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민정연 꽃다지 대표 - 흩어지면 보잘 것 없지만 뭉치면 아름다운 꽃

이동권 2022. 8. 5. 14:58

꽃다지 공연모습 ⓒ꽃다지


동트는 새벽 밝아오면 붉은 태양 솟아온다
피맺힌 가슴 분노가 되어 거대한 파도가 되었다

단결투쟁가. 꽃다지 1집 <민들레처럼>에 수록된 노래다. 투쟁 현장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나면 이마에 맺힌 땀과 체류탄으로 뒤범벅된 어깨를 추스를 수 있었다. 투쟁의 선봉에 서 있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따뜻한 손길로 동지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마음을 다지기도 했다. 나는 죽는 날까지 그날의 감동을 가슴속에 간직할 것이며 우렁찬 목소리로 쏟아내던 꽃다지의 음성을 기억해 낼 것이다. 지금 어딘가에서도 '단결투쟁가'의 가락에 맞춰 노동자들의 팔뚝 질이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을 것이다.

 

꽃다지는 1988년 구로 지역에서 노동가요를 창작 보급해온 노동자노래단과 1989년 대학 노래패 출신들이 조직한 예울림이 통합해 1992년 창립했다.  꽃다지는 1집 앨범을 발표할 때 과거에 불렀던 노래를 모아 실었다.

꽃다지 1집에서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네'였다. 힘들 때마다 가슴으로 불렀던 노래다.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네
내게 투쟁의 이 길로 가라하지 않았네
그러나 한 걸음 또 한 걸음 어느새 적들의 목전에
눈물 고개 넘어 노동자의 길 걸어 한 걸음 씩 딛고 왔을 뿐
누가 나에게 이 길을 일러 주지 않았네
사슬 끊고 흘러넘칠 노동 해방 이 길을

 

 

꽃다지 -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네

 

노래 '꽃다지'도 무척 좋아했다. 민정연 대표에게 노래 소개를 부탁했다.

"지금은 여성노동자라고 하지만, 그때는 공순이라고 했죠. 꽃다지는 생산직에서 일하는 여공들의 노동현실과 그들의 슬픔이 녹아내린 노래입니다. 남녀를 구분하는 것이 우습지만, 보통 남성의 시각에서 만들어지는 노동가요가 많은데, 꽃다지는 그렇지 않죠."

그리워도 뒤돌아 보지 말자 작업장 언덕길에 핀 꽃다지
나 오늘 밤 캄캄한 창살 아래 몸 뒤척일 힘조차 없어라
진정 그리움이 무언지 사랑이 무언지 알 수 없어도
퀭한 눈 올려다본 흐린 천장에 흔들려 다시 피는 언덕길 꽃다지

눈감아도 보이는 수많은 얼굴 작업장 언덕길에 핀 꽃다지
나 오늘 밤 동지의 그 모습이 가슴에 사무쳐 떠오르네
진정 그리움이 무언지 사랑이 무언지 알 것만 같아
퀭한 눈 올려다본 흐린 천장에 흔들려 다시 피는 언덕길 꽃다지

 

꽃다지 - 꽃다지

 

꽃다지 사무실에서 민정연 대표를 만났다. 85학번, 원숙함보다 순수한 여동생의 이미지가 느껴졌다. 문화운동의 선봉에서 민중의 가슴을 위로하며 삶의 지평을 다졌기 때문일까? (17년간 대표를 맡았던 민정연은 현재 기획자로 꽃다지와 함께하고 있으며, 대표는 정윤경 음악감독이 겸직하고 있다.)


"꽃다지는 봄에서 여름까지 피는 들꽃입니다. 노란 꽃잎을 가진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꽃이죠. 하지만 함께 모여 들판을 가득 채우면 너무나도 아름다운 꽃이 됩니다. 꽃다지는 노동자들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개개인 혼자서는 힘이 없지만, 함께 모여 있으면 자본가와 당당하게 맞서 싸울 수 있지요."

민정연 대표는 "꽃다지는 동지애의 표상과 같은 말"이라고 정리해주었다. 동지애는 곧 노동자들이 가져야 할 품성이며 작은 힘들이 모인 큰 희망이라 할 수 있다.

들꽃은 언제나 강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서로 부대끼며 광활한 들판을 물들일 때는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세상의 풍파에 끔찍하게 베어져 시린 상처를 안고 살아가더라도, 몸을 지탱하는 튼튼한 뿌리로부터 삶을 다스리고 투쟁하는 모습은 귀감이 될만하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무궁한 뿌리로부터 자신을 잃지 않고, 하나를 위해 인고의 성정을 불태울 때에는 경외심마저 든다. 마치, 운명을 극복해가는 위대한 음악가나 철학자를 닮았다. 들꽃은 진한 향기를 발산하는 양란이나 사람들의 마음을 한순간에 사로잡는 장미의 화려함과는 견줄 수 없는 강인한 생명력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우리는 들꽃의 삶을 배울 필요가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문화에 대한 지출부터 줄이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은 민중가요 수용자의 감소로 이어지고, 창작자의 활동마저 위축시키죠. 열심히 활동하는 민중가수들이 많습니다. 이들이 대중매체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사람들에게 민중가요를 한다고 말하면 '세상이 변했는데 아직도 운동하느냐'며 핀잔을 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운동권이라는 시각 때문에 편견을 갖기도 합니다."

