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와카마츠 코지

②와카마츠 코지 - [인터뷰]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

이동권 2022. 9. 3. 16:12

와카마츠 코지(Wakamatsu Koji) 감독


예술은 자심과 매우 가까운 벗이다. 벗이 괴로울 때는 얼굴만 봐도 금방 알아챌 수 있는 것처럼 예술은 작가의 심상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다. 서로 다른 생활을 하고, 서로 다른 보금자리에 있다 해도 자기 의지와 어긋나지 않게 벗은 행동한다.

와카마츠 코지 감독을 만나기 전, 마음속에서 몽실몽실 피어났던 근심도 이러한 이유였다. '로망 포르노'에 심취한 그의 예술세계처럼 거침 없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매우 큰 인내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추측은 예상을 빗나갔다. 표정에는 공손함과 친절함이 배어 있었고, 주름살에는 상대방을 즐겁게 하는 명랑함이 깃들어 있었다. 가끔 천진난만하게 웃을 때는 매우 어리숙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으며, 배꼽을 잡고 웃다가도 가만히 생각에 잠길 때에는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예언가처럼 섬세한 인상을 풍기기도 했다.

와카마츠 코지 감독을 만났을 때는 1972년 아사마 산장에서 최후를 맞은 연합적군(적군파)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준비 중이었다.

 

연합적군은 1971년부터 1972년까지 활동한 일본의 신좌파 테러조직이다. 공산주의자동맹 적군파(일본 적군파)와 일본공산당(혁명좌파) 가나가와현위원회(게이힌 안보공투)가 결합해 결성된 조직이다. 연합적군은 일본 항공의 항공기를 여러 대 납치하고,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에서 대규모 처형을 감행했으며, 여러 나라에서 대사관을 점거하는 등 주요 테러 작전을 잇따라 감행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심각한 분쟁을 겪었고, 파벌싸움으로 결국 1972년 호전적인 단원들이 동료 14명을 처형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일본 사회는 충격에 빠졌고 정부는 단원 대부분을 체포했다. 연합적군은 1990년대까지도 간헐적으로 테러 행위를 저질렀다. 2001년 초에 단원 일부가 요르단에서 추방돼 일본으로 송환되기도 했다.

"사람을 많이 죽이고 싶었습니다."

와카마츠 코지 감독이 영화에 뛰어든 이유다. 권력에 대한 혐오감, 전쟁에 대한 반감을 영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 그래서 그의 영화는 60~70년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의 분노를 대신 풀어주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선물했다.

"신주꾸 지역을 배경으로 시작한 학생운동이 점점 거세졌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적인 시위가 펼쳐졌죠. 그때까지만 해도 시민들을 그들을 지지했습니다."

1960~70년대 일본에서는 성난 젊은이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반정부 시위를 벌이거나 베트남 전쟁에 참가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끌려가고 죽어가는 현실에 폭발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그의 영화는 젊은이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의 영화 <성의 도적 : 섹스잭(Sex Jack)>을 보면 그 이유를 금방 알아챌 수 있다. 그는 이 영화에서 공권력의 상징이자 하수인이었던 경찰들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죽였다.

"젊은이들이 경찰서를 습격하고 방화합니다. 경찰들을 하나둘씩 죽이는 거죠. 학생들을 잡아가고, 폭력을 일삼았던 경찰들이 무참하게 죽으니까 얼마나 시원했겠습니까. 현실에서 풀지 못한 것을 영화가 대신한 셈이지요. 영화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을 때마다 슬픔이 찾아왔지만, 경찰들이 죽을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 영화는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이자 그들과 전면적인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다르지 않았습니다. 제 영화에는 공권력의 힘에 밀려 좌절했던 젊은이들, 바뀌지 않는 현실에 대한 슬픔, 점점 고난 속으로 빠져가는 좌파 혁명의 쇠락 등이 영화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대사처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마디로 '시' 같다. 어떤 때는 백납처럼 차갑고 음산하면서도, 어떤 때는 붉은 열매처럼 찬란하고 아름다워 혀를 내두르게 한다. 크게 마음을 드러내 보이지 않아도 그의 감성이 먼저 느껴져 가슴이 몹시 떨린다. 음악은 서정적이지만 격정적이어서, 두 눈을 꼭 감고 있으면 푸른 심연에 가라앉는 느낌, 저항할 수 없는 운명과 마주친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의 심미적인 안목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평소에 재즈 공연이나 라이브 극장을 찾아 음악을 듣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잃어가는 감성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가라 가라 두 번째 처녀> 영화의 음악은 주연으로 출연한 아끼아마상과 함께 작업을 했는데, 이처럼 공동작업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도 합니다."

그의 영화를 추종하는 마니아도 있는 반면 삼류 영화라고 치부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선정적인 화면이 펼쳐지는 동안에도 지루함을 떨치지 못해 잠을 자기도 한다.

"영화 포스터나 제목을 보고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은 섹스를 밝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실망하거나, 외설적인 부분이 외설적으로 느껴지지 않아 성토하고 돌아갑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부터는 스크린과 관객의 싸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자신은 관객들을 배려하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영화에 대해 깊게 생각하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그대로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관객들의 심상이나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자신의 영화는 매우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영화 <17세의 풍경 : 소년은 무엇을 보았는가 (Cycling Chronicle : Landscapes the Boy Saw)>는 야구방망이로 어머니를 때려죽인 17세 소년이 도망을 다니면서 겪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그동안 코지 감독이 탐닉했던 로망 포르노 류의 작품이 아닌 드라마의 형식이다.

"이 영화는 16일 동안 160km를 달려 북쪽으로 간 소년의 '슬픔'을 정면이 아닌 '측면'에서 관찰하면서 자신이 '왜 여기에 왔는지' 스스로 발견해보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일본은 1960년대부터 진실한 역사를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아시아의 진실한 역사를 배우지 못하고 자란 한 학생이 '어머니(국가권력)'를 죽여 응징하는 것은 조국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진정한 '자기반성'이자 '평화'로 이르게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