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홍명혜 롯데갤러리 큐레이터 - 예술로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

이동권 2022. 9. 29. 18:56

홍명혜 롯데갤러리 큐레이터


해마다 한국에서는 1만여 건의 전시가 열린다. 개인전은 작가의 기량을 선보이는 전시이고, 기획전은 큐레이터의 역량이 시험대에 오르는 전시. 숫자에 상관없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런데 요즘 전시는 너무도 상업적인 데다 이벤트성 전시가 많다. 또 기획자의 눈에 띄지 않거나 전시할 기회가 없는 작가들이 직접 갤러리를 대관해 전시하는 경우도 많다. 예술가들이 작업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기획전을 보고 싶은 관람객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소통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전시, '소통을 말하다'전을 기획한 홍명혜 롯데갤러리 큐레이터를 만났다. 그녀는 한국인들의 소통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요즘 소통이 화두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을 소통이라고 여긴다. 아니다. 상대의 다른 생각들을 알아가고 이해하는 것이 소통이다. 이런 점을 얘기하고 싶었다. 또 최근 큐레이터들이나 작가들이 개인적인 문제나 자아의 정체성을 주제로 전시를 많이 한다. 하지만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다. 이런 점들이 무척 아쉽다. 나는 큐레이터를 하면서 사회문제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갖고 싶다. 그리고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

작가들은 전시 기회를 제공하는 갤러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전문 큐레이터의 기획전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기란 매우 힘들다. 큐레이터들이 작가를 선정할 때 여러 가지 배경을 함께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들은 스스로 갤러리를 빌리고 도록을 만든다. 그나마 문예진흥기금, 대안공간, 의식 있는 상업갤러리 등에서 물꼬를 터주고 있지만 그런 기회가 흔하지 않다. ‘소통을 말하다’전은 큐레이터의 순수 기획으로 마련된 전시다. 홍명혜 큐레이터는 단순히 작가를 초빙한 것이 아니라 ‘소통’을 주제로 전시를 기획하고 여러 작가들과 ‘전시’라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냈다.

“기획전보다는 이벤트성 전시가 많다. 나는 대중들이 꼭 그런 전시만을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대중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줘야 한다. 그리고 사회문제에 대해 얘기를 하는 전시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번 전시도 기획할 때 시대성을 반영하면서 주제의식을 찾았고 ‘전시’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갤러리에 전시된 창작물만 예술이 아니다. 작가의 도움을 받아서 기획자가 생각하는 개념을 하나의 전시로 표현하는 것도 예술이다.”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획, 작품, 전시장, 관람객이다. 전시회가 열리기 위해서는 어떤 전시를 준비할 것인지 기획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획에 맞는 작가들의 작품이 있어야 한다. 물론 작품은 기획 의도나 일정한 수준 이상에 올라야 한다. 그리고 이를 전시할 장소가 필요하고, 전시장에 찾아올 관람객도 있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전시의 요소는 관람객이다. 최근 전시는 관람객이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전시가 잘 준비돼도 관람객들이 오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관람객 없는 작품은 가능해도 관람객 없는 전시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행사다.

홍 큐레이터도 전시를 기획할 때 이러한 점에 가장 주목한다. 자신만 만족하는 전시가 아니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다. 또한 관람객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홍보’에도 매우 신경을 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을 뒷받침해주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왜 전시를 하고 무엇을 알려줄 것인지 개념을 정확하게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큐레이터의 역량이 절실한 이유다. 그래야만 작가 섭외나 전시가 틀어지지 않고 진행된다.

“현재 활동하는 작가 중에서 나와 생각이 맞고 작품도 맞으면, 작가와 미팅을 잡고 이런 전시를 하고 싶다, 이런 신작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나눈다. 전시 주제는 큐레이터가 정하게 돼 있지만 작가도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참여 안 한다. 일정이나 주제가 맞지 않아 전시가 성사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서로의 의견을 잘 맞춰야 한다.”

전시 주제는 큐레이터가 잡는다. 전시 주제는 작게는 일상생활에서부터 크게는 전 세계적인 문제까지 매우 많다. 이러한 주제들 가운데 하나를 선정하고 어떤 작가의 작품으로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숙고한다. 이번 전시도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기획안을 작성해서 작가에게 보낸 뒤 참여 여부를 물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3명의 작가가 모두 기획안에 찬성을 했다. 1단계, 2단계, 3단계 기획자의 의도에 맞춰 개별 미팅을 잡고 작가와 함께 작품을 선정한 뒤 머릿속으로 작품을 디스플레이를 했다. 전시를 준비하는 작가들에게 신작 지원금을 줬다. 또 액자도 새로 제작하도록 했다. 하지만 많은 지원을 못해주기 때문에 기획자로서 작가들에게 늘 미안하다. 그리고 전시가 시작되기 이틀 전부터 작품이 갤러리에 도착했다. 작가가 직접 작품을 설치하고 드로잉해서 전시장을 연출했다.”

전시의 모든 것은 큐레이터의 머리에서 시작해 큐레이터의 손발로 끝난다. 그만큼 큐레이터는 전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대로 전시를 구성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큐레이터 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 때 미술시장이 부흥이었을 때 큐레이터는 젊은이들 사이에 유망 직종이었다. 현재 전문 큐레이터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홍명혜 큐레이터에게 어떻게 하면 큐레이터가 될 수 있는지 물었다.

“큐레이터가 되려면 자신의 생각을 키워야 한다. 기획이 결과물로 나오는데, 굉장히 무서운 거다.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 자신을 키우고 똑똑해져야 한다. 미술만 안다고 큐레이터가 될 수 없다. 편향된 시각으로 사회를 보지 말고, 신문도 많이 보고,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훌륭한 큐레이터가 될 수 있다.”

언론과 콜렉터, 관람객들은 항상 작가들만 주목한다. 큐레이터들은 뒤에서 전시를 지원해주는 사람으로만 비친다. 큐레이터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큐레이터들은 작가에게 주목해주는 것을 바란다. 그럴 때면 기획자 입장에서 마음이 흐뭇하다. 작가가 없다면 내 생각을 표현하지 못한다. 전시에서 작가란 그런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