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대학 캠퍼스를 걸었다. 기분이 무척 상쾌했다. 명료하지도, 평탄하지도 않았던 청춘시절. 그래도 이곳을 드나들 때마다 언제나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있었고, 공부는 게을리했을지라도 무언인가 되고자 했었던 열정만은 가득했었다. 제아무리 멋진 곳을 구경시켜 준다고 해도 이곳에서 느끼는 젊음의 광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소설의 제국』의 저자 김욱동(60) 한국외국어대 통번역학과 교수를 만나러 가는 길도 그 시절의 설렘과 비슷한 감정이 가득했다. 미국 문학에는 ‘깡통’에 가까운 내가 다시 배움에 목이 마른 학생이 된 듯해서다. 김 교수는 내 마음을 알아챈 듯 따끈따끈한 책 앞장에 친필로 사인을 해주며 말했다.
“이 책은 원작을 읽은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썼다. 글을 읽으면서 놓쳤던 부분들을 이 책을 통해 한 번 더 생각해 봤으면 해서였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소설의 원작을 읽지 않은 독자들도 생각했다. 작품을 보기 전에 비평을 먼저 읽는 것이, 식사를 하기도 전에 디저트를 먹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운 면이 있어서다. 하지만 아직 원작을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후식이 아니라 전채요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읽거나 나중에 읽거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 미국 소설인가
미국이 다른 문화에 손을 내미는 방식은 언제나 ‘미국은 좋은 나라’였다. 평화와 정의를 추구하며, 다양성과 인권을 보장하는 아름다운 나라라고 자임했다.
미국은 말과 행동이 달랐다. 미국에 대항하는 나라는 자국의 기본 원칙에서 어긋난다는 이유로 제재를 가했고, 일방적으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스스로 부여해 최고의 국제범죄라고 할 수 있는 침략 전쟁까지 일으켰다. 이로 인해 세계는 전쟁과 테러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고, 헤어날 수 없는 갈등 상황이 계속해서 벌어지게 됐다. 그러나 미국은 오히려 너무도 자신만만했다. 정의를 수호한다는 말로 스스로 정당화했다. 이와 같은 뻔뻔함의 뿌리는 과연 무엇일까.
김욱동 교수는 ‘열등감’에 주목했다.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건너온 사람들이 처음에는 열등감을 느꼈지만 점점 정치적, 군사적으로 막강해지자 도리어 세계를 제패하려는 꿈을 키웠다는 것. 그는 이러한 미 제국주의의 속성을 소설이라는 렌즈를 통해 『소설의 제국』으로 해부했다.
“미국 사회가 표방하는 자유민주주의의는 인종차별이나 지나친 물질주의 숭배로 역기능을 낳았다. 이런 미국 사회의 모순과 양면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톰 소여가 상징하는 낭만주의에 대한 비판은 곧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환상과 이상주의에 입각한 톰의 행동은 단순히 문학 전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미국이 신생 국가로 태어나면서부터 안고 있는 모순을 보여주기도 한다. 미국은 자유와 평등의 깃발을 높이 내걸고 출발하였지만 그러한 민주주의의 이상은 인종차별과 인종 분리의 현실과 맞부딪치면서 그 빛을 잃는다. 미국처럼 정치적 이상과 역사의 현실 사이에 그렇게 큰 괴리가 잇는 나라도 찾아보기 힘들다.
할리우드 문화의 침략
미국은 광범위적인 문화적 침략을 시작했다. 맥도널드와 코카콜라처럼 미국을 상징하는 상품들을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둔갑시켜 세계 경영을 꿈꿨다. 비행기가 내릴 수 있는 곳이라면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어디든지 찾아가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심어놓았다. 또 계급적 노동조합이 없는 곳으로 이동해 최고의 착취와 통제를 강화했다. 한국 사회의 진보 세력들이 일본과 미국의 식민 점령을 시작으로 반제국주의 투쟁에 나서고, 지속적으로 미국 침략군을 막아내려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김 교수의 생각은 한 발 더 나아가 있다. 미국은 할리우드 영화로 대표되는 대중문화 상품으로 세계를 제패하고 있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문학의 대표 영역인 소설로 세계를 정복할 야망을 품고 있다는 것. 그는 “이러한 미국의 야욕을 어느 정도 실현됐는지에 대한 평가는 독자들의 몫이겠지만 영어의 세계화라는 날개를 달고 더 큰 추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미국은 제국주의적인 시각으로 일상문화를 통해 세계를 제패하려고 한다. 이미 맥도널드제이션, 코카콜로니제이션이라는 단어는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할리우드(대중문화) 문화는 오락, 흥미 위주여서 미국 사회가 왜곡돼 있거나 잘못 표현돼 있다. 할리우드 영화만 보고 미국을 낭만적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그 화려한 스크린 이면에 추악한 문제가 많이 있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미국 할리우드는 세계의 영혼을 지배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람보는 인종차별적인 영화다. 미국만이 아름답고 강한 곳, 그 외의 나라는 야만인으로 보고 있다.”
