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난다. 기묘한 모양의 크고 작은 오브제들이 은박지에 싸여 바닥, 천장, 벽에 놓이고, 매달리고, 붙어있다. 본래의 곡선과 색상, 재질과 질감이 가려진 채 획일화된 은빛 풍경을 연출한다. 겉으로만 보면 오브제들이 은박지에 싸여 있어 익숙하다. 호일로 싼 분식점 ‘김밥’을 보는 느낌. 하지만 조금 더 깊게 사유하면 낯설다. 나무, 플라스틱, 철재, 종이 등 다양한 오브제들이 은박지 안에서 맨얼굴을 내보이고 싶어 꿈지럭거리는 것 같아 답답해진다. 획일화된 풍경은 오히려 본질을 부정하고, 실체를 파괴한다.
조새미 작가가 은박지로 오브제를 감싼 이유는 여러 가지 있을 것이다. 우선 작업을 하면서 새로운 결과물을 계속 타진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가장 자신감 넘치고, 만족스러운 성과 그 너머의 결과에 대한 작가주의적 탐색이다. 이 탐색이 은박으로 개화한 것은 그가 금속공예가인 까닭도 있다. 비슷한 의미로 조 작가는 탈 장르적인 현대미술의 변화를 따라가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성과를 뽑아내려는 연구일 수도 있다. 공예는 다른 부문의 미술과 다르게 ‘재료’와 ‘장인’에 대한 이미지가 굳어 있다. 따라서 재료와 방법에 대한 공예가들의 새로운 도전은 다른 부문의 미술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비했다.
한편으로는 인체 오브제들이 많아서 그런지 자신이 문제시하는 세상의 부조리를 표현하기 위한 사회적, 철학적 희구로도 보인다. 사람들은 획일적인 사고를 할 때 감성적, 인권적 감각이 마비된다. 지성과 이성도 따라오지 못한다. 나와 다른 얼굴과 몸, 성격과 버릇을 한 가지 기준에 맞추다 보면 그 외의 것들은 장애가 되고 만다. 감수성이란 다양성에서 출발한다. 보편적이지 않은 것이 인정되는 사회야말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세상이다. 그런 면에서 조 작가의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확실하다. 메마른 감성, 권태로운 일상, 삭막한 사회가 그의 작품에서 요동친다.
“알루미늄 호일 안의 재료는 다양하다. 정체를 숨기고 있다. 이것이 호일로 사물을 감싼 가장 큰 이유다. 호일로 감춰져 있는 안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또 재료에 대한 비판을 하고 싶었다. 나는 금속공예를 전공했다. 이쪽 분야는 굉장히 보수적이다. 공예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교육을 받아 왔다. 경계의 확장이 필요하다. 재료의 정체성, 그것이 목표가 돼 생기는 문제들을 얘기해 보았다. 호일을 사용한 이유도 그렇다. 오브제는 금속이 아니지만 호일은 알루미늄, 금속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우리 사회에 대한 내 생각도 담았다. 아이들 교육, 정책의 진행,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상과 체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하다.”
조새미 작가의 개인전 <비평적 극장 III>은 <비평적 극장>이라는 타이틀로 이어지는 시리즈 전시다. 조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비평적 극장>에 대한 해제가 필요하다. 비평이란 일반적으로 현상의 옳고 그름, 질의 높고 낮음, 물질의 아름다움이나 추함 등의 가치를 논하는 것을 말한다. 예술의 경우 대상을 고찰하고 음미하면서 동화되는 미적 정도의 여부에 초점을 두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추론해보면 비평적 극장이란 평가를 기대하는 특정한 공간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조 작가의 비평적 극장은 잘한다, 못한다가 아니다. ‘반성’이다.
“비평이라는 말은 나 자신에 대한 반성, 저를 작가로 성장하게 한 재료에 대한 반성,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을 의미한다. 극장은 시공간적으로 제한된 공간에서 재료의 형식을 보여주는 것을 뜻한다.”
조새미 작가는 세 번의 전시에서 각각 다른 얘기를 꺼낸다. <비평적 극장 I>에서는 도구와 삶의 관계성을 공예의 노동성으로 접근해 형상화했다. <비평적 극장 II>는 사람과 오브제의 역학적인 관계를 퍼포먼스라는 연극적 요소를 끌어들여 소통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비평적 극장 III>은 금속공예가로서 재료에 대한 기술적 표현의 완성도를 전복시키고 공예의 스펙트럼을 넓히고자 새롭게 시도했다.
“<비평적 극장 I>은 도리깨를 소재로 작업했다. 도리깨는 농기구로도, 의식용으로도, 무기로도 쓰였다. 현대에는 수집의 대상이 됐다. 또 1601년 처음 사용된 씨 심는 농기구도 편리하게 바꿔 보았다. 씨도 심으면서 쉴 수 있는 도구다. 이처럼 <비평적 극장 I>은 노동과 도구의 관계를 탐구한 작업이다. 금속공예는 노동집약적인 작업이다. 그런 점에서 착안해보니 가장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농업이었다. 그래서 농기구를 차용하게 됐다. <비평적 극장 II>는 소통에 초점을 맞췄다. 대중과 더욱 소통하고 공유하기 위해 색다른 프레젠테이션이 필요했다. 중세의 우유통을 여성의 몸을 떠 만들고, 청각장애인의 귀를 장신구도 만들었다. 또 사진과 이미지 작업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이때부터 마임이스트 김종학 선생님과 함께 작업했다.”
