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사진전과 다르게 텍스트가 많았다.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길 줄 알기 때문이겠다. 사진 설명은 모두 시처럼 읽혔다. <노동의 새벽>이 준 공명이었다.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 단호한 문구가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성장은 끝났다, 석유는 끝났다, 미국은 끝났다.’ 이 문구는 그다음이 무엇이건 간에, 박 시인의 사상적 뿌리를 총괄해 보여줬다.
느닷없이 감동이 밀려왔다. 어떻게 보면 글이나 사진은 넓은 의미에서 창작자의 자화상이다. 이곳에서 읽고 보는 것은 모두 박 시인의 흔적이자 발자취라 할 수 있다.
시와 사진을 창작하는 것도 어렵지만 시인으로, 사진가로 사는 일은 더욱 어렵다. 자신의 사상과 세계관을 일상으로 치환하내지 못한 예술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저 아름답고 아름다우며 아름답다? 그가 아시아를 유랑하면서 사진 찍고 글로 쓴 것은 일종의 ‘실천’. 우리 시대의 모순과 삶의 고통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 ‘고민’이자 희망의 씨앗을 거두고 뿌리려는 ‘사회 변혁운동’이다.
박노해 시인은 “생태위기와 식량위기와 석유위기가 이미 정점에 달한 시대이며, 이런 생활양식은 더 이상 지속불가능하다”면서 “마지막 희망의 종자를 채취하듯 사진을 찍고 글을 썼고, 이를 통해 젊은이들이 다른 길, 다른 삶을 찾을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장의 배경은 모두 녹색이었다. 굉장히 새로웠다. 그 색채에서 세상을 등지지 않고 담담하게 유랑하는 박노해 시인이 보였다. 사진이 아닌 삶을 위해 내딛는 발걸음이랄까. 또 녹색은 감상적 요소를 더욱 북돋아주는 역할도 했다. 우수가 짙게 배어 있는 박 시인의 마음속을 보는 것 같은 감흥. 어깨를 우쭐거리며 후진국 타령을 할 소수 관람객들의 선민의식도 조금은 진정시켜줄 듯싶다.
박 시인은 사진전 제목을 ‘다른 길’로 지었다. ‘다른 길’의 첫 느낌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완전한 탈피였다. 하지만 전시된 사진을 따라 설명을 쭉 읽다보면 ‘다른 길’은 탈피가 아니었다. 자신이 겪었던 과거와 역사적 환경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기 위한 과제였다. 그리고 이 과제는 ‘문명 전환의 길, 삶으로부터 시작된 혁명’이었으며, 삶의 모든 것이 상품으로 취급되는 자본주의를 끝내려는 ‘종언’이었다.
그는 아시아로 떠났다. 성장 위주의 서구 중심 세계관을 뛰어 넘는 대안을 찾기 위해 아시아 민중과 조우했다. 가난하고, 궁핍하고, 아픈 역사를 간직한 아시아가 되레 ‘훌륭한 삶의 원형과 희망의 종자’가 남겨진 땅이라고 믿고 곳곳을 누볐으며, 그들의 삶을 사진과 글로 기록했다. 공식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오지, 문명과 떨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었다.
박노해 시인이 뭔가 대단한 삶이나 사건을 사진으로 남겼다는 생각은 오해다. 박 시인은 보편적인 일상으로 시대의 굴절을 통찰했고, 특별하지 않는 이야기로 우리의 미래를 투영했다. 더하거나 뺄 것 없는 삶 그 자체로 사진보다 그 사진에 깃들어 있는 가치를 찾았다.
사진 속의 사람들은 힘들지만 웃는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서로 나누며 만족할 줄 안다. 그들은 더 많이 가지려고도, 자신이 한 일을 인정받으려고도 하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제 할 일을 묵묵히 해낸다. 현대인들이 스스로 곱씹어보면서 혹독한 성찰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은유하는 삶이다. 그의 사진에서 고단과 행복이 교차해서 보이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박노해 시인은 “사회구조만 바뀌면 내 삶과 인간성이 살아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생존 단계를 벗어나자 사회보다도 삶 자체가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사회에서 약점과 상처였던 것들이 그곳에서는 자원이 됐다”며 “예로 고아원에 가서 내 얘기를 하면 아이들이 펑펑 울며 아들, 딸이 되더라”고 설명했다.
박 시인의 사진은 건강하고 애달픈 서정시다. 따뜻한 감정을 발현하는 정서가 느껴지고, 다시 문명 이전의 가치를 더듬어보는 신중함이 감응한다. 유랑의 흔적이 고스란히 스며든 가운데에도 개인적인 성향이나 자유로운 형태가 강조되지 않은 점은 매우 특이하다.
사진 그대로도 특별하다. 그는 흑백 필름과 아날로그 인화로 사진의 깊이와 예술성을 높였다. 또 카메라를 다루는 기교보다는 역광과 절제된 빛을 이용해 사진의 감동을 배가시켰다. 기다림의 미학을 철저하게 구현한 사진들이다. 이를 테면 아침에 전통차 짜이를 끓이는 집 천장 구멍에서 쏟아지는 햇볕을 포착해 드라마틱한 감동을 전한다던지, 작은 배를 타고 고기잡이하는 어부를 역광으로 붙잡아 노동의 경이로움을 극대화하는 식이다.
박노해 시인은 “사진전은 정직한 절망에서 길어 올린 희망 찾기의 몸부림이자 보고서”라면서 “지금 우리에게는 미래가 아닌 희망이 필요하고, 미래 준비가 아닌 지금 바로 우리 삶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노해 시인은 누구?
박노해 시인은 1984년 시집 <노동의 새벽>을 발표했다. <노동의 새벽>은 노동자의 현실을 곧이곧대로 보여주면서 한국사회와 문단에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동안 발표됐던 시들과는 완전하게 차원이 다른 시였다. ‘박노해’라는 이름은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의 줄임말로 군사독재정권의 눈을 피하기 위해 지은 필명이다.
박 시인은 1989년 한국전쟁 이후 사회주의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사노맹(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을 결성했지만 7년 여 수배생활 끝에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1998년 석방돼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됐지만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그리고 2000년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면서 ‘생명 평화 나눔'을 기치로 내세운 ‘나눔 문화’를 설립하고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등 가난과 분쟁 현장을 누비며 평화활동을 했다.
그는 2010년 낡은 흑백사진을 모아 첫 사진전 <라 광야>전과 <나 거기에 그들처럼> 전을 열었고, 12년 만에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출간했다. 이어 2014년 사진전 <다른 길>을 열고 같은 이름의 사진에세이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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