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나운하 가수 - 갑질, 이해는 하는데 ‘야’, ‘너’는 못 참겠더라

이동권 2022. 10. 28. 00:21

나운하 가수


글을 쓰는 재주는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글을 잘 쓴다고 모두에게 감흥을 주는 건 아니다. 마음 없이 머리로만 써서 그렇다. 사람을 움직이는 글은 역시 마음에서 우러난 글이다. 노래도 똑같다.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목소리에 마음을 담아내지 않으면 감흥을 주지 못한다. 감동적인 무대는 진심 어린 마음과 노래 부르는 재주가 합쳐져야 만들어진다.

가수 나운하는 노래도 잘 부르지만 무엇보다 마음에서 우러난 노래를 들려준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심각하면 심각한 대로, 곡의 분위기에 맞게 감정을 담아낸다. 어떤 노래라도 열심히, 주의 깊게 하려는 그의 고집 때문이기도 하지만 털털한 외모와 다르게 천성이 곱고 정이 많은 성격이 자연스레 작용했다.

“오랫동안 부르다 보니 노래의 맛을 알게 됐다. 음미하는 것을 넘어서 가사를 씹어 부른다. 혈액형이 O형이다. 가끔 성격이 급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중요할 일, 먼저 해야 할 일을 완벽하게 끝내야 다음 일을 하는 성격이라 그렇다.”

나운하가 여기저기서 들리던 ‘갑질’ 소식에 마음이 단단히 상했나 보다. ‘갑’들의 ‘갑질’에 눈물 흘리는 세상의 모든 ‘을’들을 위해 노래 ‘갑순이와 을식이’를 발표했다. 정치적으로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관심사를 쫓는 것도 아니었다. ‘갑질’하는 세상에 통탄하는 마음, ‘갑질’하는 세상이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 오직 하나뿐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그가 직접 썼다.

“갑질 이해한다. 근데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한테 ‘내가 누군지 알아’, ‘야’, ‘너’라는 얘기를 듣고 참을 수가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 노래를 만들었다. 주위 사람들이 자기 얘기 대변해준다고 해서 좋아들 한다. 앨범도 그래서 내게 됐다.”

나운하가 오랫동안 몸담고 있었던 현실도 만만치 않다. 연예계 ‘갑질’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나운하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갑질’에 더욱 분노했던 이유겠다.

“사람을 차별한다. 대기실에서 가수들끼리 같이 기다리고 있으면 ‘아이구 설운도 선생님’, ‘아이구 현철 선생님’하면서 앞에 ‘아이구’자나 뒤에 ‘선생님’자를 붙이는데 나한테는 ‘아~ 많이 닮으셨네’라고 말한다. 왜 그러는지 세상이 참 씁쓸하고 환멸이 느껴지더라. 해외공연 가면 대우를 많이 받는데 한국에서는 안 된다. 멀리에서 온 손님이라도 반겨 주고, 처음에는 별로 반기지 않더라도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 보고 실력으로 평가해주는데, 아쉽다.” 

세상을 살면서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먹고 싶은 것 다 먹으며 사는 게 재밌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삶은 재밌고 도전할 만한 것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인생이 힘들다고 투덜거릴 필요도 없다. 어차피 인생은 고행의 연속이다. 우여곡절과 발버둥이 쌓여 삶은 의미를 갖고, 가난하고 모자란 삶에서 인생의 가치도 발견된다. 

나운하의 노래를 들으면서 힘을 내본다. ‘억울해도 참아야지. 힘이 없는 을식아. 눈물을 머금고 참고 살자. 완장찬 갑순이잖아.’

나운하의 본명은 ‘박승창’이다. 1974년 ‘나성아’라는 예명으로 노래 ‘옛 시절 옛 친구’를 부르며 데뷔해 활동하다, 1991년 SBS 창사특집 나훈아쇼 모창대회 입상을 계기로 이름을 ‘나운하’로 개명하고, 본격적으로 모창가수의 길을 걸었다. 특히 그는 나훈아의 외모와 싱크로울 99%을 선사하며 전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모창가수 최초로 단독 디너쇼까지 열 정도였다.  

나운하가 처음 등장했을 때 반응은 폭발적이었지만 대부분 관심은 ‘닮았다’였다. 하나둘씩 진정한 팬들이 생기기 전까지, 그에겐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사연이 많다. 