<비평적 극장 III>은 정체성에 대해 의문한다. 작품들은 은박 때문에 화려하지만 반대로 오브제의 생김새나 요소요소들은 수척한 느낌을 준다. 부정형의 인체 오브제들이 연출하는 정형의 모티브는 마치 우리 사회의 기형 혹은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전시장에는 마네킹 다리 8개가 벽에 걸려 있다.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 아방가르드 미술가 마르셀 뒤샹의 작품 제목과 똑같다. 오마주 혹은 패러디일 것이다. <다리>라는 작품은 유아용 풀에 마네킨 다리 3개를 거꾸로 세워 놓았다. 풀에 다리가 들어가 있으니 다리 곡선이 더욱 유려해 보인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은 모두 짠해 보인다. 저 아름다운 다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예민하게 살고 있는지 느껴져서다. 작가는 그래서 저 유려한 다리를 풀 속에 잠기게 했을까.
옆으로는 여성의 엉덩이 부분을 붙여 만든 작품 <가서 죽고, 가서 살고>, 사람의 두흉부를 거꾸로 교차해 올려 세운 작품 <두 개의 기둥>이 있다. 또 천정에는 여러 개의 두 팔을 이어 붙인 작품 <대천사>가 매달려 있다. 이 세 작품에서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조차 잃어버리고 전진을 외치며 채찍질하는 우리 사회와 거기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이 보인다.
다섯 개의 의자가 엉겨 붙은 의자는 애석하다. 이 의자는 앉을자리 없이 뼈대로만 구성돼 있다. <자리001>, <자리002>라는 작품이다. 이 의자는 복잡하게 얽힌 세상사를 그대로 투영한다. 더 잘 먹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인간들이 경쟁하는 모습이다. <도르래>라는 작품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은 나무 등치와 배를 조종하는 키 형태의 조형물을 도르래 줄로 연결시켜놓았다. 키의 손잡이는 사람의 머리모양이다. 거기에서 갈 곳을 잃은 현대인들을 본다. 각각의 머리들이 아옹다옹 힘을 겨루는 투쟁을 형상화했다고나 할까.
조새미 작가의 <비평적 극장 I>, <비평적 극장 II>, <비평적 극장 III>을 관통하는 주요한 의제는 인간이다. 조 작가는 여러 가지 소재와 아이디어를 적용하지만 결국 인간으로 귀결된다. 특히 <비평적 극장 III>은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순간에도 인체 오브제를 이용했다. 인간과 조형물의 연관성을 떠나서는 조 작가의 작품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공예는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에서 시작했고, 많은 부분이 그렇다. 항상 인간과의 관계를 먼저 생각하고 인간을 염두에 둔다. 예를 들면 척추측만증 환자, 교통사고 당한 사람들이 허리에 착용하는 보조기들은 미적으로 충족시키지 못했다. 어떤 보조기라면 이들의 요구를 맞춰줄 수 있을까 <비평적 극장 II>에서 고민했다. 인간을 떠난 예술은 의미가 없다.”
전시장 한쪽 공간에서는 영상이 상영된다. 전시장에 은박가면을 쓴 사람은 김종학 마임이스트다. 그는 얼굴에 카메라를 고정하고 움직인다. 다시 말하면 얼굴은 고정된 채 주변의 상황이 달라지는 영상이다. 작품들은 그와 서로 조응하면서 물질로 치환된다. 영상은 물질에 속박당한 인간을 통해 우리 시대의 흐름을 읽어낸다. 폭력적인 욕망에 함몰돼가는 인간의 획일화된 모습과 물질에 종속돼 자신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린 영혼을 직접 보게 만든다. 현대의 혼란, 현대인들의 비극,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김종학 마임이스트는 인간을 대표하는 메타포 역할이다. 그의 얼굴은 작품과 마찬가지로 오브제이고 은박을 쓰고 있다. 인간의 삶이 그런 것 같다. 표정도 보이지 않는다. 반짝이기 때문에 시선을 집중되지만 명확하지 않고 뿌옇다.”
전시에서 가장 튀는 작품은 <은 주전자 세트>다. 주전자, 촛대, 컵은 쟁반에, 이 쟁반은 다시 벽에 붙어 있다. 은식기는 옛날 부와 권력의 표상이었다. 조새미 작가는 이 장식적인 은식기를 재해석했다. 예술과 직업의 경계에서 독립성, 자율성을 잃은 공예가들의 모습을 은유하면서 과거 공예의 영광이 오늘날에도 유효한지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예부터 공예가들은 부자들이 필요한 생활용품들을 만들어왔다.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한 재료값을 직접 충당할 수 있는 공예가들이 많지 않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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