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 앞에서 - 야곱의 돌베개
칠흑 같은 어둠이 천지를 삼켰다. 장준하는 추위와 함께 찾아온 공복감과 현기증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힘차게 김준엽과 밀착해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막았다. 서로 몸을 비비면서 온기를 전했다. 이 고갯길에 비석도 없고, 연고자도 찾아오지 않는 무덤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는 밤이 깊어갈수록 고향과 아내 생각에 깊이 사로잡혔다. 부모님의 얼굴도 떠올랐고, 동무들의 이름도 선명해져 목이 메었다. 어릴 때 뛰놀던 동산부터 대자로 누워 밤하늘의 별을 관찰하던 대청마루까지 하나하나 떠올라 울컥 울음이 쏟아지려고 했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는 사람이 흔히 하는 회상이었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 고통을 이겨 내지 못하면 조국 독립의 소망을 이룰 수 없었다.
먼저 간 조상들이 조국을 지키지 못해 후대들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먹고살기 어렵고, 정치의식은 낮고, 인권신장은 멈춰버린 조선이 결국 후대에 물려준 건 민족의 혼을 빼앗긴 땅이었다. 장준하는 후손들에게 절대로 이러한 고통을 안겨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일제의 탄압과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죽을 때까지 변절하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 반만년 역사에 종언을 고한 친일파 민족 반역자들의 발로를 막는데 힘을 보태고자 했다. 특히 중앙군관학교에서 <등불>을 만들었던 경험 때문인지 어떠한 강압에도 펜대만은 꺾지 않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수많은 문인들이 친일파로 전향했다. 전향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근대주의 주창이었다. 문인들은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중국이 일본을 이기면 해방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중국이 패하자 중국을 비판하며 친일의 길로 들어섰다. 중국은 봉건, 일본은 근대라는 논리를 펴면서 일제의 지배논리였던 내선일체에 동의했고, 저들을 위해 글을 썼다. 이광수가 대표적인 문인이었다. 또 하나는 근대의 종말이었다. 문인들은 중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근대의 정서가 싹텄던 파리가 나치에 의해 함락되자 큰 충격을 받고 친일의 길을 걸었다. 근대를 버리고 신체제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대동아공영을 부르짖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소설가 채만식이었다.
친일 문인들과 다르게 우회적 글쓰기와 절필로 일제에 저항하는 문인들도 많았다. 이들은 창작을 접고 고향에 내려가 학교 선생님을 하거나 조선의용군이 돼 총을 들고 싸움터로 나갔다.
청산하지 못한 친일 - 햇덩이
장준하는 몸에 힘이 빠지며 아무런 생각도,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죽음을 그저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면 모든 게 깨끗이 끝났다. 그는 사람이 죽으면 우는 새, 귀촉도를 떠올렸다. 귀촉도는 영원한 세계인 저승과 일시적인 세계인 이승을 이어주는 매개였다. 그러나 그는 서정주 때문에 가슴이 내리 눌리는 듯했다. 서정주는 일본 천황을 흠모하며 ‘친일 파시즘’을 찬양했다. 천황에게 통제받고 지시받기 원했으며, 끝내 자신의 강렬한 자아를 없앴다. 그는 시집 「귀촉도」를 내면서 친일로 전향했다. 현실 세계의 갈등을 제거하고, 현실에 맞서는 작가정신을 거세하며 천황에 집중했고,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절대적인 존재로 천황을 내세웠다. 서정주는 해방이 되자 이승만을 다시 귀촉도의 자리에 놓았다. 청산하지 못한 친일이 남긴 뼈아픈 유산이었다. 서정주뿐만 아니라 많은 친일 반역자들은 처벌되지 않았고, 이들로부터 한국은 정경유착과 반자주화, 비민주와 반통일, 부조리와 부패의 온상이 됐으며, 조국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길 거부했던 숭일, 숭미가 판쳤다.
장준하는 서정주를 떠올리자 죽음에 대한 공포가 본능적으로 일렁였다. 사람은 결국 죽어 완전한 무로 돌아간다지만 그에게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아직도 할 일이 많았다. 헛되고 돌연한 죽음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김준엽을 끌어안고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아등아등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몰려오는 졸음은 참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고갯길을 데굴데굴 나뒹굴었다.
어느덧 어둠이 사라지고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했다. 장준하의 삶이 애처롭게 저물어 갈 즈음에 구름이 말끔히 걷히며 희번하게 태양이 솟아올랐다. 차츰차츰 떠오른 태양은 어느새 파촉령을 환하게 비추며 열기를 내뿜었다. 장준하는 눈을 떴다. 불게 타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태양은 그가 비장하게 죽음과 맞서 싸우던 생의 의지였고, 피바다 위에 떠오르는 조국 해방의 기운이었다.
지난밤의 초한을 참아낸 일행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태양을 쳐다봤다. 이들의 얼굴에는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이 무겁게 묻어났다. 장준하는 자신과 같이 무지무지한 죽음의 고통을 견뎌낸 동지들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자신의 고통과 공포마저 모두 잊게 해주는 축복이었다. 그는 길게 휴 숨을 내쉬면서 다리에 힘을 주었다. 빠사삭거리는 눈 위를 걸어가는 시늉을 하며 또다시 이어질 행군을 준비했다.
간부의 자세 - 주막과 두부탕
장준하 일행은 얼어 죽을 고비를 넘겼다. 선배 독립투사들이 독립군 자금을 운반하다 만주벌판에서 얼어 죽은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파촉령을 넘다가 참혹한 동사 위기의 체험을 하게 될 줄 몰랐다. 동사할 뻔했던 경험은 일행에게 큰 교훈을 줬다. 한겨울의 산이 얼마나 살벌하고 아찔한 곳인지 실감케 했다.
