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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신수진 화가 - 자연의 즉흥 변주곡 생성·성장·소멸

신수진 화가


부드럽고 청초했다. 마른풀 위에 누워 바라보면 정말로 좋을 것 같은 그림이었다. 어둠을 뚫고 하늘로 올라간 불꽃이 어느 순간 아름다운 호를 그리다 펑펑 터지는 모습처럼 황홀했다. 너무도 눈이 부시고 따뜻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그림은 동시에 불안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불꽃도 언젠가는 꺼지지 않은가. 가만히 쳐다보노라면 세상의 모든 일도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며, 짧고 강렬할수록 더욱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매혹적인 불꽃을 내며 어둠을 질주하다 갑자기 꺼져버리는 절정의 아름다움. 신수진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불꽃놀이’를 상상했다.

불꽃놀이는 인간의 모든 욕망의 이면을 상징한다. 그 아름다움의 귀중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끌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영 어둠에 묻힐지 모른다. 그럼에도 세상은 별로 반응이 없다. “그래, 그래” 대꾸하면서 자꾸 앞으로 달려가고 있을 뿐이다. 신수진 작가가 ‘수공’의 가치나 ‘자연’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작업에 열중하는 이유도 이러한 범주의 것이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이끄는 길을 따른다. 또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컴퓨터 작업을 하면서 느꼈던 거부감, 즉 인공적인 것에 대한 반발심도 자연으로의 지향점을 찾도록 만든 중요한 이유가 됐다.

“현대사회는 과학과 문명의 발전에 상당한 은덕을 입고 있지만, 그로 인해 환경과 생태계의 변화에 따른 재해, 인간성 상실에 의한 비극적인 사건과 사고, 유전 공학의 발달로 인한 생명 복제 등의 위기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나 역시 현대 문명의 혜택을 입고 또 누리며 살아가고 있지만, 인공적인 도시 환경과 기계 문명의 발전 속도에 때로는 불안함을 느끼며, 의식을 혼미하게 만드는 산만한 자극들과 감각의 공해들에서 일탈하고픈 욕망을 갖게 됐다.”

늦가을의 노을은 황금빛이다. 들녘에도,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한 수목과 논밭에도 황금빛이 드리워 또 다른 색을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통상적으로 ‘황금빛’이라고 부르는 노을의 색은 날마다 다르다. 육안으로는 선명한 차이를 발견할 수 없어도, 태고 이래 똑같은 빛으로 들판을 물들인 적은 없다. 또 울퉁불퉁한 대지 위로 넓게 퍼져가는 모양도 제각각이다. 사진으로 찍거나 회화로 재현해 벽에 걸어놓지 않는 한 늘 다른 옷을 입는다.

신수진 작가도 자연에 관심을 돌리면서 자연을 구성하는 것들의 미묘한 차이에 마음을 빼앗겼다. 서로 같지 않고 각각 고유하고 개별적인 모습을 가졌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우주나 바다와 같이 광활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작고 평범한 이미지에 더욱 흥분했다. ‘물의 흔들림, 새로 돋은 새순이나 피어나는 꽃들, 흩날리는 꽃잎들, 길에 뒹구는 낙엽들’처럼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작고 가벼운 존재들에게 말이다.

“존재하는 모든 자연적 존재는 아무리 보잘것없는 작은 존재라 할지라도 존재론적으로 개별성을 갖고 있으며, 형태론적으로도 그 어느 하나 서로 동일하지 않고 미묘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고유성을 가진 자연물의 외관에서 역설적으로 ‘반복’이라는 특성이 발견된다. 수없이 많은 자연물에서 발견되는 반복적 요소는 기계적이고 일률적인 반복이나 형식적 동일성을 가진 반복과는 다르다. 그것은 역동적으로 변하면서도 동일성을 잃지 않는 반복으로 놀랍도록 다양하며, 오히려 이런 반복을 통해 차이가 만들어진다. 들뢰즈(Gilles Deleuze)는 ‘차이 나는 것만이 반복된다. 만일 A와 A가 완벽하게 동일하고 차이가 전혀 없다면 A는 더 이상 반복될 이유가 없다’라고 했다. 이러한 다름과 차이로 인해 하나하나가 존재의 가치가 있는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런 생각이 나의 작업을 통해 드러나기를 바라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아무리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가치 있는 대상으로 환원했으며 커다란 이미지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정지된 이미지에 시간성을 부여했다. 마치 화폭 안의 물체들이 스스로 움직이면서 생성과 성장과 소멸이 반복하는 것 같은 효과를 줬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시시각각으로 안정감과 불안함을 동시에 유발한다.