세계화에 편승한 미국의 위선
세계화의 이데올로기는 자본의 확산으로 표현되지만 문화의 침투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의 문학 역시 역사는 짧지만 영국 문학의 영향 하에 급속한 성장을 이뤄냈으며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신생국가로 발전하면서 미국적 문학 양식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어 막강한 힘으로 세계를 지배해가면서 덩달아 문학도 세계를 점령해 들어가고 있다. 김 교수가 『소설의 제국』을 집필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도 그것이다.
“한때 몇몇 유럽의 예술가들은 ‘미국에도 문학과 예술이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진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물음은 그동안 미국에 대하여 느껴온 열등감을 해소하려는 혐의가 짙다. 두말할 나위 없이 미국에도 문학과 예술이 엄연히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의 문학과 예술과도 이제 어깨를 나란히 견줄 수 있다. 특히 소설 분야에서는 세계 문단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미국 문학은 그동안 괄목할 만한 업적을 쌓았다. 이제 미국 문학하면 어떤 장르보다도 먼저 미국 소설을 떠올리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앞으로 문학도 멀지 않았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를 비롯해 몇몇 소설들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제 미국 소설이 세상을 지배할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인류 역사에서 그 어느 때보다 다양성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지금, 그런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무의식 속에 녹아든 미국의 자화상
김 교수는 ‘소설의 제국’에서 백인 작가들의 텍스트 속에 들어 있는 미국의 자화상을 끄집어냈다. 겉으로 보이는 표면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언어로는 표현되지 않은 무의식적인 시각이다. 비평 방식은 전통적인 방법을 주로 사용했지만 최근 문학 비평에서 주목받고 있는 ‘문화연구’를 도구로 삼아 전통적인 비평가들이 눈여겨보지 않았던 인종, 계급, 성차, 자연에 초점을 맞췄다.
“미국은 자유와 평등의 이상을 추구했지만 그 밑에는 인디언 학살, 흑인 노예제도, 지나친 물질주의 숭배가 있었다. 현재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도 나아지고, 제도적으로 개선이 됐다. 하지만 아직도 차별은 존재한다. (그래서 이 책은 유효하다.) 요즘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이 안고 있는 병폐를 다시 한번 점검해보고 싶어진다. 자본주의의 붕괴라기보다 예전의 대공황처럼 단계에서 일어난 장애물이라고 본다.”
추천작 『앵무새 죽이기』
김 교수는 미국 정신을 대표하는 소설 열한 편을 선정해 자세히 분석했다. ‘소설로 읽는 아메리카의 초상’이라는 부제 그대로 소설에 드러난 미국의 가치관, 미국이 지향하는 이상, 미국의 현실 등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아직 번역이 되지 않거나 출판되지 않은 작품은 제외했다. 모두 새롭게 번역돼 널리 읽히는 작품들이다.
이 책에 실린 주요 작품을 살펴보면 ‘미국 문예부흥’에서 견인차 역할을 한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자』, 미국의 셰익스피어로 부르는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왕자와 거지』, 본격적인 의미에서 미국 최초의 여성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이디스 워튼의 『이선 프롬』 『여름』, 재즈 시대의 황제로 일컫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청년 문화 또는 반문화의 기수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단 한 권의 소설로 미국 문단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흑인 여성 소설가이며 시인인 마여 앤젤루의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단편소설의 위상을 한 단계 작가 오 헨리의 작품 등이다. 이 중에서 그는 『앵무새 죽이기』라는 작품을 독자들에게 추천했다.
“『앵무새 죽이기』는 타자에 대한 관심을 강조한 책이다. 흑인이 백인의 타자라면, 앵무새는 인간의 타자다. 이 책은 백인 중심의 사회에서 가치 박탈을 체험하며 살고 있는 ‘흑인’과 문명 발달에 매진해오면서 파괴된 ‘자연’에 대한 배려를 말하고 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기를 원하는 작품이다. 한국은 세계 6번째의 다인종 사회다.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억압받고 있는 소수자들을 배려하고 이해했으면 좋겠다.”
『앵무새 죽이기』가 단순히 미국에 국한된 인종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보는 것은 좁은 생각이다. 물론 구체적인 역사적 시간과 지리적 공간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작품이 다루는 문제는 좀 더 근본적인 삶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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