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잃으면 나라도 사라진다.
조그마한 언덕으로 올라가는 층계가 나타났다. 층계를 오르자 자그마한 사당이 보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이 숙연해졌다. 낡은 외형은 오랜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했다. 장대한 기품과 은은한 색조는 고상한 기품을 지니고 있었다. 이 사당은 연평도를 지키는 수호신 같았다. 주민들은 선량하고 진중한 눈빛과 태양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로 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깊은 존경심을 보였을 것이다.
충민사는 병자호란으로 치욕을 당한 조선이 청나라를 치기 위해 명나라와 협상하러 가는 중 협상단을 이끌던 임경업 장군이 들렀던 것을 기념해 지어졌다. 임경업 장군은 식수와 부식을 구하려고 연평도에 머무르다가 바다에 조기가 많은 것보고 밀물 때 가시나무를 꺾어 바다에 꽂았다. 썰물 때가 되자 바닷물은 빠졌지만 물고기들은 가시에 걸려 나가지 못했다. 이것이 연평도 조기잡이의 시초가 됐으며, 주민들은 그의 전설적인 지혜를 기리기 위해 충민사를 지었다.1)
충민사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마치 연평도를 지키는 늙은 파수병처럼 근엄해 보였다. 몇 백 년 전 의기양양하게 중국으로 향했을 수십 척의 배를 상상했다. 그 배들은 강인하고 근엄한 음성으로 바다의 축복을 바라는 노래를 했을 것이다.
전통은 많은 가르침을 줬다. 현실에 빗겨선 과거의 지혜 같지만, 모진 풍파가 몰아칠 때마다 든든한 힘이 된 것은 민족의 전통이었다. 예를 들면 ‘환난 상률(患難 常律)’은 겨레의 오랜 미풍양식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서로 힘을 보태면서 시련을 극복하는 것을 규율로 정하고 실천했다.
요즘엔 민족을 팔아먹은 족속들도 전통과 문화를 들먹인다. 가장 대표적인 부류는 ‘친일’ 숙주들이다. 아직까지도 민족을 비하하고 친일을 미화하는 숙주들이 버젓이 사회 지도층에서 활개치고 있다.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이라느니, 식민지배는 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됐다느니, 일제의 침략은 하나님의 뜻이라느니, 그런 몹쓸 말을 쏟아 내고 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민족을 팔아 일신의 영화를 누린 죄가 뚜렷하고,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세상이 어떤 모양으로 바뀌더라도 무궁한 뿌리를 잊으면 자신도 없다. 겨레의 고통을 나누지 못하면 언젠가는 스스로 벼랑 끝에 내몰리고 말 것이다.
1) 연평도 주민들은 매년 3월이 되면 풍어와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충민사 앞에서 오색만기를 들고 당굿과 배굿을 올려 어민의 안정을 기원한다. 여행객들에게도 풍어제를 공개한다. 시기를 잘 맞추면 풍어제를 관람할 수 있다. 주민들의 마음은 겸손하고 엄숙하며, 절하는 몸가짐은 예답고 정갈하다. 제 올리는 시간이 길다는 재촉은 아서라. 허구한 세월 동안 우리 문화를 지키고, 과거와 미래를 잇는 정성이 축적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도 없었다.
연평도에 오니 묵가가 생각났다. 남과 북도 서로 부둥켜안고 우리 민족의 실리를 위해 미래를 설계하면 좋겠다. 묵가 사상의 핵심은 겸애와 평등이다. 겸애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이며, 사회가 혼란에 휩싸이고 서로 죽이며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을 서로 사랑하지 않는 데에서 연유를 찾았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아끼고, 서로의 이익을 생각한다면 사회는 평등과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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