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이 음악 좋다

산울림 - 청춘, 창의성과 실험성으로 무장한 밴드

이동권 2022. 9. 7. 15:42

산울림 30주년 기념 콘서트 포스터


점잖고 정감 어린 목소리의 주인공 김창완. 산울림으로 가수 생활을 시작한 지 45년이 지났지만, 그의 머리카락은 한결같이 덥수룩하고 헝클어진 모습이다. 나이가 들수록 잔주름이 늘어나는 것은 막을 수 없었지만,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고 해맑은 미소는 여전하다. 마치 정성스럽게 내일을 설계하면서 자신의 삶을 성찰해온 사람들처럼 그의 얼굴은 밝은 빛으로 가득하다.

 

산울림 곡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청춘'이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상당히 심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사춘기 시절 처음 사색을 시작했을 때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나의 사색은 내 삶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시작됐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걸 인지하면서였다. 그래서 소망이 생겨났고, 사랑을 원했으며, 풍요로운 삶을 꿈꿨다. 내 인생을 가장 아름답고 선한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서른 즈음에 이르자 모두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저 덧없음에 대한 슬픔이었고, 불안한 동경이었다. 삶은 고통스러운 숙제를 남기고, 보잘것없는 첫사랑을 회상하며, 뿌리털 같은 욕망에 지쳐 사라지는 것이었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간직한 채, 그리움을 재생하며 시드는 것이 인생. 그때부터 내 사색의 관점은 죽음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 '인간'

1970년대 산울림의 등장은 1990년대 초반 가요계에 해성처럼 나타난 서태지와 아이들과 맞먹는 것이었다. 1977년 산울림이 데뷔할 당시에는 록 음악이 대중화되지 못했다. 이때 산울림은 '아니 벌써'라는 색다른 형식의 노래로 전국 방방곡곡을 뜨겁게 달궜다. 대학가요제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캠퍼스 밴드가 가요계를 주름잡고 있을 때 산울림은 매우 창의적이고 실험성이 강한 음악으로 한반도를 들썩이게 했다. 1977년도에 태어난 아이에게 '산울림동이'라는 칭호까지 따라다닐 정도로 대중의 지지는 폭발적이었다. 

1978년 산울림은 2집 '어느날 피었네'와 3집 '그대는 이미 나'를 발표한 데 이어 79년 '개구쟁이'라는 노래로 공전의 히트를 이어갔다. 반복되는 베이스 연주와 흥겨운 드럼 반주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산울림은 지금의 오빠부대처럼 공연장마다 여학생 팬들을 몰고 다녔으며, 레코드 가게에서 1집, 2집, 3집에 실린 히트곡을 하나의 공테이프에 녹음해 듣거나 선물하는 문화를 낳기도 했다.

1980년 컬러 TV 등장으로 방송국의 '쇼' 무대가 점점 화려함을 더하고 있을 때 산울림은 6집 앨범에 수록된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라는 노래를 발표해 대히트를 기록했다. 맑고 청량한 리듬에 아름다운 가사가 곁들여진 이 곡은 연일 TV와 라디오를 장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앨범은 전체적으로 서정성이 뛰어나 갖가지 상념에 젖어들게 했다.

이후 두발과 교복이 자율화되고 대학입시가 학력고사로 바뀌었던 1981년 김창완 씨의 두 동생이 제대했다. 그때 '가지 마오', '청춘' 등의 히트곡이 실린 7집을 발매한다. 이 노래들은 81년 내내 가요순위 1, 2위를 다투면서 산울림의 재결합을 고대했던 팬들에게 흐뭇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창밖의 여자'로 인기몰이를 했던 조용필의 등장으로 인기가 수그러들긴 했지만, 산울림은 흔들림 없이 자신들의 명성을 이어갔으며 그해 KBS 가요대상 중창 부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1982년 산울림은 '내게 사랑은 너무 써'라는 노래가 담긴 8집을 발표했다. 이 앨범으로 산울림은 다시 한번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점점 활동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산울림은 83년 9집 앨범을 발표하고 둘째 창훈 씨는 해태그룹으로, 셋째 창익 씨는 대우그룹으로 입사한 뒤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한다. 그래서인지 9집 앨범은 우울하고 어두운 음악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1984년 김창완씨는 세션들과 함께 산울림 10집 앨범을 발표한다. 이 앨범은 완숙미가 물씬 풍겨 나는 노래 '너의 의미'로 종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다시 전성기를 맞는다.

1986년 김창완은 홀로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가 수록된 11집 앨범을, 91년에는 12집 앨범 '아디지오'를 발표한다. 그리고 97년 재결합한 산울림은 13집 앨범 '무지개'를 발표하고 자신들의 음악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린다. 산울림은 2006년 7월, 3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고 14집 앨범을 준비하던 중 2008년 1월, 막내이자 드러머였던 김창익이 캐나다에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 산울림은 공식 활동을 종료했다. 김창훈은 현재 김창완밴드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산울림은 앨범을 가지고 싶어 무작정 레코드사를 찾았지만,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치에 서게 됐다. 프로 음악인을 꿈꿨던 이들이 아니었기에 기존의 주류 음악의 형식을 뒤엎을 수 있었다, 산울림의 아마추어적인 연주력이 때론 핸디캡으로 작용했지만 프로 음악인들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창의력은 압도적이었다. 산울림의 음악은 뭔가로 규정할 수 없는 개성이 있고, 특히 발라드, 동요까지 넘나드는 이들의 음역은 대중음악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