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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연익모 대한국궁문화협회 총재 - 국민 세금으로 만든 궁술 원형 무시는 직무유기

연익모 대한국궁문화협회 총재


조선 수군이 쏜 화살은 청명한 밤하늘을 가르며 적진으로 날아갔다. 왜군들은 우박처럼 쏟아지는 화살에 맞아 그 자리에서 푹 고꾸라졌다. 불화살은 왜군 범선의 갑판과 돛대 가운데 꽂혔다. 불길을 피해 달아나다 활대 끝에 매달린 왜군들은 배안이 온통 화염에 휩싸이자 바다로 하나둘씩 몸을 던졌다. 봄바람처럼 잔잔했던 바다는 이내 아가리를 벌리고 불타는 배와 왜군을 한 번에 집어삼켰다. 대승이었다.

오백 년을 거슬러온 지금에도 신궁의 후예들은 비상하는 독수리처럼 올림픽 금메달을 낚아챘다. 몰아치는 비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과녁 정중앙에 화살을 꽂았다. 외세를 물리친 뒤 활과 창을 치켜들고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던 우리 민족의 활 솜씨를 다시 한번 만방에 뽐내는 순간이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옛 활쏘기의 맥을 이어 전 세계를 아우르게 된 양궁. 그 뿌리에는 바로 ‘국궁’이 있었다.

활터에서 무시되는 한국 궁술 원형


대한체육회 소속 대한궁도협회가 MBC와 함께 국궁페스티벌을 개최한다. 그러나 민간단체인 대한국궁문화협회는 한숨을 내쉬며 가슴앓이 중이다. 활쏘기의 원형조차 정리되지 않아 전수 자체가 불가능했던 국궁을 바로 세워 놓았지만 대한궁도협회가 이를 무시하고 행사를 진행해왔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궁술 시범 대신 대한국궁문화협회에서 복원한 궁술콘텐츠를 사용해 달라고 정부에 중재를 요청해도 문화부는 “현재 우리나라의 문화재로 등록된 전통궁술이 없고, 민간단체의 자율성 보장 차원에서 개입을 하지 않겠다”며 뒷짐을 지고 말았다.

 

대한국궁문화협회가 복원한 궁술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철저한 고증과 전문가들의 연구로 정리된 국가공인콘텐츠다. 일이 어디서부터 꼬이게 된 것인지 연익모 대한국궁문화협회 총재를 만나 자세한 속사정을 들어보았다.

"국궁을 시작한 지 13년 됐다. 처음에는 국궁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친구가 활쏘기를 한다고 해서 따라나섰다가 배우게 됐다. 활을 잡기 전에는 운동이 될 것 같지 않아 망설였다. 그런데 한번 활을 당겨보니까,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전신운동이었다. 상체는 힘을 빼고 하체는 힘을 주고, 쓰지 않는 근육을 써야 했다. 활을 쏘고 나면 9시 뉴스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만큼 운동이 됐다. 그래서 국궁에 심취하게 됐다."

그는 왜 대한국궁문화협회를 만들었을까?

 