장준하는 산란한 마음을 뒤로하고 일행과 함께 한참을 걸어 저녁 무렵 주막에 당도했다. 하루 종일 쫄쫄 굶었더니 그의 뱃속에서 쪼르륵쪼르륵 소리가 났다. 일행은 돗자리가 깔린 바닥에 앉아 얼큰하게 끓인 두부탕에 빨갛게 다진 고춧가루 양념을 풀어 한 그릇을 후딱 비웠다. 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말도 없이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큼지막하게 숭덩숭덩 썬 돼지고기는 수륙진미였고, 숟가락에 걸려 나오는 무와 배추 시래기는 보약이었다.
장준하 일행은 두부탕뿐만 아니라 기름에 튀긴 쟈오즈(만두)도 먹었다. 쟈오즈는 쫀득쫀득하고 달착지근했다. 누긋누긋하고 찰진 밀떡 반죽과 돼지비계, 양파, 두부가 잘 어우러져 혀에 착착 감겼다. 일행은 노잣돈이 부족하지 않았다. 라오허커우에서 공연하는 동안 시민들과 학생들이 준 후원금이 쾌 됐다. 사령부에서 받은 준위 급료와 공연 활동비도 똑같이 분배한 상태라 배부르게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었다.
주막 한가운데 중국군 고급장교가 부하들을 뒤에 세워 놓고 거만한 표정으로 식사하고 있었다. 행동거지는 천박하고 경솔했다. 식탁 위에 놓인 음식을 몇 번 쩝쩝거리며 맛을 보더니 구석으로 밀쳐 내곤 했다. 그는 사린교를 타고 파촉령을 건너는 중이었다. 사린교는 네 사람이 끈으로 가마를 들어 올려 메는 중국식 가마였다. 장준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장교랍시고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가마 타고 가는 꼬락서니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장교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부하를 이용하면 안 됐다. 인간미와 선행으로 가족을 살피듯 아랫사람들을 보살필 줄 알아야 부하들도 믿고 따랐다.
장준하는 졸병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혼이 빠지도록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하는 중국인 장교가 싫었다. 하늘 아랫사람은 다 똑같았다. 상하와 귀천이 없고, 하나님의 권능 아래 모두가 평등했다. 그는 일제가 물러나 해방이 되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과정에서는 이와 같은 일들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신분적 불평등 때문에 상식 이하의 대우를 받거나 멸시와 천대를 당해서는 안 됐다.
파촉령 고개를 넘어 바둥으로 - 꼭 열사흘 만에
낮에는 고갯길을 오르고, 밤에는 주막에서 자는 행군이 반복됐다. 한 끼는 따끈한 두부탕으로 배를 채웠고, 식사를 마친 이후에는 너나 할 것 없이 피로에 지쳐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옴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잠들기 전에는 모두 벌거숭이로 유황 돼지기름을 몸에 발랐다. 새벽에는 습관적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밀가루빵을 손에 쥐고 길을 나섰다. 오직 허기를 때우고, 동력을 얻기 위해 먹는 음식이었다.
장준하 일행은 아흐레를 걸어 파촉령 고개 꼭대기에 도착했다. 안하에 펼쳐진 풍광은 장대했다. 북풍은 사납게 볼을 할퀴었지만 가슴은 탁 트였고, 두 눈은 웅장한 대자연에 그대로 도취돼 빨려 들었다. 장준하는 장활한 고개가 빙 둘러 굽이굽이 펼쳐지자 삶의 의지가 악착같이 떠올랐다. 폐부 깊숙한 곳에서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조국 독립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장준하 일행은 파촉령을 넘어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내리막길도 오르막길처럼 경사가 급하고 바닥이 미끄러웠다. 일행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걸었다. 양팔을 벌리고 흔들흔들하면서 몸의 균형을 잡았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넘어지며 전신에 거멓게 멍이 들고 근육통이 찾아왔다. 일행은 일제히 앉아서 미끄럼을 타거나 데굴데굴 구르다시피 좁은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 행군 속도는 비교적 빨랐다. 바쁜 걸음으로 오르막길을 걷는 것보다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다. 중심을 잘 잡고 미끄럼을 타듯이 내려가면 숨이 차거나 다리가 아프지 않았다. 일행은 빵글빵글 웃으면서 행군을 즐겼다. 행군 속도가 빨라질수록 지치기보다는 충칭으로 가는 길이 가까워진다는 생각에 흥분됐다.
사흘이 지나자 산길이 완만한 내리막으로 접어들더니 바둥으로 향하는 끝없는 평지가 시작됐다. 라오허커우를 떠난 지 열사흘 만이었다. 평지 옆으로는 장강으로 흐르는 널따란 지류가 손금처럼 펼쳐졌고, 묘묘한 강물 위에는 작은 돛단배 서너 척이 떠 있었다. 일본군은 이곳까지 손길을 뻗치지 못했다. 일본군은 전쟁 물자를 말이나 트럭으로 운반했기 때문에 험난한 파촉령을 넘어 진격할 수 없었다.
장준하 일행은 개활한 평야를 힘차게 내딛으며 노래를 불렀다. 6개월 행군의 끝이 아물아물 보이기 시작했다. 충칭에 도착하기 전까지 또 무슨 일이 닥칠지 몰랐지만 멀지 않은 거리에 충칭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절로 기쁨이 솟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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