 슬픈 일상의 상처가 가득하다. 자신의 생각과 잣대로 삶의 테두리를 그어 놓고, 선을 넘어서거나 한계에 봉착하면 서로 시기하고 돌아서버리는 인간 본성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주체적으로 살 수 없는 우리 물질문명 사회의 비극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비상구, 비상구는 상처에 이르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삶과 사랑의 의미를 알게 만드는 통로다. 그러기 전에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이렇게 어리석고 배반적인 존재 위에서 관계를 맺는 것이 인간임을 말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순간 스스로 추스르고 치유하려는 본능적인 소통, 마지막 선을 넘기 전에 자신을 온전하게 지키고자 하는 피의 몸부림. 위기의 순간을 넘어서기 위해 미리 만들어 놓은 탈출로, 삶과 사랑의 상처로 얼룩진 현실의 이면에 배반의 향기를 품고 있는 인간 본능의 향연, 이 모욕적인 모습이 한껏 깃들어 있는 비상구.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을 지키기 위해 냉정하게 돌아서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비상구가 있다. 그렇게 인간에게는 누구나 비상구가 있고 사랑도, 투쟁도, 뭔가를 이뤄내는 모든 일에도 인간이 만들어놓은 비상구가 있다.

만약, 이 영화가 여기에서 머물고 말았다면 나는 이 영화평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간 군상이 쫓는 목표와 사랑의 본질을 자세히 살며 보면 비상구는 절대로 없다. 사랑도, 관계도 모든 것이 불투명할 뿐이다. 다시 말하면 비상구 없는 삶이 오히려 옳을 듯싶다. 더 이상 추락하거나 나갈 곳이 없는 상태 말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여러 인간상, 또 그들만의 이해관계와 특별한 사랑의 언어는 '비상구'라는 특별한 상징을 통해 형상화되고 있다.

삶의 모든 의미는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삶은 바로 타인과의 관계와 역사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브룩크린에는 서로 엿가락처럼 휜 수많은 상처와 눈물이 얼룩져 있는 전유물들이 가득하다. 또한, 비상구는 있지만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비상구는 아니다. 예를 들면 여주인공 클라라에게 비상구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눈물을 흘리며 온몸으로 받아내는 수많은 남자들의 욕정, 떠나버린 사랑에 바치는 고통이었다. 또 클라라를 사랑하는 스푹의 눈물은 어떠한가.

이 영화의 OST, 마크 노플러 Love Adia도 너무 아름답다. 바이올린 음색이 마음속에 타들어 오면 마치 내가 영화의 모퉁이에 서있는 듯 아찔하다. 인생과 사랑이라는 원초적인 문제의 해답을 대단히 확연하고 은근하게 조여 온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브룩크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를 꼽는다. 시간이 되면 꼭 보시길 바란다.

 

브룩크린 거리를 걷는 트랄라

 

1950년대 미국의 경제성장의 이면을 보여주는 듯 암울함이 흐르는 브룩크린의 한복판, 사측과 노조의 대립이 극에 다른 공업도시의 어수선함, 술과 여자와 범죄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젊은이들의 광기, 특별한 사랑을 꿈꾸며 슬피 우는 동성애자들의 굳은 얼굴, 가장의 권위만을 내세우는 시끄러운 가정, 거리에서 몸을 파는 창녀의 창백한 가슴,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군인들, 또 그들을 등쳐 먹는 창녀와 불량배들… 모든 것이 불안해 보이는 삶이다.

한국전쟁 참전 군인들을 유혹해서 술을 얻어 마시고 몸을 파는 트랄라, 그녀는 자신을 농락하며 이용하는 동네 불량배들에 신물을 느끼고 멋진 남자를 만나기 위해 맨해튼으로 간다. 그것은 그녀에게 비상구였다. 그러나 트랄라는 단 3일이었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군인을 만나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된다.

전쟁터로 그를 떠나보내고 그녀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은 듯이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그리고 그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술집에서 옷을 벗고 춤을 추며 술집 남자들의 품에 안겨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을 허문다.

한편, 아내와 아이가 있는 노조 선전부장 해리는 동네 불량배들과 함께 게이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찾아가 하룻밤을 보내게 되면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느낀다. 특별한 사랑을 찾아 방황한 해리, 그는 게이 레지나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공금을 횡령해서 술을 사들고 방문한다. 그의 사랑을 돈으로 생각하는 레지나, 돈이 떨어지자 해리의 비상구였던 레지나는 그를 냉정하게 버린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공금횡령이 발각돼 직장에서도 쫓겨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해리는 동네 아이를 욕보이다가 실컷 두들겨 맞고 절규한다.

가부장적인 죠, 혼전 성관계로 임신한 그의 딸 다나와 그녀의 남자 친구 토미, 창녀 트랄라를 사랑하는 스푹… 등이 뒤엉키며 브룩크린의 하루하루를 만들어간다.

트랄라에게 추파를 던지는 동네 청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