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1. 21:56ㆍ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살랑대는 바람이 화려한 청계천을 훑고 지나가는 밤.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을지로 4가 삼풍상가 지하에서는 삼각 수하동 철거민들을 위한 조촐한 '후원의 밤' 행사가 열렸다.
삼각 수하동 주민들은 '강제 철거집행'으로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렸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적절한 보상절차가 이뤄지지 않아 서울시와 피를 말리는 싸움을 치르고 있다.
작은 가게를 꾸리며 생계를 이어오던 삼각 수하동 주민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렸다. 30년 동안 성장이 멈췄던 이 지역이 재개발된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온 것도 잠시. 2002년 9월부터 '미래로 아르이드'가 땅 주인에게 땅과 건물을 사들이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미래로'는 1억 원에서 3억 원의 권리금을 내고 세 들어 살던 주민들과 단 한 번도 대화를 하지 않고 대신 땅 주인들에게 세입자를 내보내면 토지 매입비 잔금 중에서 500만 원씩을 돌려주겠다는 통보만 했다.
세입자들은 이사를 가지 않고 버텼다. 그러나 법정 소송에서 모두 지고 말았다. 이유는 '세입자'였기 때문이다.그래도 세입자들이 나가지 않자 '미래로'는 새벽에 철거 용역들을 데리고 들어와 닥치는 대로 쓸어 가버렸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중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가야만 했다.
이때부터 주민들은 서울시와 '미래로'의 유착 의혹을 제기하며 중구청과 시청 앞에서 노숙 시위에 들어갔다. 자본도 없는 '미래로'라는 작은 회사가 서울시에 줄을 대지 않았으면 이렇게 협상이나 대화 없이 무차별적으로 철거를 진행할 수는 없다는 것. 주민들은 '우리는 함께 잘 살 수 있는 청계천 복원과 재개발이지 개발업자의 배만 불려주는 개발이 아니다'라고 외치면서 적절한 보상과 사과를 요구했다.
이 일로 서울시 양윤재 부시장은 구속됐다.
"오고 싶어서 왔어요."
"여기에 올 수밖에 없었어요."
투쟁의 현장에 나타나 힘을 불어넣는 가수 박준. 밤 11시 무렵, 삼각 수하동 '후원의 밤' 현장에도 방문해 철거민들의 힘겨운 투쟁에 동참했다. 청록색 모자 끝으로 살짝 드러난 짧고 검은 머리와 귀걸이, 회색 빛 선글라스와 대각선으로 누빈 검은 점퍼. 특별하게 차려입고 나온 것 같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연예인 기질'이 느껴진다.
"빈민운동은 먼저 와닿는 게 많습니다. 늘 열심히 하지 못해 부끄럽습니다. "
박준은 1980년 '청년단체연합회'에서 소위 '운동'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도시 빈민들의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군사독재 시절부터 노래로 억압받고 소외당했던 사회적 약자들의 눈물과 상처를 달랬다.
박준의 노래는 마음속 깊은 곳을 울린다. 민중의 깊은 분노는 굵고 낮은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풀어내어 적에게 경고한다. 때론 그는 뜨겁고 절도 있는 함성으로 민중의 투쟁의지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는 자칫 유희에 그치고 마는 음악에 민중의 삶과 정신을 담아내면서, 삶의 한 부분 이상으로 영위하며 살고 있다.
"가고 싶은 곳은 찾아가고, 코오롱 같은 곳은 먼저 연락해서 찾아가고, 초청을 하면 찾아가기도 합니다. 이 판에서 맨날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주어진 삶대로 가지요. 매우 자연스럽게요. 현장이 경직돼 있을 때는 '사노라면'같은 노래를 부릅니다. 힘차게 노래 부를 때도 있고 가끔(?)은 욕도 하지만, 현장이 경직되어 있거나 장기간 투쟁으로 지쳐 보일 때는 '나그네 설움' 같은 뽕짝도 부릅니다. 하나로 엮어서 함께 해나간다는 것, 그것이 투쟁입니다. 현장이나 사람들의 분위기에 맞춰 그들에게 필요한 노래를 하지만, 때론 작은 판이 더욱 좋을 때도 있습니다. 거리 공연할 때 막걸리병, 소주병을 들고 나타난 이주노동자들을 보면 그런 게 정말 '절절'한 것 아니겠습니까. '약속은 지킨다'를 부르려면 약속은 빡세게 지켜야 하고, 후배들에게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합니다. "
참으로 단단하고 소박한 성품이다.
후원의 밤 마지막 뒤풀이는 새벽 2시까지 계속됐다. 박준은 다음날 일정 때문에 새벽 1시에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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