“20살 때 결혼했다. 큰딸이 올해 39살이다. 가족도 있는 데다 배가 고파서 못살겠더라. 부산에 내려가서 어린이 동화책도 팔고, 그 당시 최고 첨단기계였던 팩시밀리를 팔아 판매왕이 됐다. 영업하던 친구들이 지금도 만나면 판매왕이라고 얘기한다. 2년 판매왕을 하니 OA기계를 파는 기업에서 스카웃을 했다. 전부 대졸이라서 고졸인 나는 정사원이 못 됐고 성과급을 받기로 했다. 고등학교 졸업장 가지고 대학 나온 영업사원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영업하러 가면 나훈아 표정을 지었다. 그럼 상대방이 ‘나훈아 씨 같은데’라고 얘기하면 ‘나훈아 씨의 어떤 노래 좋아하냐’고 물어보고 두 곡 세 곡 불렀다. 그러면 산다. 그래도 안사면 나훈아 모창을 할 때 꺾는 방법까지 알려줬다. 죽기 살기로 뛰었다. 보통 영업사원이 한 달에 3대만 팔면 기본은 유지됐다. 나는 일주일에 서너 개씩 팔았다. 돈 많이 벌었는데 다 썼다. 비전을 바라보고 모두 다시 투자했다. 술 진짜 많이 마셨다.”

나운하는 영업왕으로 이름을 날리면서 생활은 점점 나아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음악에 대한 열정은 더욱 타올라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서울에 올라왔다. 막상 서울에 올라오니 다시 생활은 막막함의 연속이었다. 

“서울에 노래하러 간다고 하면 아내가 안 보내 준다. 아내가 파출부를 하면서 번 돈을 옷장 이불속에 넣어두었다. 거기에 이십만 원이 있더라. 그거 들고 서울에 올라와서 다음날 전화했다. 이십만 원이 얼마나 가겠나. 서울역 밑 지하도가 우리 집이었다. 그 고난의 시간이 날 있게 만들었다. 사람이 고생을 많이 하고 난관이 많으면 많은 생각을 하기 때문에 어떤 어려운 일도 헤쳐나갈 수 있다.”

나운하는 이제 꽤 유명한 가수다. 웬만한 가수보다 지명도가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늘 수식어가 뒤따른다. 가수 나훈아의 짝퉁가수, 이미테이션 가수다. 모창가수가 무작정 똑같다고 인기를 얻는 건 아니다. 자신만의 개성이나 특징이 결합돼야 가능하다. 물론 자기 노래도 있어야 한다. 

“모창가수가 더 어렵다. 일단 다 똑같아야 한다. 하지만 무조건 똑같으면 매력이 없다. 몇 군데는 창조적으로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한다. 부분마다 내 매력을 넣어주면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 그걸 잘하는 게 모창가수다.”

인생은 완성되지 않는 노래다. 곡조도 정갈하지 않은, 즉흥으로 연주되는 메들리다. 이 메들리는 인생이 끝나는 날에 비로소 완성된다. 그 중간중간에 필요한 것은 용기와 인내심이다. 서로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이라면, 누군가는 그 간격을 견뎌낼 참을성과 포기하지 않는 의기가 필요하다.

“작고한 아버지께서 노래하는 것을 반대했다. 가수도 못하게 하는데, 더군다나 남의 가수 모창을 한다고 하니까 고향에 내려가면 문전박대를 당했다. 장남으로서 아버지 생각하면 미안함이 있다. 초창기에 힘들었다. 처음에는 짜가니, 짝퉁이니 말도 많았지만 지금은 괜찮다. 그런 세월이 다 지나고 나니 지금 우리 어머니는 아들이 TV에 나오는 거만 손꼽아 기다리신다.”

나운하와 얘기를 나누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젊은 시절 꿈꾸었던 것에 충실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는 줄곧 가수가 되길 원했고, 그 길을 걸었으며, 지금도 무대에서 노래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 마음이 오늘날 나운하를 만들어냈다. 감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있다고 감이 떨어지진 않는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든, 나뭇가지로 감나무를 흔들든, 떨어뜨려야 떨어진다.

삶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이 되는지 결정되는 것 같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20~30년 후의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얘기다. 조금만 힘들고, 어렵다고 자신이 걸어가고자 하는 길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이들에게 나운하의 삶은 표본이 될 수 있겠다. 간절히 원하면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것에 가까운 것이 될 수 있다. 나운하의 삶은 성공한 사람보다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 왔던 마음 그대로다.

“세상 사람들 너무 피곤하게 산다. 한 건해서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쫓아다닌다. 어차피 이루지 못할 일이다. 나는 세상을 등분해서 살라고 말하고 싶다. 힘들어 죽겠다, 이 나이에 뭐하냐가 아니라 한 시기가 지나면 다른 시기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나는 괴로움도 즐긴다. 슬픈 일이 찾아와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근데 세상 사람들은 스트레스받으려고 작정하는 것 같다. 이해하려고 하면 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장기를 둘 때 훈수하는 마음으로 살면 좋다. 자기가 장기를 둘 때는 안 보이는 것도 훈수를 둘 때는 다 보인다. 성공이 뭔가. 성공이 뭔지 나도 궁금하다. 다 이건희, 빌딩 주인이 되려는 것이냐. 자신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선을 잡아놓고 살고, 그 선을 넘으면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면서 살면 되는데, 너무 높게 잡는다. 강남부자가 왜 자살하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