“생명체는 자라고, 노화되고, 결국 소멸되기 때문에 시간을 초월하지 못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갖게 된다. 즉 자연의 특성은 시간에 복종하면서도 시간 속에서 스스로의 특질을 진화시켜 나가는 데 있으며 여기에 생명력의 근거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이 지속적인 움직임 상태에 있는 반면 회화의 요소들은 일단 제작이 끝나면 어떤 움직임도 없이 정지된 상태로 존재하게 된다. 이렇게 고정돼 있는 회화 작업이 자연과 같은 변화를 갖게 하기 위해서는 시간적인 움직임이 도입돼야만 한다. 이런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개체들을 다시 계속해서 반복시켰다. 그 결과 선과 형태들이 겹쳐지고, 또 그 겹쳐진 선들이 시각적인 다층적 공간을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연속적으로 변주하면서 스스로 생성되는 프랙털(자기 유사성인 모양이 계속 나타나는 것) 공간과 닮은 비정형적 이미지를 생성하며, 미시적으로 나타나는 반복적인 요소들의 연속성은 시각적인 흔들림과 움직임을 제공하게 된다. 동일한 형식의 구성이 반복되면 시선을 이동시켜 동적인 느낌을 주게 되어 리듬이 생기며, 시각의 흐름을 이동시키면서 시선을 어느 쪽에 고정시켜야 되는지 혼란스럽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는 동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하기 위해 세포와 같은 최소 단위부터 출발했다. 원소나 원자로 연결돼 하나의 형태를 만드는 것이 자연의 구성원이라 여기면서, 이들을 복제하고 반복시켜 생명력을 부여했다. 즉 구체적으로 자연의 모습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 단위들이 우연적으로 겹쳐지고 흩어지면서 분명한 외형을 잃은 유기적인 이미지가 되도록 했다.

“개별적인 단위가 모여 하나의 형상을 이룬다는 것은 그다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각각의 작은 개체들은 자연적인 형상을 암시하지만, 어떤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재현한다기보다는 복수로 화면을 메우고 있는 군집의 형상을 갖게 만들었다. 이것은 기능적이고 기하학적인 경향을 가진 인공물의 특성과 대조되는 순환과 반복, 변화를 암시한다. 그리고 작은 이미지들이 반복적으로 중첩된 결과로 생성된 이미지는 언젠가 보았던 자연의 풍경과도 같이 개인적이고 경험적인 상황에 대한 기억을 감성적으로 환기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는 판화기법을 이용한다. 하나하나 개체를 그리고 판을 만들어 그 판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찍어내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판화에서 ‘판’은 복수 제작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다. 하지만 그의 판은 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선택’과 ‘변화’의 여지가 존재한다. 한 판으로 여러 장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개체 이미지들이 모여 있는 판을 또 하나의 단위로 삼아 한 화면에 여러 번 중첩시키며 찍을 수도 있다. 그래서 판과 판화의 이미지가 동일하지 않으며, 본질적으로도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진다. 판이 찍히는 방식과 조건에 따라 서로 다른 판화 이미지들을 생성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작업은 기존의 판화작업과 변별력을 갖는다.

“이렇게 제한된 조건이라는 판을 가지고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마치 같은 유전자에서 다른 생김새와 성격을 가진 개체들이 태어나는 자연적 현상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또 고정된 판보다 다양한 변수를 가진 판화 이미지의 특성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진행시킨다는 것은 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하나의 판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수많은 판화 이미지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상정한다. 판을 찍어내는 방식, 찍히는 표면, 사용하는 잉크, 잉크를 닦아내는 정도, 압력 등 모두가 프로세스 중에 생기는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의 경우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 과정에서 일어나는 오랜 시간의 반복 행위는 개체들의 불완전함을 극복해나가는 과정과 같다. 인위적으로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보다 작은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형태를 구축해나가면서 비본질적인 가치와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반복적인 작업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고, 고된 인내를 요구한다. 그가 ‘작품 사이즈를 키워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한계를 느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작업의 결과로 작품이 갖게 되는 시간의 두께는 그것이 만들어지는 동안 체험되는 작가의 감정과 삶을 고스란히 담게 된다. 그렇기에 작업 자체는 단순한 형태의 반복이지만 어느 순간 그것들은 축적된 힘이 돼 그다음의 형태로 진행하는 원동력이 된다. 긴 시간을 요하는 수공적인 작업은 빠르고 복잡하게 변화하는 현실의 속도와 상반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손으로 이뤄지는 공정은 느리고 부정확하지만 그렇기에 어느 하나 동일하지 않은 유일함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신수진 작가는 “마음이 따뜻하고 편안해지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예술의 사회적인 역할 못지않게 점점 각박해져 가는 세상의 시름을 자신의 그림이 어루만지고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