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트는 새벽, 끓어오르는 환희를 주체할 수 없었다. 한 치 앞도 분간되지 않는 어둠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연못 속 연꽃은 그렇게 아름답고 눈부셨다. 다음날 다시 마주한 그 연꽃은 폭삭 시들어 볼품없었다. 고혹한 자태를 뽐내던 꽃잎이 하루 사이에 송이째 떨어져 영 보기 싫었다.
연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면서 무엇을 깨닫는가? 진정한 아름다움은 찰나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화려한 형상 너머에 깃든 무상함까지 포착했을 때에만 보인다. 자연에서 삶과 죽음은 연결돼 있으며, 숭고한 모습으로 경계를 넘나들며 순환된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 이어진 한 생명, 인드라망
이영 작가는 영민하다. 탐스럽게 핀 연꽃의 아름다움과 앙상궂게 진 연꽃의 애상함을 모두 작품에 담아낸다. 인간이나 사물, 어떤 일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넘어 삶의 지혜나 이면의 깨달음, 광대한 우주의 이치로 치환해 응축한다. 응축된 메타포는 동심원이다. 동심원은 홀로 혹은 함께 다채로운 색채미로 변주되고, 올록볼록한 형태미로 발산되고, 꽉 찬 구성으로 채워지면서 불교의 ‘공사상’으로 연결된다.
불교적 세계관에서 보면 만물은 서로 연관된 우주고, 현실은 가상의 환영일 뿐이다. 우주에는 수많은 생물과 사물이 존재하고, 이들은 서로 얽히고설키서 진화하고 윤회한다는 의미다. 불교 경전 <화엄경>은 서로 연결돼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는 개념을 ‘인드라망’으로 은유한다.
이영 작가의 작품은 매끄럽고 유려하다. 고도로 절제되고 양식화돼 있어 정적인 에너지가 넘치고, 전체적으로는 은은한 품위가 돋보인다. 겉모습과 달리 그 안에는 화려한 장식성과 어마어마한 역동성이 가득 차 있다. 강렬한 생동감과 밀도 높은 침성(묵직하게 가라앉는 성질)이 어우러지면서 인생의 고해와 광명의 세계를 잇는 불교적 발원에 도달한다.
이영 작가는 색채와 형태, 조형과 공간 구성에 첨예하게 매달리면서 자신만의 차별화된 미학을 확보한다. 색 하나, 선 하나, 면 하나에 자신의 의도대로 생명력을 불어넣고 군더더기 없는 균형미를 구축하면서 불교의 본원적인 가치를 담아낸다. 한 점 흐트러짐은 용납하지 않는다. 진정한 평화를 열망하면서 붓끝에 완전히 몰입한다. 그가 불교적 이데아를 현대화의 미니멀리즘으로 빚어내는 과정은 그리는 행위가 아니라 종교적 수행에 가깝다.
이영 작가의 ‘흐름에 들다’전 5월 19일까지 인사동 무우수갤러리에서
조화로운 색채와 빈틈없는 구성, 거기에 깃든 불교적 엄숙함까지, 이영 작가의 작품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숨을 고르게 된다. 언제나 열반을 향한 간절한 바람으로 그림 너머 어딘가, 더 깊고 고요한 세상에 발을 들여놓게 되길 염원하며 그의 작품을 감상한다. 이미지 안에서 아주 크고 넓은 지혜, 마치 궁극적 해탈과 행복으로 다가서려는 몸부림이 요동치고 있는 듯해서다.
전통적인 불교 회화에 현대적 조형미를 결합해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이영 작가의 ‘흐름에 들다’전이 4월 30일부터 5월 19일까지 무우수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이영 작가의 대표적인 연작 ‘Cosmos’와 ‘검은 화면, 먹그림’, ‘만다라’가 선보인다. 이영 작가의 ‘흐름에 들다’전은 5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관람객들에게 아주 뜻깊은 시간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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