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각성된 눈으로 그려 온 인간 사회 ‘이흥덕의 극장-사람·사물·사건’

등골이 오싹하기도 하고, 속이 드글드글 끓어오르기도 하고, 절로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작품 속 이야기 하나하나가 아슬아슬한 곡예를 타는 듯해서 잔뜩 궁금증이 인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누구이며,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이흥덕 작가는 198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부터 작품에 표현했던 주제와 대상은 언제나 강자와 약자였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즉 강자의 폭압성으로 약자의 위기와 고통을 그려 왔다. 평생 정물화만 그려 세계적인 거장이 된 조르조 모란디 같은 작가도 있지만 평생 각성된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면서 인간의 이야기를 담아낸 이흥덕 작가도 있다. 이흥덕 작가는 인간 군상들의 갈등과 욕망을 캔버스에 채운다. 째려보고, 시기하고, 흥분하고, 다투고, 욕설하고, 때리고, 불 지르고, 멍 때리는..

미술과 인물 2024.05.05 0

카를로스 아모랄레스 - 수만 마리의 검은 나비로 연출하는 초현실적 분위기

매년 봄, 전라남도 함평에서 나비축제가 펼쳐질 때마다 생각나는 작가가 있다. 검은 나비로 전시장 전체를 뒤덮어버리는 작가 카를로스 아모랄레스(Carlos Amorales)다. 카를로스 아모랄레스의 작품 ‘Black Cloud’는 종이로 만든 다양한 크기의 나비 2만5천 마리로 전시장 벽과 천장에 설치한다. 작품 설치에는 14명으로 구성된 팀이 5일 동안 쉬지 않고 작업한다. 그 결과물은 대단하다. 가까이에서 보면 나비 하나하나가 정교하게 쌓여 있어서 놀랍고, 나비들이 쌓임으로써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초현실적이다.   카를로스 아모랄레스는 멕시코 현대 문화와 이슈들을 소재로 순수미술뿐만 아니라 디자인, 애니메이션, 퍼포먼스, 음악 등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을 시도하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다. ..

미술과 인물 2024.04.27 0

이영 - 다종다양한 생물과 사물이 상호 연결된 인드라망

동심원은 다채로운 색채가 변주하고, 올록볼록한 형태미를 발산한다. 원형이 반짝이고, 원형 구조가 어우러지고 확장하면서 일대 장관을 연출한다. 다양한 원형의 색채와 조형, 찬란한 빛의 음영과 볼륨으로 색다른 공명을 전한다. 고도로 세련된 도안적 구성은 강렬한 생동감과 밀도 높은 침성(묵직하게 가라앉는 성질)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며 시선을 집중시킨다. 허공에 겹쳐 놓은 것 같은 수많은 원형 이미지를 창조하고, 조화롭게 병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실험을 했을까? 이영 작가의 작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얼마나 많은 생물과 사물이 존재하고, 이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살면서 진화하고 윤회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불교 철학에서는 이를 인드라망이라고 한다. 인드라망은 에 나오는 말로, 서로 연결돼 있고 서로에..

미술과 인물 2024.04.21 0

문화예술연예뉴스 동동

[공연] 문화예술 콘서트 ‘서울스테이지 2024’ 5월 공연

문화예술 콘서트 ‘서울스테이지 2024’ 5월 공연이 5월 28일부터 31일까지 4일간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센터, 청년예술청, 서울연극센터,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용산, 홍대 레드로드에서 열린다.  이번 공연에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 친구, 동료와 즐길 수 있는 피아노 공연부터, 실내악 앙상블, 낭독극, 재즈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선보인다. 자세한 사항은 서울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영화] 한반도 평화 일깨우는 다큐멘터리 영화 ‘판문점’ 6월 개봉

한반도 평화를 일깨우기 위한 대국민 프로젝트 다큐멘터리 영화 ‘판문점’이 6월 개봉한다. 이 영화는 정전 이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평화에 이르지 못한 현실을 설명하면서 남북은 지금 당장 ‘판문점’에서 만나라고 촉구한다.‘판문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 ‘김복동’으로 호평을 받은 송원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내레이션은 박해일 배우가 맡았다.  국정원 간첩조작사건을 다룬 ‘자백’, 정부의 언론장악을 폭로한 ‘공범자들’, 대한민국 핵발전의 현주소를 직시한 ‘월성’,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100년 역사 폐해를 파헤친 ‘족벌-두 신문 이야기’를 만든 뉴스타파가 제작했다. ‘판문점’은 안정적으로 상영관을 확보해 더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5월 13일부터 6월 9일까지 텀블벅 펀딩을 진..

[연극] 변두리 사진관에 모인 한 가족의 자살 소동극 ‘가족死진’

도시 변두리 허름한 골목에 위치한 ‘추억관’이라는 사진관에서 벌어지는 휴먼 코미디 연극 ‘가족死진’이 5월 29일부터 6월 9일까지 대학로 동숭무대소극장에서 열린다.  이 연극은 김성진이 극본을 쓰고 연출했다. 민병욱, 이성순, 김성태, 류지훈, 권겸민, 명인호, 안동기, 김남호, 박인서, 박소연 배우가 출연한다.