민정연 대표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운동의 변화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운동권들이 정체성을 고민하다 떠났다고 했다. 본질은 변한 것이 없는데, 사람들이 살만 해졌다고 그만뒀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 대표는 누군가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 세상의 자양분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성찰했다.

"수용자들과 관계가 힘들어지거나 그들의 관심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일상에 매몰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관심에서 멀어지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는 민중가요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는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 가야 하는 중대한 임무가 민중가요에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일부 관심 없는 사람들이 떠나고 분위기는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민중가요가 주는 힘은 있습니다. 가끔, '이 집회에 왜 갔을까'하고 자문했을 때도 있습니다. 큰 집회의 경우 가끔 집회가 관성적으로 진행된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단결투쟁가를 부르면서도 예전보다 팔뚝 질이나 노동자들의 눈빛에서 느껴졌던 힘이 줄었음을 발견할 수 있죠. 그렇다고 상심할 수도 없고 해서 더욱 분기 충전하여 노래를 열심히 부르고 내려옵니다."

반면 민 대표는 장기투쟁사업장이나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등의 열악한 사업장에 가서 힘들게 투쟁하는 것을 보면 대규모 정규직 집회 때보다 구구절절하게 느껴지는 노동자들의 눈빛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노랫말을 자기의 삶으로 받아들이면서 투쟁의 현장을 함께 만들어가는 모습이 더욱 열정적이라는 것이다.

"운동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서로 마음을 열고 나누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마음속에 깃든 아름다운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아끼고 노력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물질과 명예의 충족, 또 이것이 포기하게 하는 평안이라는 과제로부터 먼저 마음속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민정연 대표는 연습할 때 만날 부르고, 만날 듣는 노래여서 지겹기도 하지만 현장에 서면 자신도 모르게 울컥할 때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2003년 노동자대회였습니다. 배달호 열사를 추모하는 신곡 '호각'을 불렀는데,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죠. '호각'은 호각을 불면서 동료에게 현장에 나와 투쟁하자고 외쳤던 배달호 열사의 뜻을 기리는 곡입니다. 보통 큰 판에서는 규모가 있는 노래를 하기 마련인데,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신곡이기도 했고 음향상태도 좋지 않아서 위험을 감수하고 불렀습니다."

민 대표는 꽃다지 노래여서가 아니라, 가슴속에 치밀어 오르는 감동을 주체할 수 없어 가수들도 무대에서 울부짖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때 불렀던 '반격'과 '호각'은 입으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였음이 틀림없다.

또한 그는 노동문화 현장에서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공감대가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구로에 있던 아남전자가 인천으로 이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습니다. 사장이 노동자들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회사 이전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기 때문입니다. 회사 이전은 노동자들의 생활터전을 바꾸는 일이고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가 연이어서 벌어지기 때문에 '단순하게 이사를 간다'라는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막상 현장에 가보니, 경찰들이 출입문을 원천 봉쇄하고 있더군요. 꽃다지는 노동자들과 굵은 철문을 사이에 두고 반주 없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확성기 하나를 손에 쥐고 울분을 쏟아 냈죠. 어찌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부르는 노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슴 떨림입니다. 문화는 삶입니다. 노동가요를 보고 도구적으로 사용한다고 비난하는데 어느 노래든지 그런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기쁠 때는 더욱 즐겁게 하는 역할을 하는 노래도 있고, 슬플 때는 아픔을 감싸주어 치유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이런 것이 어느 의미에서는 노래가 도구적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민중가요는 대중가요보다 좀 더 의도적이고 정치적입니다. 그러나 민중의 삶에는 투쟁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터에서의 투쟁도, 퇴근 후 동료나 가족들과의 일상도 모두 민중의 삶입니다. 투쟁의 의미를 파업에만 쟁점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내 삶 전체를 바꿔내는 운동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공장에 있을 때나, 휴식을 취할 때나, 일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으로 확장해야 합니다."

민정연 대표는 현장의 투쟁은 일상의 한 부분이지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해다.

"우리의 일상을 지켜보면 자본의 권위적인 모습이 보입니다. 다양한 모습의 일상이 자본에 침식당하고 있습니다. 일한 만큼의 대가, 노동자의 권익,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자본의 힘에 대항해서 민중의 삶을 만들어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일상에 풀어내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의 일상을 잘 사는 삶을 위해 소비하는 것은 아닌지, 내 노동의 대가를 큰 차, 큰 집, 좋은 옷 등의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향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꽃다지는 투쟁의 노래와 함께 자본에 잠식당하는 일상을 노래로 풀고 있다. 나만 잘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관점 즉, 자본주의적인 것에서 벗어나 삶을 진정으로 건강하게 만드는 노력을 노래에 담고 있다. 꽃다지의 노래는 여전히 일상을 위로하는 삶의 희망이 될 것이다.

"우리가 민중가요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민중가요가 다양한 민중의 삶을 어루만져주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