"나는 원래 대한궁도협회 회원이었다. 그런데 국궁은 술 마시며 활을 쏘는 놀이문화일 뿐이었다.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건의했다. 전통문화로 만들어 계승하고 국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한체육회의 지시에 따르면 된다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대한궁도협회에서 나와 사단법인을 만들었다. 우리 협회는 국궁의 원형을 복원했다. 국궁을 국기로 내세울만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후세에 국궁을 남겨주기 위해 국궁교본도 만들었고 복장, 장비까지 모두 정비했다. 아주 큰일을 했다고 자부한다. 2005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 한국 궁술의 원형 복원을 위한 디지털콘텐츠 개발사업자로 신청해 대상기관이 됐다. 진흥원으로부터 총사업비 3억 4천만 원을 지원받아 각계 전문가들을 동원해 국궁의 원형을 복원했다. 이전에는 활쏘기 표준 동작조차 정리된 것이 없었고, 궁술원형이 정리되지 않아 정확한 사법을 배울 수 없었다. 또 협회에서는 국궁지도사자격증도 발급하고 있다. 국가가 인정한 자격증이다. 총리실 산하기관인 한국직업능률개발원에서 민간자격증 등록 접수를 받은 적이 있었다. 민간자격증이 난무하니까 정리에 나선 것이다. 이때 우리 협회는 국궁 관리기관으로 등록됐다. 뿐만 아니라 특수 분야 연수기관으로도 지정됐다.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교원들을 대상으로 한 국궁지도자자격연수 기관으로 우리 협회를 지정해 학교선생님들에게 교육했다. 선생님들이 너무 좋아했다. 서울시 문화재국을 찾아가 중요무형문화재도 신청했다. 서울시는 ‘국궁활쏘기사법’이 전승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고, 현재 서울시문화재심의위원회를 통과해 문화재청에 4188호로 제청된 상태다. 청와대에서 외국 국빈 행사를 주요업무로 하는 국방부 전통대대에서도 우리 협회에서 복원한 동개(활집)와 시복(화살집)을 구입해 사용하며, 방송사에서 역사드라마를 찍을 때도 이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문화부 산하 국민생활체육협의회에서 전통 무예인 궁도의 저변확대를 위해 마련한 ‘세계민족궁대축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궁술 시범단이 대한국궁문화협회가 개발한 궁술콘텐츠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일이 있었다. 정확한 사법조차 모르면서 활을 쏘고 있다. 원형이 없다 보니 각 활터마다 사법이 제각각이다. 우리 협회에서 궁술원형문화콘텐츠에 근거해 국궁문화의 원천을 마련했다. 하지만 국궁관련단체 동호인들이 이를 따르지 않고 있다. 세계에 우리 민족의 활을 소개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지원 못지않게 올바른 활쏘기의 전수와 보급이 절실하다. 이런 점들이 무시되고 있어 그랬다. 대한체육회에도 공문을 보내 시정을 요구했지만 아무런 답도 주지 않았다. 대한궁도협회 회원들에게도 우리 협회에서 국궁의 정체성을 마련했으니까 합법적으로 배워서 전파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 협회에서 나와 우리 협회로 오라는 말이 아니다. 대한궁도협회는 대한체육회에 소속으로 거기에서 재정적인 지원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 협회가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고 앞으로 나서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대한궁도협회가 업무방해로 우리 협회를 서울북부지방검찰청에 21건이나 고소했다. 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모두 취하됐다. 국민의 세금으로 복원한 한국 궁술의 원형을 무시하는 것은 직무유기라 생각한다. 국궁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꼭 정리돼야한다. 대한국궁문화협회는 공인된 사업의 성과를 토대로 국궁의 저변확대와 민족문화 발전을 위해, 나아가서는 국가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임의단체, 친목단체인 대한궁도협회가 궁술문화의 원형이 복원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활쏘기대회를 열면서 이를 따르지 않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활은 예로부터 전쟁 때 사용했던 무기였다. 관리 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사고의 위험도 있을 것 같다. 

 

"국궁장은 등록이나 신고시설이 아니라 레저종목의 하나로 분류돼 있어 누구나 손쉽게 활을 쏠 수 있는 곳이다. 서울시도 마찬가지다. 서울에 있는 8개 국궁장은 대부분 조선시대 활터로 이용됐던 장소로 국궁단체나 자생적 동호회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별다른 관리감독을 하지 않는다. 국궁장은 전국적으로 330개에 이른다. 하지만 안전하면서도 위험한 스포츠가 국궁이다. 활에 맞으면 사람이 죽는다. 실제로 충남 금산에서 25세 남자가 활터에서 후두부에 화살을 맞아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국궁의 보급을 위해서 얘기하기가 꺼려지지만 국궁장에 대한 관리 감독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처럼 사고가 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