책 - 전문 읽기

밥줄이야기 -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우리는 왜 인생의 마지막에 도달하기 전까지 주의 깊고 진지하게 자기가 가는 길에 대해 생각하지 못할까. 이제는 삶을 곱씹으며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불가해하게 뻗쳐 있던 길에 환한 등불이 밝혀지리라. 이 책은 소와 돼지를 잡는 도부를 비롯해 때밀이, 누드모델, 바텐더, 무명가수, 로프공, 트럭노점상, 교도관, 우편배달부, 밴드 마스터, 산불감시원, 무당(무속인) 등 우리 사회의 지독한 편견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책을 낸 이유는 불현듯 삶이 괴롭고, 산다는 것이 공허하게 느껴질 때, 우리 이웃의 삶을 둘러보면서 힘을 내기를 원해서였다. 또 사람들의 모진 곁눈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앞날을 열어가는 사람들을 재조명해보고도 싶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 ..

밥줄이야기 2021.04.03 0

칼로 새긴 장준하 - 2019년 세종도서

「칼로 새긴 장준하」는 사실을 바탕으로 창작한 소설이다. 그럼에도 역사적 사실은 그대로 적시해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하도록 도왔다. 다소 무겁고 재미가 떨어질 수 있지만 독자들이 조금이나마 사색할 수 있는 책으로 만들기 위해 다큐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칼로 새긴 장준하」에서 장준하 일대기 부분은 장준하 선생이 직접 쓴 「돌베개」를 참조했다. 그러나 모든 감정 표현과 상황 설명, 일부 등장인물 또한 창작해 반영한 허구임을 밝힌다. 이 책이 만약 호기심을 자극한다면 「돌베개」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 이 책은 눈곱만큼도 「돌베개」를 따라갈 수 없으며 전혀 다른 이야기다. 「칼로 새긴 장준하」에 실린 판화는 「돌베개」의 내용을 100% 재현한 진실이다. 장준하 선생의 6천리 항일대장정을 따라가며 한 땀 한 땀 ..

주피터 프롤로그

조지프 니덤은 휠체어에서 눈을 떴다. 오한과 통증이 잠을 깨웠다. 연이어 구역증이 치밀었다. 진통제 과다 복용이 부른 후유증이었다. ‘인생 말기는 끔찍한 형극이야.’ 선잠을 길게 잔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구부정한 허리를 쭉 폈다. 찌릿한 통증이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잠이 완전히 달아났다. 니덤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바닥으로 허벅다리를 내리쳤다. 피부에 다닥다닥 들러붙은 부스럼이 진물을 쭉 내뱉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프기보다는 시원한 표정이었다. 딱지가 엉겨 붙을 때까지 가려움을 참았던 분풀이었다. 채광창으로 햇빛이 내리비쳤다. 눈이 몹시 부셨다. 니덤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돌렸다. 탁상 위에 18세기 중국 청나라풍 소반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집안일을 돌봐주는 늙은 중국인 가정부가..

주피터 2022.07.28 0

개망나니의 사색 - 크로키와 함께 떠나는 바다 여행

바다로 떠난 여행은 나와 영원히 나눠야 할 대화로 채워졌다. 영혼의 부르짖음이나 자기반성도 있었다. 하지만 살면서 내가 저질렀거나 목도했던 고통, 횡포, 슬픔 같은 것, 사회의 부조리가 양산하는 것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먼저 살폈다. 육체는 어딘가에 벗어 놓고 정신만 돌아다닌 여행, 내가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자존심과의 싸움이 바로 바다로의 여행, 개망나니의 사색이었다. 연평도는 천혜의 자연이 서로 몸 부대끼며 특유의 정취를 연출했다. 넘치지 않았지만 부족한 것이 없는 곳, 여행지로서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편하게 위로받고 휴식할 수 있는 곳, 온정이 넘치지만 각박한 삶 또한 엿보이는 곳, 특별히 무엇이 아름다운지 얘기할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이 서로 어울리는 곳이었다. 연평도는 여행의 참 맛을 느끼게 ..

개망나니의 사색 2021.04.04 0

강경대 평전 - 1991년 5월 투쟁의 꽃

故 강경대 열사는 1991년 4월 26일 학원 자주화와 노태우 군사정권 타도 시위 도중 백골단이라고 불리는 사복 경찰들의 쇠파이프에 두들겨 맞아 심장막 내출혈로 숨을 거뒀다. 열사의 주검은 노태우 독재정권의 실체를 만천하에 밝히는 계기가 됐으며, 그해 전국적으로 일어난 반독재 민주화운동, ‘5월 투쟁’의 기폭제가 됐다. 나는 이 책을 고리타분하게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책이란 쓰는 사람이 만족하는 것보다 읽는 사람이 배우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혹자는 이 책을 ‘부드러운 평전’이라고 얘기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나는 인터뷰와 자료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으며, 비록 이야기는 내 방식대로 풀었지만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

강경대 평전 2021.04.0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