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는 전위적인 영상 때문에 세계적으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감독 피터 그러너웨이는 1989년, 이 영화로 처음 미국에 진출하여 "NC-17"이라는 새로운 예술영화 등급을 만들어냈고,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나는 자칫 영화의 셋트나 구성 등이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데 지루함을 줄 수 있겠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30여분이 흐르자 그런 걱정은 사라지면서 이 영화만이 가진 독특한 영상미학 속으로 빠져들었다.
요리사와 주방을 울리는 성스러운 음악, 권력을 가진 자와 폭력, 그리고 그의 아내와 지적인 남자의 사랑, 또 시종일관 밤을 연출하는 어둡고 침울한 배경. 성과 음식과 권력과 인간 욕망의 함수관계를 조명해내는 연출 기법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잔혹한 폭력과 핏빛 색채, 노골적인 정사, 충격적인 라스트 신때문에 국내에 비디오로 출시될 때, 20여 분이 삭제돼 영화를 이해하는데 조금은 서운함이 남았지만 좋은 영화를 보고, 또 여러분께 소개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
요일별로 전개되는 이 영화는 종교적인 의식처럼 신성하고 경건하게 이야기의 결말을 암시해준다.
열흘 밤동안, 독재자(도둑)의 원초적인 본능을 충족시키는 주방과 음식의 세계(요리사), 권력을 가진 자의 폭압과 독재를 연출하는 식당 안 풍경 (도둑), 도둑의 여자와 그녀의 불타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정당화시키는 깨끗하고 눈부신 화장실 (그의 아내) 그리고 체제 전복을 향한 의지의 공간인 도서관을 정복해버린 독재자에 희생당한 지식인 (그녀의 정부)를 통해 세상을 음울하고 냉소적으로 그린다.
썩어가는 음식들과 잘린 육고기들이 늘어선 냉동 창고에서의 사랑은 권력의 본질과 사랑의 의미를 느께게 하며, 요리사와 아내를 통해 독재자가 피억업자들의 피와 살을 먹고살며 자신의 욕망을 위해 세상을 억압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 독재자의 마지막 모습은 피억자들의 용기와 의지, 삶의 자세를 떠올리게 한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식욕, 성욕, 폭력을 통해 권력과 쾌락의 속설을 잔혹하게 일러준다. 그리고 피와 땀이 없이는 삶을 바꿀 수 없다고 충고한다.
지식이라는 것은 권력을 향한 의지일 뿐이다. 민중을 억압하는 부조리와 부정을 끊는 것은 바로 우리 민중이다. 절대로 지식이 아니다. 지식인들은 인간 본연의 쾌락을 위해 지식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찮게만 보이는 우리 이웃들의 삶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하겠다.
줄거리는 이렇다.
La Hollandaius라는 식당의 주인, 암흑가의 지배자, 도둑으로 묘사되는 알버트는 난폭하고 정의롭지 못한 인물이다. 그는 첫 장면에 식당 앞에서 동내 사람을 발가벗기고 고통을 준다.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 고집이 세고 정이 많은 리차드는 알버트를 위해 칼을 갈고, 알버트는 폭력과 배설의 향연을 펼친다. 그때, 식당 주방에선 아름다운 목소리의 소년이 가톨릭 성가와 같은 노래 "신이여! 회개하게 하소서"를 부르며 어둠과 침묵의 지배를 성스러움으로 바꿔보고자 한다. 그러나 알버트는 소년을 폭행하고 진실과 선의 세계를 말살한다.
알버트의 아내 조지나는 남편의 폭압과 무식, 욕망으로부터 탈출하려고 하지만 음식이 주는 쾌락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러나 식당에 나타난 말쑥한 신사, 마이클을 만나면서 서로의 욕망을 확인하게 되고 사랑을 나눈다. 다른 세계의 권력을 가진 지식인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밀도있게 다루려는 의도이다. 마이클은 자신의 권력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다.
마이클과 조지나는 요리사의 도움으로 여러 곳을 다니면서 사랑을 나눈다. 그 욕정의 배출은 모두 화장실에서 이뤄진다. 아내의 부정도 화장실에서 발각이 된다.
두 사람은 알버트를 피해 도망다니게 되고 요리사의 도움으로 식당을 탈출해서 고서가 진열된 도서관에 몸을 숨긴다. 그러나 이를 눈치챈 알버트는 부하들을 데리고 마이클을 붙잡아 처참히 죽인다. 조지나는 찢긴 종이들이 입안에 가득한 마이클의 시신을 보고 복수를 결심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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