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김윤옥, 김현선, 이하나 비움과채움 실무진 - 나눔의 실천이 공영의 길

이동권 2022. 9. 29. 19:06

김윤옥, 김현선, 이하나 비움과채움 간사


얼마나 채워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오히려 채움은 비움으로써 가능해지지 않을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힘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한 번 정도는 자신에게 물어볼 질문이다. 어떻게 하면 돈의 노예가 돼 가는 이 공허한 세상에서 마음을 채울 수 있는지. 노자는 그랬다. 물질은 채우면 채울수록 탐욕을 일으키고, 마음은 비우면 비울수록 평온을 선사한다고.

뭔가를 채우기 위해 목마른 사람들에게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진리를 몸소 경험토록 하는 단체가 출범했다. 일상 속의 자잘한 실천을 모아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광명지역공동체 ‘비움과채움(비채)’이다. 비채는 마을가게 ‘살림’에서 나오는 이익금 전액과 여러 회원들의 CMS후원으로 기금을 마련하고, 나눔단체 ‘보탬’을 통해 이 기금을 지역사회에 환원한다.

비채를 이끌어가는 ‘미소천사’ 3인방을 만났다. 사업 추진을 담당하는 김윤옥 대표와 마을가게 ‘살림’을 담당하는 김현선, 나눔단체 ‘보탬’ 부문을 담당하는 이하나 간사다. 이들은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며 살고 싶은 인생의 책무를 어깨에 짊어졌다. 그래서 매 순간 자신의 부족한 점을 생각하도록 성찰을 요구받고, 어떠한 어려움에도 가치 있는 삶을 완성하도록 스스로 채찍질하고 있다.

김윤옥 비채 대표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는 ‘자유’와 ‘평등’이다. 김 대표는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비채에 참여하게 됐다. 김 대표가 생각하는 자유와 평등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그의 화두는 늘 혼자가 아니라 ‘함께’이고, ‘더불어’ 사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자유롭게 살기를 원한다. 개인의 자유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주거, 교육, 복지 등 사회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또 나는 혼자 자유롭고 싶지 않다. 모두가 자유롭게 사는 세상을 원한다. 이것이 내가 얘기하는 평등이다.”

비채의 마을가게 ‘살림’을 이끌어가고 있는 김현선 간사는 비우고 나누는 삶에서 가치를 찾는다. 각자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눔과 사랑의 실천이 공영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해주고 싶은 것이다. 자기 것을 내어 놓을 때야 비로소 사랑이 채워지고 행복이 만들어진다는 단순한 진리다.

“비우고 나누는 삶이 질적으로 높아지기 위해서는 공동체, 지역현안 문제에 대해 모두가 함께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공동체의 핵심은 나누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소유하는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비채가 단지 나눔이라는 봉사에서 한 차원 더 높아지려면, 지역주민들의 희로애락까지 모두 담아내는 단체가 돼야 한다.”

비채의 나눔단체 ‘보탬’을 이끌어가고 있는 이하나 간사는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추구한다. 돈이나 명예를 채우기 위해 불행의 늪에 빠진 우리의 모습에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묻는다. 또 자신의 삶을 통해 어떤 삶이 진정 가치가 있는 것인지 증명해 보이고 싶은 당찬 마음도 있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조건이 돈은 아니다. 주변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다 바쳐서 돈을 벌고, 돈을 벌면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다시 그 돈을 쓴다. 나는 돈이 많지 않아도, 최소한의 경제생활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고,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 또 일하면서 즐거웠으면 좋겠다. 비채를 준비하면서 힘도 들었지만 내 선택에 만족하고 무척 즐겁다.”

아름다운 가게와는 차원이 다르다

함께 나누는 삶을 제시하는 ‘비움과채움’은 새로운 ‘공동체’를 꿈꾼다. 공동체. 너무도 듣기 좋은 말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대로 된 공동체를 만들어내기는 너무도 힘든 일. 비채 3인방도 그런 점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김윤옥 대표는 지역에서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청소년 공부방, 정당활동, 청년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지역공동체에 대해 고민했다. 아울러 김현선 간사도 한 진보 언론에서 근무하면서 힘겹고 어려운 현실, 답답하고 참혹한 사회의 이면을 너무도 잘 알고 있고, 이하나 간사도 청년회 회장을 하면서 지역 현안과 청년들의 고민, 앞으로 지역사회에 필요한 일들에 대해 짬이 찰대로 찼다. 결국 이들이 선택한 것은 생계 문제와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비움과채움’. 완전한 환희였다. 하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욕심부리지 않고 하나하나 내실을 기하면서 제대로 만들어 볼 생각이다.

그러나 항간에는 비채가 아름다운 가게와 똑같지 않으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움과채움은 아름다운 가게와 다르다. 아름다운 가게는 중앙에서 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된다. 하지만 비움과채움은 상근활동가와 지역주민들로 구성돼있는 운영위원들이 정기적으로 회의를 하고 이 구조 안에서 모든 중요한 평가와 결정이 이루어진다. 또 비움과채움은 지역의 자체 브랜드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기증해주는 물품을 되팔고 지역의 문화센터와 동아리 등에서 재능기부해주는 생활소품을 상품화한다. 비채는 재활용과 후원, 재능 기부를 통한 지역 맞춤형, 밀착형 지역공동체 사업이다.”

비채는 나눔의 방식 또한 아름다운 가게와 다르다. 이익금 전액과 후원기금은 나눔단체 ‘보탬’을 통해 지역복지사업에 모두 환원된다. 대학생과 취약계층의 자녀들을 1:1로 연결해 학습을 지원하는 멘토링 사업을 한다.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취약계층의 학생들에게 주2회 학습지원을 하고, 공부를 가르치는 대학생들에게는 활동비를 주는 사업이다. 이와 함께 재능기부 등을 통한 문화체험학습도 병행해서 시행한다. 사업대상은 주민 센터나 지역 활동가에게 자문을 구하고 직접 방문조사로 선정한다. 또한 ‘보탬’은 장애인 오케스트라를 운영한다. 우선 발달, 지적장애 학생 2명을 대상으로 시행하면서 오케스트라를 안착시킨 뒤 점차 확대할 생각이다.

“한 명은 피아노, 한 명은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이 학생들에게 음악전문가인 멘토가 붙어 재능을 기부한다. 이 학생들은 이제 20살 청년이 됐는데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전혀 없다. 비채는 이 부분을 메꾸어가고 싶다. 이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하면서 음악을 할 수 있도록 기반 마련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

‘비채’는 1:1멘토링과 장애인 오케스트라 사업과 별도로 운영위원회에서 분기마다 지역주민들이 요구하는 사항을 들어줄 예정이다. 예를 들면 한 동네에서 주민들이 쉴 수 있는 평상을 요청하면 운영위원회 회의를 거쳐 평상을 놓아주는 것이다. 주민들이 직접 후원에 참여하고, 자신이 기부한 것들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가는 순환형식이라고 보면 된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시작해도 때때로 찾아오는 어려움에 질식할 때가 찾아온다. 비채도 마찬가지다. 비채를 운영하고, 안정적으로 나눔 사업을 진행하려면 돈도 필요하고, 사람도 필요하다. 이뿐이겠는가. 비채 3인방의 고민을 직접 들어보았다.

김윤옥 대표는 사업을 책임지는 것이 부담스럽다. 또 각 구성원들이 자유의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일도 고민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구성원들이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주면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외부적인 환경에 의한 것은 큰 부담이다.

“내 나이가 어리다. 그래서 결혼했냐, 몇 살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부담스럽다. 한편으로는 복지사업을 하는 기관과 단체들이 지역에 많다. 이들 사이에서 비채의 차별성을 부각하는 일도 고민이다. 그러나 잘 해결될 것이다. 나에게는 두 가지 인생 기조가 있다. 하나는 ‘오지랖이 세상을 바꾼다’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마음을 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다.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진심을 알아줄 것이다. ”

김현선 간사는 처음 이 사업을 시작할 때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다. 가게, 출자금, 물품 등 실체가 눈앞에 보이지 않아서다. 하지만 지금까지 길을 내디뎌 오면서 걱정은 기대로 바뀌었다.

“지역에서 활동을 해온 사람들, 평소 봐왔던 사람들이 비채를 밀어주고 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사태를 겪으면서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들을 만나고 설득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다. 사업내용이나 구성원, 우리의 진정성보다 일단 먼저 흘겨본다. 우리가 꾸준히 해 간다면 잘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내가 광명지역을 잘 모르고, 사람들을 잘 모른다. 그래서 내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아직도 고민이 많다.”

이하나 간사는 사람 만나는 것을 가장 힘들어했다. 가만히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을 좋아하는 성격은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이 일과 극명하게 갈렸다.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서 비채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얘기하고 설득하는 게 힘들다. CMS, 물품후원 등을 요청하는 것도 쉽지 않다. 첫 만남에서 모두 호의적인 분만 있지 않다. 이런 점을 극복해 가는 게 숙제다.”

비움과채움은 정부보조금을 받지 않는 비영리 단체다. 따라서 관에 얽매이지 않아 비채만의 자율성과 자주성, 역동성이 보장된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참여 없이는 운영되지 않는 난점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상근활동가 숫자를 늘릴 생각은 없다. 자원봉사와 운영위원으로 부족한 부분은 채워나가면서 안정화에 주력할 방침이다. 그러나 당장 창고, 오케스트라 연습관, 학습관 등의 공간과 자금마련이 절실하다. 그래서 비채 3인방은 여태까지 몸과 마음,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이 더욱 고맙다.

“도움 주신 분들이 많다. 1백만 원을 흔쾌히 내주신 고액출자자들이 있다. 쉽지 않은 일일 텐데, 그 마음이 고맙다. 그런 분들 때문이라도 꼭 성공해야 한다. 또 명예회원 분들에게도 고맙다. 액수를 떠나 소액기부해주신 분들도 고맙고, 지역 선배님들도 고맙다. 비채를 위해 함께 움직여주고, 지역에 역동을 일으켜주고 있다.”

인류 최고의 로망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내 것과 네 것을 나누지 않는 세상이다. 한 차원 더 높은 로망이라면 무소유의 사회. 그러나 이러한 사회는 그냥 오지 않는다. 과연 그런 사회가 도래할 지도 의문이지만 혼자만 잘 살면 된다는 ‘야만’과 더불어 잘 살고 싶은 ‘나눔’의 기로에서 인류의 진보를 위해 뱃머리를 ‘나눔’ 쪽으로 틀면 조금은 가능해질 것이다. 그런 면에서 비채 3인방은 참으로 어려운 일에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